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재소자, 북한서 이미 필로폰 경험해 쉽게 넘어가
관련단체 공론화에 탈북민들 "왜 어두운 면 다루나" 불만
함경북도 회령에서 살다가 2012년 탈북한 김정석(47·가명)씨는 마약투약혐의로 최근 징역 2년6개월 형을 살았다. 남한에 온 후 김 씨는 여러 직업을 거쳤지만, 1년 이상 오래한 일은 없었다.
와중에 다단계 사기까지 당했다. '동포'라고 부르며 가깝게 지낸 북한이탈주민(탈북민)에게 당한 사기였다. 생각했던 자본주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두고온 가족을 떠올리니 외로움이 찾아왔다.
화물차 기사 등의 일을 전전하던 그는 우연한 자리에서 북한산 필로폰을 맛봤다. '고향의 맛'이었다.
한 번이 두 번, 두 번이 세 번이 되면서 '마약의 늪'에 점점 빠져들었다. 탈북 전 북한에서 이미 맛봤기에 거부감도 없었다.
수법도 점점 대담해졌다. 서울 대림동 노래방에서의 '경험'으로 받은 첫 처벌은 벌금 30만 원에 그쳤다. 거기서 멈췄다면 김 씨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김 씨의 고백.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니 잠을 깨려는 심산에 몇 차례 운전하면서 흡입한 적도 있어요. 그러면서 더 빠져들었죠. 나중에는 아는 조선족 친구로부터 '직접 팔아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지요. 1g에 50만 원씩 주고 팔았는데, 운전 일하는 것보다 수입이 많았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판매책으로 활동하게 된 겁니다."
지금은 완전히 '그 세계'에서 손을 씻었다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 생각은 다르다. 한 지인은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이따금씩 회령에 살 때 종종 마약 밀수를 했다고 털어놓는 그가 마약을 완전히 끊었다고 그대로 믿긴 어렵다"면서 "내륙 지역과 달리 중국 접경 지역은 마약에 많이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다크웹 등 활용해 대량 수입에도 직접 관여 늘어나
필로폰(Philopon)으로 많이 알려진 '메스암페타민'은 일본에선 히로뽕(ヒロポン), 중국에선 핑두(氷豆)라고 불린다. 투명한 결정체에 무색무취한 특성 때문에 북한에선 은어로 '얼음'이라고 부른다. 국내 탈북자들이 부르는 이름은 중국 영향을 받은 탓에 '삥두' '핑두'다. '빙두'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마약은 탈북민 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숨어서 몰래몰래 하던 것이 점차 조직화하는 양상이다. 국회 행정안전위 소속 오영환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교정시설에 수용된 탈북민은 180명이었으며 이중 마약류 관련 범죄로 징역형을 살고 있는 이는 30.6%인 55명이었다. 전체 탈북민 수용자 3명 중 1명이 마약사범이다.
비중은 2017년(37.5%)에 비하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7월 말 현재 복역자 174명 중 마약사범은 54명으로 31%를 차지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탈북민 마약사범 이명성(44·가명)씨를 구속했다. 이 씨는 2018년 11월 다크웹에 '[서울 경기] ice, mess 순도 97%↑ 원산지: north korea'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글에서 그는 "… 여러분께 순도 높은 북한산 얼음 소개해드리려고 왔습니다.… 최소 수량 1짝대기 ○○에 모십니다. 대량 도매는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적었다. 얼마 못가 김 씨는 수사당국에 검거됐다.
탈북민 사회는 남한 내 또 다른 사회다.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이들은 우리 정부의 여러 지원을 받지만 그걸로 모든 게 채워질리 만무하다. 대다수가 혼자 탈출해 특별한 연고없이 남한에서 만난 탈북민과 의지해가며 생활한다. 마약은 향수병이라 불리는 외로움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상당수 탈북민은 이미 북한에서 마약을 경험했다. 5년 전 양강도 혜산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한 이정식(38·가명)씨는 "2010년 이후에 북한을 떠나온 탈북민들은 거의 대부분이 빙두를 경험해봤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 씨는 "북한에서 마약하다 걸리면 보위부에 끌려가 각서를 쓰거나 현금 얼마주고 풀려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탈북민들이) 남한에서도 그렇게 심각한 범죄라고 보질 않는다"라고 밝혔다.
북한인권센터가 운영하는 'NKDB 통합인권DB'에 따르면, 2018년 4월 등록된 마약 단속 처벌 결과에서 교화소는 30.3%, 단련대는 24.6%였다. '뇌물주고 나왔다'는 응답은 31.1%로 가장 많았다. 교화소, 단련대는 북한식 교정시설이다.
경기도 고양시 모 한식당에서 일하는 김정미(35·가명)씨도 북한에 있을 때 빙두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여름이었던 걸로 기억나요. 배탈이 나서 방을 데굴데굴 구르는데, 그걸 보던 친구가 '이거 몇 번만 해보라. 금방 낫는다'라고 했어요. 그때가 첫 빙두 경험이었지요. 딱 세 번 했는데, 거짓말처럼 배가 안 아프더라고요. 그 땐 진짜로 그게 약이라고 믿었어요."
"동포 허물을 어떻게 말하나"…알면서 눈감아 주는 세태
우리 관계기관에 귀순의사를 밝힌 탈북민들은 국정원, 하나원 등에서 여러 조사를 받는다. 이 때 마약류 검사는 필수다. 북한이나 탈북 후 중국, 동남아 등 다른 나라에서 마약을 복용한 것은 처벌대상이 되질 않는다. 탈북교육 기관에서 봉사활동하는 A씨는 "관계기관에서 "한국에 살면서 마약하면 큰 범죄가 된다'고 신신당부하지만 귀담아 듣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국내 탈북단체들 사이에서도 마약은 골칫거리다. 한 탈북단체 관계자는 "함께 사선(死線)을 넘어온 동포들을 생각하면 모른 척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그래야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주에서 건축 일을 하는 정진형(49·가명) 씨 설명은 더 구체적이다.
"북한에서도 생일 등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많이 하는 게 빙두였어요. 여기서도 마찬가지에요. 몇 해 전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심심한 데 이거나 할래'라며 꺼내는데 빙두였습니다. 은박지 위에 빙두 몇 알갱이를 올려놓고 밑에서 가열하면 그 수증기가 빨대를 타고 유리병으로 들어가요. 물이 채워진 유리병을 거치면서 수증기가 정화되기 때문에 불순물이 제거된 빙두를 맛볼 수 있지요. 그걸 코로 흡입하는 겁니다."
정 씨 역시 상습 마약혐의로 실형을 살고 나왔다. 그가 했던 방식은 연기흡입식 '프리베이스'다. 정맥주사기를 이용하는 '물뽕'도 많다.
몇몇 탈북단체에서 마약 문제를 공론화하려했지만, 모두 무위에 그쳤다. 이들이 내세운 논리는 '동포사회 어두운 면을 왜 굳이 보이려냐'는 것이었다. 한 탈북단체 관계자는 "남한 정보기관도 탈북민 마약 실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걸로 안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냥 모른척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코로나19로 경제난이 심화하면서 아예 마약 유통에 가담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올해 초 국정원, 경찰, 검찰, 인터폴이 공조수사를 벌여 검거한 최 모 씨는 그동안 국내 마약상 사이 '탈북민 마약왕'으로 불렸다.
최 씨를 비롯해 상당수 탈북민 마약사범들은 실형을 산 후 더 빠져들었다. 국내에서 마약 유통에 가담해 처벌을 받은 마약사범들은 취재 과정에서 "교도소 생활 중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남한 재소자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제공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이 마약 유통에 손을 대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평양에서 살다 2000년대 중반 북한을 탈출한 김명진(51·가명) 씨 말이다.
"동남아 등지에서 100g그램이면 1000만 원 가량합니다. 그걸 국내로 운반해주면 통장에 몇 백만 원이 꽂히는데, 돈 쉽게 버는 방법을 안 이상 왜 그걸 안하겠습니까."
단순 가담자 조차 교도소 복역 후 전문 유통책 변신
지난 7월26일 관세청은 보도자료(2022년 상반기 마약류 밀수단속 동향)를 통해 올 상반기 중 총 372건, 238kg 상당의 마약류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중 빙두 적발량은 전년 동기대비 100% 늘어났다.
코로나19로 북한과 중국 간 교역이 중단되면서 국내로 들어오는 빙두 상당수는 태국, 미얀마, 라오스 등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들이다. 이들 중 일정량이 국내 탈북민 사회로 흘러들어오고 있다는 게 우리 정보당국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관련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성남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탈북민 이두성(39·가명) 씨 얘기다.
"생각보다 탈북민들이 대한민국 법을 잘 몰라요. 단순 복용으로 걸리면 처음에는 30만 원 정도 벌금형을 받는대요. 그러다 몇 번 더 하면 실형이 떨어지지요. 그 때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하거든요. 그러면서 풀어주는데, 많은 북한 사람들이 그게 뭔지 모릅니다. 그래서 집행유예 기간 동안 또 그 짓(마약 복용)을 하다 중형을 선고받는 이들도 꽤 있지요."
이 씨는 "무조건 해선 안 되는 일이지만, 그만큼 관련 교육도 절실하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김윤영 전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 등이 쓴 논문(탈북민 마약류 범죄 대책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탈북민 사회정착 지원교육 기관인 하나원의 정규 교육 400시간 중에서 마약류 관련 교육은 준법 교육(2시간), 범죄피해 구제사례(2시간), 중독 예방 교육(1시간) 등 총 5시간으로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학과 교수는 "북한에선 마약이 범죄로 규정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남한으로 와 심리적, 경제적 겪으면서 하나원에서 받은 5시간 남짓 범죄예방교육으론 예방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15년 이상 마약 사건을 다뤄온 박진실 변호사는 "의지만으로 끊기는 정말 어려운 게 마약인데, 하나원 교육 인력이나 사회적 인프라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전문가 파견 교육, 공공기관 의료 지원 등을 통해 마약 중독 탈북민이 회복되는 게 사회도 건강해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탈북자 다수 "하나원 등 남한 정부 마약 교육 태부족"
실제로 탈북민들은 국내 마약관련법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최영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0년 아시아교정포럼 학술지에 낸 논문(북한이탈주민의 범죄피해 및 범죄발생 관련 법지식 평가와 법교육의 개선방안)에서 탈북민에게 △한국에서는 마약을 가지고만 있어도 처벌 받는다 △의사의 처방을 받지 않고 마약을 복용하면 처벌 받는다 △마약인 것을 모르고 운반해 준 경우에는 처벌 받지 않는다 등을 물었다. 이중 '마약인 것을 모르고 운반해준 경우에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항목에서 0.44점으로 일반국민(0.58점)과 큰 차이를 기록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성남의 한 탈북민은 "평소 알고 지내던 탈북민이 2~3년가량 소식이 끊겼다면 거의 마약 때문에 형을 살다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온 이들이 설마 마약 하는 것까지도 '자유'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아쉬워했다.
KPI뉴스 / 특별취재팀 송창섭·서창완 기자 realson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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