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똑같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3-01-25 20:23:45
루쉰 산문과 시 선별 번역한 '부엉이의 불길한 말'
방대한 전집 입문할 마중물 역할로 유효한 글들
조국의 암담한 적막을 깨기 위해 외친 문학의 언어
"루쉰이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절망에 대한 반항"
-원래 이런 것이 죽어가는 것인가. 그러고 보면 뜻밖에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다. 다만, 임종의 순간만은 결코 이렇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생에 단 한 번이다. 어떻게 되더라도 참을 수 있으리라….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국의 적막을 깨기 위해 글로 사투를 벌인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 '루쉰'. [나무위키]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루쉰(1881~1936)이 산문 '죽음'에서 언급한 대목이다. 일생에 단 한 번뿐인 경험일 뿐인데 어떻게 되든 그 순간을 참아보리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죽음'이어서 놀랍다. 담담하고 대범한 자세이기도 하고, 실제로 누구에게나 닥칠 평생 단 한 번뿐일 순간에 대한 새삼스러운 자각이기도 하다. 루쉰은 폐병으로 고생하면서 1936년 9월 5일에 이 글을 썼는데, 한 달 후 그 순간을 직면했다. 그가 정작 마지막 순간에 했을 생각은 알 길 없다.

그는 상하이에 와 있는 미국인 폐병 전문의사로부터 곧 죽게 될 거라는 선고를 받고 7개 항목의 유서를 남겼다고 이 산문에 썼다. 문상객에게 한 푼도 받아서는 안된다면서 단 오랜 친구들만은 예외라고 했고, 빨리 입관하고 매장하고 끝내버릴 것, 나를 잊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라고 당부했다. 그러지 않으면 진짜 멍청이라고 부연한다.

-많은 꿈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몇몇 친구들은 나의 안락을 빌었고, 몇몇 적들은 나의 멸망을 빌었다. 하지만 나는 안락하지도 않았고, 멸망하지도 않은 채 이도 저도 아니게 살았으니, 어느 쪽의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또 그림자처럼 죽어버렸다, 적들조차 모르게, 그들에게 공짜로 누릴 기쁨을 조금도 주지 않으려고.…… 나는 흐뭇함 속에서 울음이 날 것 같았다. 이것은 아마 죽은 뒤의 내 첫번째 울음일 것이었다.


루쉰은 산문시 '죽은 뒤'에서도 죽음을 관조하며 '이도 저도 아닌' 삶이었다고 자세를 낮춘다. 그가 살아서 내내 경계했던 것은 '적막'이었다. 그에게 '적막함'이란 '오래된 나라의 문화사를 읽는 사람이 시대를 따라 내려가다가 권말에 이르게 되면, 마치 따뜻한 봄날을 벗어나 쓸쓸한 가을에 접어들어 모든 싹에 생기가 끊어지고 마르고 시든 모습만 눈앞에 있는 듯한 처량한 느낌이 드는' 그런 상태를 일컫는다. 요컨대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정황이 적막이라는 침묵과 멸망의 이미지로 표현된 것이다. 루쉰은 중국의 혼돈기에 나라의 상태를 '적막'으로 비견했거니와, 이 적막을 깨기 위한 문학의 효용을 강조했다. 

-순문학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모든 예술의 본질은 그것을 보고 듣는 사람에게 감흥과 희열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 문학[文章]은 예술의 일종이고, 그 본질 또한 당연히 그러하므로, 개인이나 국가의 존망과 관계가 없고 실리와 거리가 멀며 이치를 따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그 효용은 지식을 증대시키는 데는 역사책만 못하고, 사람을 훈계하는 데는 격언만 못하고, 부를 이루는 데는 공업이나 상업만 못하고, 공명을 떨치는 데는 졸업장만 못하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특별히 문학이 있고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거의 완전해졌다고 생각한다.

역사책, 격언, 공업, 상업, 졸업장만도 못한 문학에 의미를 부여한 맥락은 무엇일까. 루쉰은 말한다.

-삶에 대한 문학의 효용은 의식주나 종교, 도덕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대개 인간은 천지지간에서 자각적으로 열심히 일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아를 상실하고 실의에 잠기기도 하며, 생계를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생계의 일도 잊고 쾌락에 빠지기도 하며, 현실의 세계에서 활동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상의 세계에 정신을 빼앗기기도 한다. 그 어느 한쪽에만 힘을 쏟는다면 그것은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추운 겨울이 영원히 계속되고 봄기운은 오지 않으며, 육신은 살았으되 정신과 영혼은 죽어버리고, 사람은 비록 살아 있다 해도 삶의 도리는 상실된다. 문학의 불용지용(不用之用)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상하이 홍구공원 루쉰 묘(왼쪽)와 그의 동상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과연 그러한가. 문학은 인간의 적막을 깨는 쓸모 없는 듯 보이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쓸모가 있는 그런 것인가. 루쉰은 자신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소설집 '외침' 서문에 편집자와 나눈 대화를 삽입했다. 그가 말했다.

-가령 말이요, 쇠로 만든 방이 있다 칩시다, 창문은 하나도 없고 부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오.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데, 머지않아 모두 숨이 막혀 죽을 거요. 하지만 혼수상태 속에서 죽어가는 거니까 죽음의 비애는 조금도 느끼지 않지. 지금 당신이 큰 소리를 질러서 비교적 정신이 있는 사람 몇 명을 깨운다면 말이오, 그 불행한 소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게 될 텐데, 당신은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소?

이 말에 대한 편집자의 답변은 그로 하여금 '쓰게' 만들었다.

-하지만 몇 사람이 일어난 이상, 그 쇠로 만든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죠.

루쉰은 '희망'이란 창녀와 같다고 헝가리 시인의 말을 인용한다. 희망이라는 그녀는 누구든 다 유혹하여 모두에게 몸을 주지만, 청춘을 희생하고 나면 그녀는 너를 버린다고 썼다. 그는 나아가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똑같다'는 명구를 남겼다. 희망이 허망하지만, 절망 또한 허망하다는 것이다.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과 똑같다. 만일 내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이 '허망' 속에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면, 저 가버린 슬프고 막막한 청춘을 찾아보겠소, 몸 밖에서라도 무방하오. 몸 밖의 청춘이 소멸되면 내 몸속의 황혼도 시들 테니까. 허나 지금은 별도 달빛도 없고, 죽어가는 나비도, 웃음의 아득함도, 사랑의 너울대는 춤도 없소. 허나 청년들은 평안하다오.

▲1936년 8월, 타계 2개월 전 담배 피우는 루쉰. 그는 죽음을 성찰하며 "일생에 단 한 번이다, 어떻게 되더라도 참을 수 있으리라"고 썼다. [위키백과]

절망 속에서도 평안한 청년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루쉰은 "청년들의 의기소침함에 놀라서 이 시를 썼다"고 밝힌 바 있다. 루쉰에 관한 저작과 연구 글들은 차고 넘친다. 2018년에는 11년에 걸친 번역위원회의 각고 끝에 루쉰전집 20권이 간행되기도 했다. 루쉰 산문과 시들을 선별해 최근 문지스펙트럼으로 새롭게 출간된 '부엉이의 불길한 말'(성민엽 옮김)은 루쉰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전집을 찾아보게 할 효율적인 마중물 역할을 하는 책이다. 산문은 10편을 선별했고, 산문시는 '야초'에 수록된 24편을 모두 실었다.

옮긴이 성민엽 서울대 중문과 명예교수는 "절망에 대한 반항이 루쉰 정신의 핵심이라는 설이 널리 유포되었고, 루쉰을 논하는 자리에서 희망이라는 말은 순진하거나 유치한 것, 때로는 위선적인 것, 허위적인 것으로 일찌감치 규정되었다"면서 "부엉이의 불길한 말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라고 역설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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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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