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적절하게 뜨거운 관계의 온도 탐색하기"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02-24 08:02:07
두 번째 소설집 '관계의 온도' 펴낸 소설가 박지음
표현하지 못하는 소수자 상처를 읽어내는 글쓰기
민감한 사회적 이슈 파고들어 이면의 상처 드러내
"유행을 좇지 않고 인물의 말 깊이 있게 전달할 터"
"주변에 사실 힘든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제가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자신의 말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죠. 정말 힘든데 그걸 표현 못하는 소수자의 말을 대신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입 다물고 있는 사람의 표현하지 않은 상처를 읽어내는 거, 그게 문학이 아닌가 싶거든요."

▲두 번째 소설집을 펴낸 작가 박지음. 그는 "모든 관계가 나를 소설가로 살게 했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새엄마 '썸낭'이 연준에게 지어준 이름 '뿌레야꼬'는 캄보디아 말로 '신성한 소'라는 뜻이다. 이복동생 연두는 '신성한 보석'이라는 의미의 '뿌레야께오'. 아버지는 썸낭을 데려와 연두를 낳은 뒤 교통사고로 먼저 가버렸다. 썸낭은 연준까지 데리고 도시의 골목에 들어와 살아가는데, 어린 연두가 고시원에 불을 질렀다는 혐의를 받는다. 골목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연두가 어떻게 고시원 대학생에게 희롱당하는지. 그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방관했을 따름이다. '신성한 보석'의 말 못하는 아픔에 분노한 어린 오빠 뿌레야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징에 나선다. 박지음의 두 번째 소설집 '관계의 온도'(아시아)에 수록된 '내 이름은 뿌레야꼬'의 5살짜리 소녀 연두의 말 못하는 상처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그냥 막연히 제 아픔도 얘기하고 제 얘기를 써야지 이렇게 첫 소설집에는 접근을 했는데, 점점 쓰면서 그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뭘 쓰는 사람이고, 이렇게까지 힘들게 글을 쓰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렇게 돌아볼 때마다 자기 자신의 말을 못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뿌레야꼬에서는 엄마 썸낭의 말이 아니라 아이가 진짜 하지 못하는 말, 그것을 읽어내고 싶었어요."

박지음의 말처럼 9편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에는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적극적인 취재를 통해 기사나 르포가 대신할 수 없는 문학의 기능을 함축하는 작품들이 많다. '돌의 노래'와 '세도나'는 현대사에서 제대로 언급하지 못한 것, 혹은 은폐된 것들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쪽이다. 

제주 4·3 진압을 위해 차출되는 것에 반대해 일어난 이른바 '여순사건' 국면에서 좌우익을 막론하고 참혹하게 살육당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이 과정에서 식당을 꾸리기 위해 밥을 해준 죄밖에 없는 '순천댁'은 부역죄로 몰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살당하는데, 그녀의 딸 순덕 또한 어린 간첩으로 몰려 쫓기는 처지였다. 순덕을 감싼 미국인 선교사 가족 덕택에 순덕은 '수잔'이 되어 미국에서 살다가 늙어서 손녀 '앤'과 함께 여수를 찾는 이야기가 '돌의 노래'로 펼쳐진다. 처형당하기 직전 순덕 엄마는 으깨진 손으로 바닥을 더듬어 돌멩이를 주워 건네주며 말한다.

-순덕아, 살아. 꼭 살아내야. 내가 너 살릴라고 뼈가 부사지도록 버텼어야. 꼭 살아내야 여그 여수에서 도망쳐서 꼭 살아라. 약속하랑께. 꼭 살아라. 인쟈 이 돌이가 어매다.

수잔이 노파가 되어서까지 놓치않고 매만지던 그 돌을 이제 손녀 앤에게 넘기면서 뒷일을 부탁한다. 여전히 좌우익이 갈등하는 한국사회에서 여순사건은 끝나지 않은 진행형인 셈이다. 여순에 이어진 6.25전쟁의 참극을 겪고 1980년 광주에서 자행된 야만도 이번 소설집에서 '세도나'라는 작품으로 변주된다. 광주항쟁의 뒷이야기와 참혹한 일들은 그동안 많이 알려졌다고 여겨지지만, 잘 모르거나 왜곡된 채 퍼진 헛소문들은 여전하다. 지레 외면하지 않되, 어떻게 들여다보느냐가 관건이다.

▲박지음은 "나는 언제나 환하게 웃지만 자주 옹졸해서 내게 내밀던 그 손들을 잡아주지 못했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인디언들이 끝까지 항쟁하며 지키려 했던 붉은 사암 땅 '세도나'에서 언니가 딸의 결혼식을 치른다. '나'는 사실 광주항쟁과 관련된 민감한 칼럼을 써놓고 도망치듯 이곳 붉은 땅에 하객으로 날아온 터였다. 한국에서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온다. 남편은 보수 쪽의 정치인인데, 이 칼럼이 남편의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계산하고 쓴 것인지 묻는 전화였다. 문제의 칼럼은 광주항쟁 당시 계엄군이 소녀를 강간하고 죽인 사실에 대한 것이었다. 광주항쟁 이후 미국으로 이민 온 노부부 역시 하객으로 참여했다가 말싸움을 벌인다.

-당신은 칼럼에 계엄군이 소녀를 강간하고 죽였다고 썼죠? 그건 간첩들이 가짜 소문을 만들어 퍼트린 거예요. 거기에 분명 간첩이 있었어요. 우린 이곳에 이민 와서 매일 그 도시의 사건을 되풀이해 봤어요.

-나는 80년 5월, 그날 태어난 사람을 알아요. 그의 엄마의 진통이 시작되자, 그의 아버지는 의사를 데리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고, 소녀들을 강간해 자궁을 도려낸다는 소문이 돌았죠. 그의 엄마는 두려워서 남편을 찾으러 갈 수 없었어요. 계엄군은 전쟁과 같은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소녀들에게 잔혹한 짓을 했죠. 소문이 퍼져나가 도시 전체가 공포에 떨도록 만들었죠.

두 사람의 언쟁은 양보 없이 이어졌는데, 이는 실제로 박지음이 조카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겪은 이야기라고 했다. 계엄군의 소녀 강간 사실은 신문 기사를 인용해 증거하거니와, 전쟁도 아닌 국면에서 잔인한 여성 학대로 공포를 조성한 사실에 분노하며 방점을 찍은 것이라고 했다. 칼럼을 쓴 여성의 남편이 보수당 정치인이어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진실이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는 차원에서 이 단편의 '광주항쟁 접근법'은 한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

SNS시대의 폐해를 깊이 있게 접근한 '오비랍토르'나 장애인의 아픔을 복합적으로 그려낸 '기요틴의 노래'도 박지음 소설의 특징을 아우르는 단편들이다. 사회적 이슈를 파고 드는 이런 단편들에 비해 표제작으로 뽑힌 '관계의 온도'는 바깥보다 내면을 성찰하는 편이다. 사람끼리 관계에서 적절한 온도는 몇도 쯤일까.

▲여행지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쓰는 경우가 많은 박지음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포즈를 취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유영과 규희는 여행지에서 만나 가까워진 사이다. 규희는 전형적인 대치동 키즈 교육을 받고 자랐고,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린 엄마와 강남지역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았다. 엄마는 늘 규희에게 '누구든 가까이 하기 전에 거리를 두고 상대를 파악하라'고 가르쳐주었다. 유영은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겪다가 규희의 도움으로 다시 일을 해나가는데, 어쩌다 전세금을 규희에게 빌려야 할 절박한 처지. 관계를 유지하되 돈을 빌릴 수 있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진땀나는 관계의 서사가 시종 아슬아슬하게 전개된다. 몸이 타버릴 듯 조급해 하는 유영에게 규희가 생각난 듯 말한 관계의 온도.

-37.5도가 어떤 온도일 줄 알아?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온도래.

박지음은 정상 온도보다는 약간 뜨거운, 서로에게 '감염' 될 수 있는 온도가 그 정도라고 했다. 서로 감염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생각과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간섭하게 되는 경지를 이를 터이다. 온도가 더 올라가면 육체도 병원을 찾아야 하듯 관계에도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적절한 '감염 온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같이 있고 싶지만 여의치 않은 '관계의 온도'는 다른 단편들의 기저에도 관류하는 정조이다. '화랑곡나방'에서 몸을 파는 엄마와 같이 사는 아들이나, '내 이름은 뿌레야꼬'의 엄마와 아들, '오비랍토르'의 여자 '홍'과 입양아들의 관계는 모두 핏줄로 이어진 관계가 아니다. 이들은 같이 있고 싶지만 떨어지는 운명이고, 그러면서도 다시 이어지기를 희망하는 서글픈 온도를 보여준다.

▲박지음은 "정상 온도보다 약간 뜨거운, 서로 감염시킬 관계의 온도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해안길을 따라가다 보면'도 바깥보다는 안을 들여다보는 단편이다. 작가의 분신으로 짐작되는 '지희'는 소설을 취재하기 위해 들고 다니던 녹음기를 바다에 던져버리면서 이제 다른 사람의 사연을 쓰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적극적인 취재를 통해 르포를 넘어서는 문학을 지향하는 태도와는 짐짓 길항하는 것 같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바깥과 안을 더 깊이 연결하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사실 유행하는 아이템을 좇아가려고 했어요. 오피스소설이 잘 먹히니까 직장인 친구들을 취재하려고 녹음기를 갖고 다니다가 버리는 이야기죠. 이전까지는 '젊은작가상' 수상작 같은 걸 찾아 읽으면서 젊은 작가들과 비슷한 걸 써야 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인제 그런 생각 자체를 바꾸고 나를 다독이면서 '세도나'나 '뿌레야꼬'의 인물들을 소재 차원으로 소비하지 않고 이들의 말을 제대로 읽어내는데 집착하는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박지음은 이야기를 쓸 때마다 인물들에 육화되는 편이어서 매번 너무 힘들다고 했다. 광주항쟁 당시 난자당한 여성들 자료를 읽고 쓰면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요틴'을 향해 기어가는 자살한 장애인 딸의 어미나, '나는 개'라고 말하는 몸 파는 엄마의 비참에 빙의하면서 잠 못 이루는 그를 쉬게 할 방은, 있을까. 

-내 안에는 불 켜진 방이 있어. 선과 면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 정신이 담겨 있는 공간이야. 내가 평생 꿈꾸며 찾던 공간이지. 그곳에서 너와 보듬고 살고 싶어. ('너는 어디에서 살고 싶니')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