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상주문화원은 발표자료를 통해 순천대 사학과 이욱 교수가 '사서 종가 소장 고문서로 본 사서 전식의 삶'에 대한 주제 발표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자료를 통해 "전식(1563∼1642)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옥천(沃川)이고 자는 정원(淨遠)이며 호는 사서(沙西), 전팽조(全彭祖)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이조판서 전여림(全汝霖)"라고 밝혔다.
또 "전식 선생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활약했으며 이괄의 난이나 정묘호란 때는 국왕의 피난길을 호종하며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전식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의 공으로 충청도와 전라도의 도사를 지내고 대사헌과 대사간 등 언관의 장을 여러 차례 역임했으며 관원의 인사권을 담당하는 이조와 병조의 당상관을 두루 역임했다.
특히 6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명나라 사신으로 중국에도 다녀왔다.
이 교수는 "애석하게도 전식 선생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그의 생애와 업적을 감안할 때 이례적"이라고 했다. 이어 "지난해 말 종가 소장 고문서 69점과 초상화, 조복과 공예품이 경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선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미경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위원은 "조선 중기 상사삼로(商社三老)라 칭송된 사서 전식 선생 초상화 두 점은 모두 관복을 입은 공신상(功臣像) 형식으로 공신상은 조선 초·중기에 발달하였는데 일반 사대부의 초상화에 영향을 주게 되면서 크게 성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공신상은 충을 강조한 정치적 위계 질서와 권위가 잘 드러나는 정장의 관복 차림으로 그려진다.
안동대 융합컨텐츠학과 이은주 교수는 "사서 종가에 소장된 조복은 그동안 기록 자료 및 출토 복식 등을 통해 추정하였던 조선시대 조복의 색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료적 가치가 가장 크다"고 주장했다.
또 "조선 중기 백관조복 형태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바느질 선이 모두 분리돼 조각난 상태지만 연구자들에게는 구성법을 확인할수 있다는 복식사적 가치도 지닌다"고 밝혔다.
KPI뉴스 / 전주식 기자 jschu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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