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내 안의 신령을 만나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2-10-27 15:46:26
오래 벼려온 '유역문예론' 펴낸 문학평론가 임우기
인류 멸절의 대위기 국면에서 주체적으로 찾아야 할 길
'자재연원'과 '원시반본'을 축으로 서구 문명 의존에서 탈피
'수심정기'를 통해 일상에서 천진한 자연 상태를 지향
유역(流域)은 지역보다 넓은 개념이다. '지역'은 중앙과 대립적이고 이기적인 측면도 있지만, 유역은 지역을 포괄하는 생명의 영토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평론가 임우기(66)는 20여년 전부터 이 개념을 붙들고 '유역문예론'을 펼쳐왔다. 

▲20여년 전부터 떠올린 '유역' 개념을 동학사상과 접목시켜 지금 이곳에 필요한 문예이론을 정립한 평론가 임우기.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는 "세계 각 유역이 가지는 개별적 독자성과 구조적 상대성을 인정하고 각 유역을 함께 동시적으로 관찰하는 유기적이면서 상관적인 관점이 중요하다"면서"특히 서구 근대 문명 혹은 기독교 문명은 세계사 속에서 확장된 거대한 문명일 뿐, 인류의 미래를 위한 '중심'도 아니며 또 문명의 중심이 되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세계사에서 사라졌고 개별 민족사에서조차 잊혔지만, 민족의 무의식에 남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끼치는 옛 문명의 신화"를 주목하면서"북방 샤머니즘 문명권에 속하는 고조선의 단군신화와 천오백 년 이상을 이어온 무교 전통이, 신라의 풍류도를 거쳐 마침내 조선왕조 말기인 근대 이행기에 수운 동학에로 단속적으로 연결되고 있음을"추적한다. 이러한 노정에서 "샤머니즘의 세계사적 보편성 속에서 한국적 샤머니즘의 특수성을 살피고 이를 통해 수운 동학을 재발견함으로써 유역문예론의 사상적 발판을 마련"하는 맥락이다. 

'유역문예론'(솔)은 오래 벼려온 그의 생각을 충실하게 정리하면서 구체적인 작품들을 통해 그 속살을 내보이는 노작이다. 문학평론가 임우기를 그가 운영하는 서울 서교동 '솔' 출판사에서 만났다.


-2006년 '유역'이라는 잡지를 창간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유역'에 관심을 쏟아왔는데, 이 개념을 떠올리게 된 배경은?
"교류와 연대 개념의 네트워크 시대에 어울린다고 본다. 사실 웹이라는 것이 거미줄이라는 뜻 아닌가. 웹 시대의 지역이라는 것은 고정적이고 단절적인 느낌이 있다. 유역이라는 것은 그 흐를 류(流)자가 꼭 강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물이 있는 곳에 생명들이 산다. 사막이나 산악 국가에서도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물의 근원적 의미가 있는 거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유역이라는 것은 비슷한 언어 문화 역사를 공유하는데, 그런 것을 바탕으로 해서 유역의 고유한 환경을 다 존중하자는 그런 거다. 거기서 출발해 유역문예를 20년 전에 처음으로 제안한 건데, 조선 전체 유역을 본다면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지하 시인이 그에게 넘겨준 '회색 바랑'은 결정적으로 동학사상을 천착하게 된 계기로 작동했다. 그 바랑 안에는 지하 시인이 감옥에서 쓴 노트를 비롯해 동학 관련 책들이 들어 있었다. 이 때 이래 그는 수운의 사상을 유역문예론에 본격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유역문예론은 "동학을 어떻게 실천하는가 하는 자문에 대한 자답"이라고 규정했을 정도로 동학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동학의 어떤 사상이 핵심인가.
"자재연원(自在淵源)과 원시반본(原始返本)이 큰 축이다. 자신 안에 깃들어 있는 한울님, 그 '신령' 혹은 '자연'을 발견하고 본디 시작으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인류 멸절의 대 위기 시대를 살고 있는 이 즈음, 원시반본은 필수 지향 항목이다. 문예도 마찬가지다. 자신 안의 '한울님'을 발견해 '신통'하는 일, 창조적 유기체로서의 그 '귀신'을 영접하는 일이야말로 지금 문예에서 절실한 덕목이다."

▲임우기는 '유역문예론'을 실천하기 위해 "창작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진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는 '유역문예론'에서 '원시반본'을 더 구체적으로 풀어놓았다. '원시반본은 그야말로 가을에는 뿌리로 돌아가야 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봄여름에 뿌리로 가지로 잎으로 뻗어 올라가던 수기가 가을이 되면 일제히 뿌리로 돌아가면서 열매를 맺습니다. 농부가 봄여름 애써 초목을 가꾸는 것은 가을에 열매를 거두기 위한 것이듯이, 하늘과 땅이 봄에 생명을 낳아 여름까지 기르는 것은 오로지 가을에 열매인 인간을 거두기 위해서입니다. 가을의 열매는 하늘과 땅, 인간의 덕이 하나가 되어야 맺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창작을 수행하는 입장에서 유역문예론은 어떻게 실천 가능한 것인가.
"무엇보다 진솔해야 한다. 진솔하게 삶에 부딪혀야 한다. 진솔한 마음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과 서로 통해야 된다. '수심정기(守心正氣)라는 것은 수운 선생이 하신 말씀인데, 지킬 수(守)자를 쓴다는 것은 내가 이미 한울님을 모셨기 때문에 지킨다는 거다. 닦을 수(修)도 때로는 번갈아 쓴다. 한울님을 지키는 것은 거의 종교 차원으로 가야 되는데, 자기 마음을 닦는다는 건 진솔한 경지로 가는 것이다. 그것 없이는 '무위자연'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작가에게 두번째로 필요한 것은 자기 안의 '자연'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수심정기'가 필요하고, 일상에서의 단련을 통해 천진난만한 본디 자연 상태의 무의식 내지는 '귀신'을 불러내는 일이 필요하다는 맥락이다. 그 '자연'은 '은밀한 내레이터'를 통해 행간에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시각이다. 그는 백석 시인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그가 껴안은 북방 샤머니즘의 정신과 이념이야말로 '원시반본'의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고 썼다.

▲임우기는 "한국 문학은 서구 근대 미학에 종속돼 있다"면서 "고대 희랍 철학이나 문학예술에서 총체성의 전범을 추론해냈듯이 이 땅의 비평가들도 루카치식 '총체성'에 견줄 만한 조선 인민 정신의 근원성과 그 '인신적 총체성'을 왜 찾아보려 하지 않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시인은 자기 안에 은폐된 '신령한 존재' 혹은 샤먼적 존재와 접하고 '네오 사먼'이 되는 순간 '저절로' 창작의 시간이 찾아왔음을 감지합니다. '신령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신령을 모시고 이를 통해 바깥 세계와 접하여 만물을 화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예술 창작에 있어서 상서로운 조화를 일으키는 최령자(최고로 신령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명상이든 양기든 다른 어떤 수행 방식이든, 자기를 닦는 성실한 단련 과정이 기본적인 것입니다.'


그는 '귀신론'은 자칫 종교 차원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모든 종교에는 근본주의 원리가 있는데 그 원리주의에 빠지면 문제가 되는 만큼 이 부분을 굉장히 조심했다"면서 "절대화 신격화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과 글을 살펴보면 '귀신'이란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온갖 만물에 깃든 은미한 기운을 일컫는 것으로 다가온다. 수심정기를 통해 자신 안에 깃든, 인간이라는 '최령자' 안에 내재한 '자연' 상태의 신과 접속하면서 천진난만하게 펼쳐내는 '창조적 유기체'로서의 귀신을 그는 거듭 말했다. 

이번 책은 문답 형식으로 유역문예 이론의 사상적인 근간을 다양한 측면에서 주고받은 글을 포함해, 백석 김수영 기형도 오봉옥 육근상 이나혜 강민 송경동의 시, 안삼환 심아진 김성동 반수연 이경란 김이정의 소설, 홍상수 영화와 송유미 권진규 김호석 김준권의 미술까지 아우르고 있다.

▲임우기는 "어머님의 평생 치성이 없었다면 이 책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리운 어머니'께 '유역문예론'을 헌정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는 "문학과지성사, 민족문학작가회의, 박경리 선생의 토지문화재단 등 조직들에서 맡은 중책들을 제 스스로 판단에 따라 그만두다 보니, 저같이 학연이나 인연, 지연이 없는 촌놈은 문학 판에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나 홀로 돈키호테 신세가 되었다"면서 "우환과 시련이 많았지만 오히려 나도 모르게 단련이 되어 유역문예론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보다는 야생에서 떠돌았던 그에게 어느날 학교에 불려갔다 온 어머니가 "너는 책이 궁금하지도 않냐"라는 말을 던졌는데,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더니 어머니는 다시 "얘야 그냥 자라, 잠이 보약이다"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목재소와 고물상을 운영하면서 제대로 관광 한 번 다니지 못하며 살아온 '도시의 촌사람'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독실한 불자였던 어머니는 늘 집안 뒷곁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는 이번 책을 '그리운 어머니·장모님께' 바쳤다. 어머니의 한 마디가 내내 아프게 박혀, 아들은 종내 험난한 문학의 길에서 이처럼 두툼하고 깊은 책을 써낸 셈이다. 

그를 만나러 가던 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눈에 밟혔다. 그가 자란 어린 시절 환경은 "극장, 시장 등이 함께 있는 지역이라서 늘 연녹색 창백한 얼골을 한 메마른 창녀들, 불량배들, 한쪽 손이나 발이 없는 숱한 상이용사들, 아편쟁이들, 자신의 피를 뽑아 팔기 위해 조그만 병원 뒷문 앞에 줄지어 선 매혈자들, 바람 잘 날 없이 벌어지는 싸움질, 이웃집 부부싸움의 악다구니 소리가 끊이질 않는 동네였다"면서 "그 아수라 지옥 같은 동네 환경이 너무 싫었지만 무당과 연주자의 징소리와 북소리 꽹과리 소리, 그리고 걸직하면서도 구수한 무당의 이야기와 '소리'에 굿판에 빙 둘러 선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하고 때론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위로하던 그 시절, 그 기억도 지금껏 남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내 불우한 어린 시절의 영혼을 정화하고 구원하는 데에 이렇듯 긴 세월이 소요되었다"고 썼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