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정원 '조용한 숙정'…1급 부서장 전원 9월 30일자 면직

김당 / 2022-10-27 17:08:05
조상준 기조실장 4개월만에 사직…국정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일부 지부장 공석…북한 핵실험 앞두고 인사 난맥은 '안보 공백' 위험
대량 면직은 80년 안기부, 99년 국정원 '문패' 바꾼 변혁기 이후 처음
특수부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이자, 국가정보원 2인자로 통하는 조상준 기조실장이 26일 전격 면직돼 그의 면직 배경을 둘러싸고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8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조상준 기획조정실장, 권춘택 1차장, 김수연 2차장, 백종욱 3차장. [뉴시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어제 조 실장이 대통령실의 유관 비서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며 "대통령실은 임면권자인 윤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하고, 국정원장에게 사의 표명 사실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사의를 표명한 배경에 대해서는 "일신상의 이유로, 개인적 사유이기 때문에 더 이상은 밝혀드리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는 이날 익명의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조 실장의) 몸에서 뭔가가 발견됐는데, 급격히 악화돼 지금 입원해 있다"고 전했다.

이날 열린 국회 정보위의 국정원 국정감사에서도 면직 배경을 둘러싸고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이날 오전 국감을 마치고 열린 정보위 브리핑에서 유상범 간사(국민의힘)는 "면직사유는 일신상의 사유로 파악될 뿐 구체적 면직 이유에 대해선 국정원도 파악 못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의혹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인사권자인 윤 대통령은 27일 출근길 문답에서 "(조 실장 면직은) 일신상의 이유라 공개하기 그렇다"며 "중요한 직책이기 때문에 계속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나가는 게 맞지 않겠다 해서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이날 국정원도 "'기조실장 면직' 관련 사실관계를 알려드립니다" 제하의 보도자료를 내 "조 전 실장은 본인의 건강 문제 등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부 인사갈등설 등 각종 소문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이를 종합하면 일단 직접적인 의원면직 배경은 '건강 이상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국정원 인사·예산을 담당하는 조 실장이 하필 국정감사를 앞두고 그 전날 직속상관인 원장을 '패싱'하고 대통령에게 직접 사의를 표명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직접 배경은 '건강 이상' 때문이지만 또 다른 배경은 김규현 원장과의 갈등과 불화 때문이라는 관측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국정원 내부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2주 전부터 인사를 둘러싸고 국정원 내부에서 두 사람의 갈등·불화를 빚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검찰 출신 기조실장의 일방적인 인사·예산 처리에 대한 내부의 반발도 커진 상황에서 원장 사의설까지 나온 것으로 들었다"며 "결국 원장과 기조실장의 불화가 커진 가운데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원장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26일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국정감사에 참석하기 위해 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그런데 인사를 둘러싼 불화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UPI뉴스는 국정원 1급(관리관) 부서장 27명 전원이 9월 30일자로 면직된 사실을 복수의 전-현직 고위 관계자에게 확인했다.

국정원 기조실이 현직 부장검사들을 파견받아 고강도 내부감찰을 실시하고, 지난 6월 1급 부서장 27명을 전원 정보교육원으로 보낸 것은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하지만 이들이 전원 면직된 사실은 처음 확인됐다.

국가정보기관 61년 역사에서 1급 부서장 전원이 대량으로 면직된 것은 중앙정보부에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이후 안기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문패를 바꾼 대전환기를 제외하곤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인사상 피해를 당했던 인사들이나,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김규현 원장이 정리하고자 했던 국정원 내 일부 인사들의 인사 문제를 놓고 두 사람이 갈등을 빚었다는 불화설이 제기된 배경이다.

더구나 지역에 따라 1급 또는 2급(이사관)으로 임명하는 일부 지부장 인사는 아직도 공석인 것으로 파악됐다. 김규현 원장과 조상준 기조실장 취임 후 고강도 내부감찰이 실시된 지 120여일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인사 난맥상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국정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인사가 늦어지며 사실상의 안보 공백이 장기화되는 이유에 대해 "피아식별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간부들이 전 정부에 줄 선 사람인지 아닌지를 면밀하게 가리다 보니 인사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전직 직원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인사 난맥상이 있었다"면서도 "전 정부에서 임명된 1-2급 부서장들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보니 일단 피아식별이 안되면 적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김규현·조상준 체제에서 국정원은 1급 부서장들을 연수원으로 내보낸 뒤에 무려 100여일 동안이나 부서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했다. 국정원의 인사 난맥은 북한의 제7차 핵실험이 임박한 가운데 안보 공백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현 집권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새누리당은 김대중·노무현 좌파 정권이 등장해 국정원 간부들을 대량 해직해 국정원의 대북 정보-수사 기능을 무력화시켰다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보수정권에서도 대량 해직의 '잔혹사'가 되풀이된 것이다.

문제는 이번 전원 면직은 '명분 없는 숙정'이라는 점이다. 그때는 김대중 낙선을 목표로 북한과 뒷거래한 '북풍 사건'과 공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모금한 '세풍 사건'에 안기부가 개입한 것으로 밝혀져 '물갈이'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반면에 이번 전원 해직은 국정원의 '댓글 공작' 등 불법행위를 감찰·수사한 전 정권에 대한 보복성을 띠고 있어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선별적 인사가 아닌 부서장 전원에 대한 일괄 면직은 국정원 직원의 신분 보장과 전문성 축적에 반하는 것이다.

▲ 26일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에서 열린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김규현 국정원장이 국정감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권춘택 1차장, 김 원장, 김수연 2차장. 조상준 기조실장은 국감 시작 전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해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았다. [뉴시스] 

국정원 정보대학원(현 정보교육원)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한 김계동 박사는 "문재인 정부도 결국은 적폐청산을 하는 데 정보대학원 교육을 활용했고, 윤석열 정부도 그렇게 하고 있다"며 국정원의 보복정치가 되풀이되는 현실을 개탄했다.

김 박사는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정권교제에 따른 보복성 인사는 선별적으로 이루어졌지, 이렇게 전체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별로 없었다"고 덧붙였다.

1급 간부에 대한 일괄 면직이 위법은 아니다. 과거에 대량 면직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자 국정원은 국정원직원법의 신분보장 규정을 개정해 "직원은 형의 선고, 징계처분 또는 법률에서 정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의사에 반하여 강임-휴직 또는 면직되지 아니한다. 다만, 1급 직원은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개정했다.

역대 정보기관 대수술을 보면,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군권을 잡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하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부장의 중정에 대수술을 가했다. 이때는 '남산'을 점령한 보안사 파견관들이 칼잡이 역할을 맡았다.

이후 대수술은 헌정사상 첫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에서 이뤄졌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안기부가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북풍·총풍 사건은 물론 세풍 사건에까지 모두 연루된 것을 계기로 대수술을 단행했다.

당시 이종찬 국정원장에 따르면 이 원장은 '조용한 사정'을 위해 검찰에서 '가장 유능한 검사'를 파견받아 국정원 개혁과 사정을 추진했다. 이때 소병철 대검연구관이 국정원장 법률특보로 파견돼 북풍 사건 초기 수사를 지휘하고 검찰로 복귀했다. 

이런 연유로 소병철 검사는 여주지청장으로 복귀한 뒤에도 북풍총풍세풍 사건 연루자들을 포함한 국정원 숙정 인사에 관여한 것으로 오해를 받아 나중에 불이익을 당했다. 소병철 전 고검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여러 차례 검찰총장이나 법무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지만, 새누리당의 반대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소 전 검사장은 지난 총선 때 민주당 지역구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해 현재 국정원을 감독하는 정보위원이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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