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생기는 오해나 불통 같은 추상 개념 시각화로 불편한 상처 해소

작가 리케이(Lee.K)는 얼굴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다. 불혹의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에서 BTS 지민의 초상 변주로 호평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프랑스 파리 카루젤 드 루브르(Carrousel du Louvre)에서 열린 관련 전시는 국제적인 화제가 됐다. 당시 그가 그린 지민의 얼굴이 포스터 대표 이미지로 채택되면서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BTS 지민을 뮤즈로 상정하고 캔버스에 옮겼으니 무리도 아니다. 하지만 사실 이런 반향은 그의 의도와는 사뭇 동떨어진 것이다. 그는 애초부터 다양한 얼굴을 그려왔다. 오랫동안 화폭에 얼굴을 그리고 입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언어의 부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이를 두고 "세상의 불손한 질문에 일일이 대꾸하고 싶지 않다. 이 또한 내가 입을 그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라고 정의했다. 말하자면 그의 작품은 '말로 생기는 오해나 불통 같은 추상 개념을 시각화'한 것이다. 언어가 주는 불편한 상처를 그림으로 해소하겠다는 의도다.
"누군가는 유명인의 얼굴을 그리는 것을 작가의 성장을 위한 어떤 동력이나 의도로 오해하기도 해요. 하지만 지민을 그린 것은 그의 독보적인 얼굴 때문이죠. 그의 얼굴은 BTS의 음악만큼이나 감동적이죠. 동서양을 아우르는 묘한 그의 얼굴은 어떤 작가든 탐낼만하죠."
리케이는 요사이 부쩍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전시회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해외 인지도가 더 높아 해외 전시회 출품이 끊이지 않는다. 또 인터넷 발달은 그를 국제적 작가로 부상시키고 있다. 그의 그림을 보려는 세계 곳곳의 팬들이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속속 찾고 있다. 공식 팔로워만 40여 만에 달하니 즐거운 비명이라도 질러야할 참이다.
하지만 이런 그가 다시 그림을 그리는 데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삼십대 중반에야 다시 그림을 그릴 여유가 찾아왔다. "사실 저는 경력 단절이 6년이나 돼요. 다시 그림을 그릴 때도 본격적으로 작가가 되려고 한 건 아니죠. 그저 매일 아이를 재우고 저녁 늦게 재미 삼아 그림을 다시 그렸어요. 처음 1년 동안 매일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올리기도 했죠. 딱히 목표는 없었구요. 하지만 그림에 반응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생기니 연필을 손에 쥘 때마다 더없이 즐거웠어요. 저는 뭐든 즐겁게 하면 원하는 것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상황도 그와 같아요." 그는 웃으며 저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과정 때문인지 리케이 작가는 작은 소망이 있다고 한다. "바람이에요. 나중에라도 지금처럼 싫증 나지 않고 꾸준히 그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는 지금도 자기 일이 직업이 아닌 그저 좋아하는 일의 연속이라고 했다.

그의 작업실은 책상 위 혹은 그 주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건식 재료인 목탄, 연필, 마커 등 책상 위에 놓인, 그저 손 뻗으면 쉽게 집히는 것을 가지고 하는 놀이, 그것이 그의 작업이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구태여 여러 복잡한 준비나 과정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의 초기 작업은 디지털과 한정된 드로잉에 국한됐다. 이런 디지털 작업이나 드로잉 작업이 캔버스로 완전히 옮겨가기까진 4년여의 세월이 필요했다. 하지만 디지털 작업은 여전히 그에게 주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다. 캔버스 작업을 하더라도 그는 미리 세밀한 그림을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한다. 캔버스에서 이뤄지는 후반 작업을 위해 미리 검증하고 준비하는 셈이다.
"작품이 캔버스로 옮겨지니 반응은 더 신선하고 컸어요. 온전히 작가로 대하는 이들도 늘어났구요. 요즘은 오일페인팅을 주로 하고 있어요"라며 넌지시 자랑도 했다.
그는 이미 5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말 못 할 여러 사정도 있겠지만 그는 다시 시작해 캔버스까지 이어진 일련의 작업 과정을 스스로 '챕터1'이라 불렀다. 그동안의 그의 작품들을 보면 어두운 면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섬세하고 날렵하고 사실적인 일러스트지만 어두운 색상, 왜곡되거나 훼손된 대상의 입은 '다크하다'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말하는 그의 챕터1은 더러 누군가에겐 '불편함'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그가 이어온 챕터1의 예기는 국내외를 호평을 이끈 그만의 아우라였다.
이제 그는 '챕터2'를 시작했다. 역시 표면적 대상은 인물이다. 다만 챕터2의 인물들은 전작과 달리 실존하지 않는 창작물이다. 20대 출판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경험을 살려 캐릭터에 대한 노하우를 집대성했다는 설명이다.
"저는 캐릭터 그리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앞으로의 콘셉트는 '블루밍그레이'인데 캐릭터들과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해요." 그레이는 그가 붓 대신 자주 사용하는 목탄이나 연필 같은 흑연을, 블루밍은 꽃이 피어나는 것같이 생명의 탄생을 뜻하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선과 뼈대 같은 기초는 전작을 답습하지만 어두운 주제나 화두는 밝은 무언가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그의 작품들엔 어두웠던 전체적인 이미지는 화사하게, 왜곡됐던 입은 다양한 색상의 꽃으로 대체됐다. 이런 변화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묻자 "밝아지고 화사해졌다"며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란다. "입을 훼손하던 것이 사라진 것은 제가 그만큼 치유됐기 때문일 거예요." 그도 여타의 작가처럼 작품과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사실 전작들은 압도하는 필력에도 집에 걸기엔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여럿 있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챕터2의 작품들은 콜렉터의 이런 부담을 상당히 덜어줄 듯하다.
그의 예술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누구나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앞선 무언가를 참조하거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저의 화풍이나 생각 등 모든 것도 과거의 무엇과 연결돼 있을 테지요. 다만 작가라면 자신만의 것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해요. 저는 작품 초기 쌓아둔 습작을 자주 참조하고 있어요." 그는 초기 1년 동안 실험한 여러가지 흔적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아카이빙에 쌓아두고 있었다.
그는 올해 4월부터 연말까지 국내외 여러 곳에서 전시를 연다. 그때까지 두어 달 작품에 몰입할 적기를 맞은 셈이다. 이참에 그는 그동안 매달린 여러 작품을 모아 화보를 출간할 거란 포부도 밝혔다. 그는 지금 경북 안동에서 생활하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서울 종로 전통찻집에서 진행했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