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반도체 전쟁,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죽고사는 문제

UPI뉴스 / 2022-10-12 10:17:42
미국의 패권 고수에 반도체가 핵심 지렛대 역할
세계 각국, 연구개발·세제 등 반도체 지원 '올인'
위기의 한국 반도체, 지원법안은 국회에서 낮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반도체와 자동차, IT 기업 경영진들을 화상으로 불러 놓고 회의를 가지면서 반도체 웨이퍼를 손에 들고 흔든 일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반도체를 중요하게 여기는구나 내지는 미국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또 지난 5월 방한 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삼성전자 평택 공장으로 갈 때는 파격에도 불구하고 투자 유치에 적극적인 모습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이후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움직임은 반도체를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을 지키는 핵심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 반도체 관련 이미지 [셔터스톡]

美, 中 대결 구도의 핵심 지렛대는 반도체

미국은 각종 법령과 행정 조치를 잇달아 쏟아내며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당초 320억 달러로 책정됐던 미국의 반도체법 지원 규모는 백악관과 의회를 오가면서 520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여야는 입장 차이로 의회 통과가 지연되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대한 혜택만을 따로 떼어내 통과시키는 기민함을 보여줬다.

더불어 미국의 반도체 정책은 중국을 정조준하고 나왔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만들어서 세액 공제를 받은 기업이 중국에 투자하면 받은 혜택을 모두 토해 내도록 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의 기술이 들어간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가 중국에 일절 들어갈 수 없도록 하는 초강경 조치까지 서슴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반도체 기업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의 국영기업과 다르지 않은 결과를 빚게 될 것이다.

미국,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TSMC 파괴 및 인력 철수까지 거론

최근에 블룸버그 통신이 미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반도체에 대한 미국의 절실함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 TSMC를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이 TSMC 시설을 먼저 파괴하고 엔지니어들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미 행정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파괴에 인력 철수라는 단어까지 등장하자 대만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대만 언론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과학자들을 미국으로 데려간 것과 유사하다면서 아무리 미국이 대만의 핵심 파트너라 하더라도 대만의 동의 없이 TSMC를 파괴하고 인력을 데려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고", "미국이 대만을 지켜주지 못하게 되면" 등의 여러 가정이 전제된 상황이긴 하지만 미국은 반도체와 관련해서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고려해 대응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만큼 반도체 산업의 안보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고 그 가치를 중국에 넘겨 줄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세계 반도체 기업 1위 자리 TSMC에 뺏겨

반도체를 둘러싼 각국의 경쟁은 이제 전쟁이라는 표현이 일상화할 만큼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로서는 또 나쁜 소식을 접했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의 자리를 대만의 TSMC에게 내준 것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 세계 1위에 오른 이후 인텔과 엎치락뒤치락 경쟁을 벌여왔는데 올해 3분기에 그 자리를 TSMC에 내주고 말았다. 3분기 동안 TSMC는 매출이 전분기보다 11%늘어난 202억 달러를 기록해 19%가 줄어들어 182억9000만 달러에 그친 삼성전자를 추월한 것이다. 올해 연간 기준으로도 TSMC가 1위 자리를 탈환할 것이 유력해 보이는 상황이다. 

더구나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은 3나노 개발 소식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부문에서 TSMC를 이기는 것은 요원하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 국가의 전폭적 지원 없이는 생존 어려워

미국에서는 한때 반도체법 통과가 지연되자 인텔과 마이크론 등 주요 기업이 나서서 보조금 없이는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수 없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반도체 산업은 공장을 건설할 때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공장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전기와 용수는 자금의 문제를 넘어 정부의 지원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반도체 산업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퍼붓고 있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연합은 총 2조 유로의 코로나 대책 예산 가운데서 1500억 유로를 반도체 육성기금으로 전용했다. 일본은 알다시피 자존심을 구겨가며 구마모토에 TSMC 공장을 유치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 육성정책은 더욱 강력하다. 대만은 반도체 산업에 대해 핵심기술부터 인력, 연구개발, 세제까지 전 분야를 연계해 종합지원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법인세 부담률은 14.1%로 한국의 26.5%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또 해외 고급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소득이 우리 돈으로 1억3000만 원이 넘으면 초과분의 절반에 대해서만 과세를 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 정책 덕분에 매출액이 10억 달러를 넘는 반도체 기업의 수는 28개에 달해 12개인 우리나라의 2.3배에 달한다.

한발짝도 앞으로 못 가는 한국의 반도체 지원법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양향자 의원이 지난 8월 4일 대표 발의한 반도체 지원법, 소위 K-칩스법은 두 달 넘게 국회 산업위 소위에서 잠자고 있다. 심사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세제를 다룰 기재위는 소위 구성조차 안 돼 있는 상황이다.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24일까지는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국회 쪽 얘기다. 그 이후에도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게 K-칩스법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를 수출 효자로만 본다면 반도체 산업의 육성은 먹고 사는 문제다. 그런데 반도체는 4차 산업에서 핵심 자원으로 등장했고 미중 패권 경쟁의 핵심 자원이 됐다. 이제는 죽고사는 문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대만의 경우를 빚대서 반도체 방패라고 하고 반도체 안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요즘 국감에서 친일 국방이 공방을 빚고 있다. 대신에 반도체 국방을 걱정하는 소리가 여의도에서 들리기를 바라는 것은 허망한 기대에 불과한 것일까?

▲ 김기성 경제평론가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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