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담 '가실과 설씨녀'가 만들어진 배경 탐색
천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무참한 전쟁과 권력
"지배자의 무기가 될 수도 있는 이야기의 힘" -혼인을 약속했던 그 젊은이가 오년이 지났는데도 감감무소식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민담으로 만들어 동시와 민가에 퍼트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한 여인의 기다림이 결국 사랑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로 말입니다.
소설가 안영실이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가실과 설씨녀' 이야기를 붙들고 천오백년 전 신라인들 삶을 열고 들어가 장편 '설화'(강)를 펴냈다. 설화(薛華)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민담[說話]과 소설의 본래적 의미인 이야기꽃[說花]을 피운다는 의미도 함께 담았다.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설화 혹은 민담의 씨앗이 자연스럽게 뿌려진 게 아니라, 이야기의 힘을 의식한 지배자들이 흉흉한 민심을 다스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대대로 성을 쌓는 일을 해온 집안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축성 기술을 익혀온 청년 '가실'은 염색 장인의 딸 '설화'를 삼년 내내 연모해왔다. 설화의 부친은 징집 연령을 초과한 노인이었는데 징발되는 상황에 부닥치자 가실이 대신 가겠다고 나선다. 나무 줄기가 검게 변하고 전쟁으로 민심이 흔들리자, 화랑을 교육하던 '원광 법사'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정네를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이 연인과 만나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만들자고 왕에게 조언을 한다.
-아뢰옵기 송구스러우나 말씀하신 흉한 소문에는 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존재하지 않은 불안이 근거 없는 소문을 키워 성해졌으니 그에 맞설 이야기를 지어서 성하게 만들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왕이 원광의 조언을 받아들여 만들어낸 이야기가 '가실과 설씨녀'라는 설정이 안영실이 천년 후에 다시 쓰는 이야기인 셈이다. 이 설화를 축으로 삼아 안영실이 풀어가는 서사는 '이야기의 힘'을 성찰하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권력과 전쟁의 무상한 파괴력에 집중한다. 원광은 종국에는 전쟁터에 내보낼 화랑들을 가르치면서 살상을 금하라는 계율에 모순되는 현실에 번민한다. 사랑하는 여인 '설화'를 위해 자원한 '가실'이 전쟁터에서 무참하게 다른 생명을 죽여야만 하는 현실은 참혹하다.
-부상당해서 갈대밭에 쓰러졌던 백제 군사가 개흙에 빠진 가실을 꺼내주었다. 백제 군사의 손에 의지하여 늪에서 빠져나온 가실은 손을 내민 상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둘 다 지치고 슬픈 얼굴에 진흙투성이였다. 왜 이런 곳에서 이상한 표정으로 둘이 손을 마주잡고 있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실은 도끼를 들었다.
전화로 만난 안영실은 삼국시대의 전투를 묘사하는 일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으로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잖아요. 3국 전쟁이 국제전으로 이어지던 그 시대에 이 땅의 백성들은 정말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수명이 짧았지만 정말 투철하고 열심히 살았던 그들을 보았습니다. 그들도 온몸으로 자신의 삶을 살며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문제는 천년 전 싸움의 양상이 그대로 지금까지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안영실은 천년 전 그들의 상상 속으로 들어가 시공을 잇는다.
-꿈속에 나타난 사람들의 얼굴은 신라와 백제 사람들과 닮았는데 그들은 이상한 옷을 입었고, 신라 말도 백제 말도 고구려의 말도 아닌 말로 대화를 했습니다. 그들은 말도 빠르고 걸음도 빠르며 노래 가락도 빨랐습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들은 신라의 국경과 백제, 고구려의 국경을 두고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마치 천년 동안 다투고 있었던 것처럼 맹렬하게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며 싸워서 제가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 말을 듣지도 않고 계속 싸움에만 집중했습니다. 마치 천년 동안이나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땅을 차지하기 위해 세력을 넓히기 위해 전쟁을 하지만, 사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피를 흘리고 생명을 빼앗는 전쟁터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전쟁이라는 거대한 괴물일 뿐이죠. 제가 쓰면서 마음이 아팠던 것은 지금 우리가 남북만 갈린 게 아니고 신라와 백제의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동서로도 갈린 현실의 뿌리 때문이었습니다."
원광이 진평왕에게 고하는 자신의 꿈 이야기는 천년이 흘러도 여전히 갈등과 분열이 사라지지 않은 이 땅의 현실에 대한 현재형 서술이다. 안영실은 천년 전에도 천년 후의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었을 테고, 이곳에서도 천년 전 사람들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그들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마주치는 시공에서 '설화' 같은 소설이 전개되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먼 미래의 사람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이곳을 바라보고 우리는 그 사람을 되바라본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지금 이 시각이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이라면, 그야말로 참으로 아득하고 신비로운 일이네요.
'설화'는 무엇보다 충분한 자료 섭렵을 통해 육화된 신라시대의 삶을 고졸한 문체로 전개하는 미덕이 돋보인다. 이즈음 찾아보기 어려운 공들인 문장이 꽃살문처럼 촘촘하다. '설화'는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매화꽃살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빗살과 격자살이 교차된 꽃살문이었다. 문이라기보다는 창에 가까운 크기였는데, 잎은 문살에 새겼고 살이 만나는 지점마다 매화꽃이 피어 있었다. 나뭇결이 다른 것으로 보아 꽃은 뒤를 뽀족하게 깎아 문살 사이에 박아 넣은 것 같았다. 꽃살문은 낡아서 등뼈처럼 나뭇결이 드러났는데 꽃에는 흰 색소가, 잎에는 녹색 색소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고등학교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서 대릉원에 처음 딱 섰는데 그때 그 이상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어떤 끌림이라고 해야 되나, 누군가 맹렬하게 쳐다보는 것 같은 그런 시선을 받는 기분이었는데 그게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되더라고요. 그 후 몇 차례 경주를 갔는데 그때마다 그 이상한 끌림이 있었어요."
젊은 시절에 맞닥뜨린 경주 왕릉의 기운이, 그 끌림이 내내 작가를 휘감다가 '설화'를 피워낸 셈이다. 안영실은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돼 문단에는 일찍 나왔지만, 2013년 첫 창작집 '큰놈이 나타났다'를 펴낸 이후 10여년 만에 노작을 선보였다. 그는 "이야기란 거짓을 꾸밈이 아니고 진실을 자아내는 일이며 꽃살문을 여는 일"이고 "꽃 그림자를 짓는 일이며 그들이 꽃살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내는 삶의 장(場)을 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밀하게 조각한 매화꽃살문이 달빛을 받아 드리우는 '꽃그림자'야말로 이야기의 상징이라는 탐미적인 시각이다.
"이야기는 삶을 보는 시선입니다. 삶을 그대로 볼 것인가, 버선목을 뒤집듯 그 속살을 파헤칠 것인가, 안개를 분사하여 아름답게 볼 것인가는 보는 사람의 몫, 읽는 사람의 몫이죠. 이야기 자체가 저의 상상이지만 고대에 있는 사람들이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란 법이 있을까요. 그 사람들과 서로 눈이 마주치는 어떤 순간이 소설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그런 저 나름의 생각입니다."
안영실은 꽃살문을 열고 들어가 신라시대의 삶을 들여다 보고 나온 화자를, 이제 다시 그 문을 열고 백제로도 보낼 작정이다. 매화꽃 같은 문체로 그려낸 꽃살문 저쪽의 첫 풍경.
-마당 이쪽저쪽을 가로지르는 긴 줄에 다채로운 파랑이 건들거리고 있다. 저마다 농담이 다른 파랑들은 하늘을 향해 깨금발을 딛는 아기처럼 다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가 와르르 웃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뒷마당에는 소녀 하나가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는 항아리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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