기본소득으로 기초연금·기초생활보장제 통합, 대체해야
국민연금 개혁은 대선 공약이었다. 여야 후보 모두 약속했다. 갈 길은 멀다. 공회전하다 이제 겨우 시동이 걸렸을 뿐이다. 게다가 안갯속이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국민연금에는 '용돈연금', '세대착취', '기금고갈','제도붕괴'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불신이 크다.이런 불신을 해소하고, 저부담·고수익 구조 탓에 미래 세대에게 지워질 부담을 덜어주는 게 연금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연금보험료를 올려서 연금기금의 재정안정 방안을 마련해도 지금처럼 심각한 노인빈곤을 완화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재정안정과 더 확실한 노후보장은 상충하는 목표다.눈을 돌려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그러면 모두를 만족시킬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 국민이 내는 세금과 사회보험료의 역할분담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공적연금제도의 구조조정, 연금 사각지대 해소, 노후보장 강화 등 과제를 제시하고 해법을 모색해 본다.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난다. 공적연금은 사회복지의 오른쪽을 떠받치는 날개다. 왼쪽은 정부 재정이 맡아야 한다. 절대빈곤층과 장애인 등 노동능력 상실자 부양, 영유아 보육과 노인 요양 등은 정부가 일정 부분 책임지고 있다.
그러나 연금 보험료를 낼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은 노년기에 복지 빙하기에 처한다. 알량한 기초연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공적·사적 연금 모두 선진국 수준으로 비대해졌거나 그럴 조짐이지만, 정부 예산의 사회복지 지출은 아직 중진국 내지 후진국 수준이다.
조세정의의 실패: 소득재분배 기능 낮고, 정책 수단으로 남용
우리나라는 세금의 소득분배 개선효과가 매우 낮은 편이다. 이를 측정할 때 흔히 세전과 세후의 지니계수를 비교한다. 즉 세금과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 준조세를 내고 난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산출한 한국의 지니계수는 2018년 기준 0.33으로 그것을 내기 전인 본원소득(아무것도 떼지 않은 1차 소득)기준 지니계수 0.37에 비해 12.1% 낮아지는 데 그쳤다. OECD 회원국의 평균은 각각 0.31과 0.41로 지니계수 하락률은 32.26%였다.(OECD통계, 2023년 3월9일 기준) 우리나라는 그것의 거의 3분의 1에 그쳤다. 그만큼 세금의 소득분배 개선효과가 낮다는 얘기다. 빈곤구제를 위한 정부 역할이 미흡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니계수란 빈부격차와 계층간 소득의 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소득이 어느 정도 균등하게 분배되는지를 알려준다. 0부터 1까지의 수치로 표현되는데, 값이 '0'(완전평등)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완전불평등)에 근접할수록 불평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축소지향의 복지제도는 기득권의 고착화를 불러왔다. 복지지출에서 아낀 재원(세수)은 전략산업과 농업지원을 위한 각종 보조금과 세금감면에 집중됐다. 이런 혜택을 받은 부문과 종사자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되도록 세제의 큰 틀을 건드리지 않기를 바란다. 1977년 부가가치세가 시행된 이후 46년간 세제가 근본적으로 바뀐 적이 없다.
예외주의와 비밀주의가 세정(稅政)을 지배한다. 선별복지의 냉정함도 그 산물이다. 특히 기초생활보장 제도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선별 조건, 노동유인의 박 탈, 적지 않은 행정비용, 차상위층과의 형평성 등 숱한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송파 세 모녀, 방배동 모자, 창신동 80대 노모와 50대 아들 등의 비극은 모두 이런 선별복지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기초연금이 갖고 있는 치명적 단점도 선별복지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현행 선별적 기초연금은 보험료 낸 사람과 안 낸 사람 간의 소득역전을 낳고, 국 민연금과의 연계 감액이 연금 임의가입과 지속적 보험료 납입을 주저하게 만든다. 이처럼 보험료를 내지 않는 가입자와 낼 수 없는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재정의 역할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요컨대 모든 국민의 노후보장을 위해 공적연금이라는 한정된 파이만으로 계층 간, 세대 간에 나누라고 하면 해법이 안 나온다. 연금가입자들은 재정의 역할을 통해 파이를 키워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나서야 한다.
'값싼 정부'의 배신: 한국은 '중부담-저복지' 국가
한국은 대체로 '저부담-저복지' 국가로 알려져 있다. 복지국가론에서 값싼 정부라고 일컫는 경우다. 그런데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우리나라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중부담-저복지'국가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초 발표한 '현대판 양반제, 공공개혁 없이 대한민국 미래 없다'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은 선진국들에 비해 낮지만, 정부 수입은 그렇게 낮지 않다는 것이다. 조세와 사회보험료 이외의 경상이전 수취 등 기타 수입이 다른 나라들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은 선진국들에 크게 못 미친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의 20.0%로 OECD평균 24.3%에 못 미친다. 세금에 4대 사회보험에 내는 사회보장기여금을 합친 국민부담률도 GDP의 27.7%로 OECD 평균 33.6%보다 낮다.(OECD 통계, 같은 시점)
반면 김 소장에 따르면 2020년 일반정부의 총수입은 681조9000억 원으로 GDP의 35.3%에 달해 그 비율이 국민부담률보다 훨씬 더 높았다. 이는 조세수입(384조7000억 원)과 사회보장기여금 수입(182조 2000억 원) 외에도 기타경상이전 수취(각종 부담금, 과태료 등) 47조5000억 원, 상품비상품 판매수입(국 공립대 수업료, 상하수도 사용료 등) 29조5000억 원, 정부의 재산수입(배당금, 이자 등) 32조6000억 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입은 다른 나라에서는 이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김 소장은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정부수입은 2019년 기준 GDP의 34.8%로 미국(31.5%), 스위스(34.1%)보다 높고, 일본(36.5%)보다 약간 낮다. 그런데 같은해 GDP대비 사회복지지출은 한국이 12.2%로, 미국(18.7%), 스위스(16.7%, 2018), 일본(22.3%, 2017)보다 상당히 낮다.
GDP대비 정부수입은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그들보다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정부수입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도 35%로 OECD평균 48%에 크게 못 미친다. 김대호 소장은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한국이 알려진 것처럼 '저부담 저(低)복지' 국가가 아니라 이미 '중(中)부담 저(低)복지국가'가 됐다고 지적했다.
재정에서 새로운 재원을 마련해 저복지 국가 벗어나야
따라서 이제 국민들이 적어도 중간수준의 복지를 요구해야 할 시점이다.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완전히 분리해서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실시 중인 기본소득 이나 안심소득과 통합해 새로운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이처럼 저소득층, 실업자와 불완전 취업자를 위한 너그러운 현금복지의 신설과 확산은 앞으로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되고, 인공지능을 비롯한 제4차 산업혁명이 기존 일자리를 대폭 줄일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노동시장과 사회의 이중구조가 날로 심화되면서 적어도 구빈(求貧)을 위해서는 보편복지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구체적인 방안의 하나는 선별복지인 현재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초연금을 보편 복지제도인 기본소득으로 단계적으로 대체해 가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자격심사 없이 모든 사람(특정국가, 지역 등의 구성원)에게, 개인 단위로, 노동 요구 없이 무조건 전달되는 정기적 현금 지급'이다. 우리나라와 세계 도처에 소규모 단위로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다른 방안으로는 서울시에서 시범 시행 중인 선별복지제도로 안심소득이 있다. 이 제도는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생계·주거·교육 급여를 없애고, 그 대신 서울 시가 정한 기준 소득(중위소득의 85%)과 실제 소득 간 차이의 50%를 지급해주는 것이다. 각각의 제도가 갖는 장단점이나 재원마련 방안 등은 별도의 긴 논의를 필요로 한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기본소득이 노동의욕 저하우려, 정치인들의 포퓰리스트적 접근, 재원 마련에 대규모 증세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들어 기본소득이 시기상 조라고 말한다. 그러나 연간 60조 원 안팎의 조세감면의 일부를 줄이고, 성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소임을 다한 각종 보조금 폐지를 통해 기본소득의 일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소득세 면세점을 없애거나 대폭 낮추고, 환경세 등을 신설하는 등의 일부 증세도 검토할 여지가 있다.
많은 장애가 놓여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로서는 지금처럼 선진국들을 따라가는 사회복지 제도가 아니라 처음으로 다른 나라를 선도하는 복지제도를 시행할 기회를 맞고 있다. 연금개혁에 힘이 실리게 되면 그때가 골든타임이다.
KPI뉴스 / 임항 사회전문기자 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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