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쌀, 시장격리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UPI뉴스 / 2022-10-05 15:48:09
쌀 생산량 감축이라는 정책 목표 구호에 그쳐
쌀 재배면적 줄이는 농민 지원 방안 모색해야
쌀에 대한 불신 해소와 소비 증대 방안도 과제
쌀을 얘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게 한자 쌀 미(米)자다. 풀어보면 팔(八) + 십(十) + 八(팔)'자로 이뤄져 있어서 쌀 한 톨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농부의 손길이 88번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만큼 정성이 필요하고, 그래서 쌀 한 톨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논은 경지 정리가 잘 돼 있어서 쌀농사는 대부분 기계로 이뤄진다. 쌀농사의 기계화율은 99%에 육박하고 있다.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벼가 자란다는 말은 옛말이 돼 버렸다. 

농협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것을 보면 3000평 농사를 짓는데 고추는 1448시간의 노동이 필요하지만, 쌀은 95시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5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최근에는 농사를 대신 지어주는 농작업 대행회사까지 등장해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도 쌀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 쌀 관련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쌀 생산량 줄여야 하지만, 제도는 헛바퀴

쌀값이 폭락하면서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쌀 생산량이 줄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계화 덕분에 고령층이 농사를 짓기에는 쌀이 가장 수월하다 보니까 고령화가 극심한 농촌에서 쌀값이 떨어져도 쌀농사 말고는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또 2020년에 도입한 공익기능증진 직접지불금(공익직불금) 사업으로 쌀이든 밭작물이든 모든 작물에 똑같은 직불금을 지급하고 있다. 쌀 말고 다른 작물을 심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쌀 재배면적은 2020년 72만6000ha에서 지난해에는 73만2000ha로 오히려 늘어났고 올해도 재배면적이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쌀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는 정책 목표는 말에 그치고 실제 현장은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가 지배하는 쌀

더구나 전체 농지에서 쌀농사를 짓는 논의 면적이 46%에 달하고 농가 가운데 쌀농사를 짓는 비중이 52%에 달한다. 올해처럼 쌀값이 떨어지면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게 정치권이다. 그래서 정부는 올해 들어 쌀 37만 톤을 사들인 데 이어 추가로 45만 톤을 매입해 모두 82만 톤을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했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이 1조8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시장에서 격리된 쌀은 보관 비용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최장 3년의 보관 기간이 끝나면 술을 만드는 주정용이나 가축 사료용으로 헐값에 처분된다. 보관 비용을 충당하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고 한다. 혈세로 마련된 쌀 매입 비용은 사실상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야당 주도로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양곡관리법을 개정하려고 한다. 발의된 개정안이 확정된다면 앞으로 정부는 일정 기준 이상으로 생산된 쌀을 무조건 사들여야 한다. 너도나도 쌀농사에 뛰어들고 초과 생산된 쌀은 정부가 한정 없이 사주게 되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게 사실이다.

쌀 재배면적 줄이는 방안으로 전략 작물 직불제 기대

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던 적도 있다. 2018년부터 3년 동안 실시된 쌀 생산조정제가 그 사례에 해당한다. 쌀재배 농가가 콩이나 조사료 등 다른 작물로 바꾸면 소득의 일정 부분을 보전해 주는 것이었다. 이 제도가 실시된 3년 동안 쌀 재배면적은 73.8ha에서 72.6ha로 매년 조금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가 이 제도가 폐지되자 작년부터 다시 쌀 재배면적이 늘어나고 있다.

다행히 정부는 내년부터 이 제도를 부활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략 작물 직불제를 도입해 논에 벼 대신 콩이나 밀 등을 재배할 경우 직불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한시적인 제도였던 쌀 생산조정제를 항시적인 제도로 바꾸는 것이어서 그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보다 전향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가 특정 작물을 재배하도록 개입하는 것보다는 농민들이 자신의 여건에 맞게 농지를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쌀농사를 짓지 않는 조건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되 꼭 농사를 짓는 것뿐 아니라 체험 관광이나 농산물 가공 등 비농업 분야도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는 젊은 층의 농촌 유입을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침 급식 등 쌀 소비 증가 방안도 마련돼야

2000년 이후 작년까지 변화를 보면 쌀 생산량은 26.6%가 줄어든 데 비해 1인당 쌀 소비량은 39.2%가 줄어들었다. 어렵게 쌀재배 면적을 줄인다 해도 소비가 늘지 않으면 쌀의 공급과잉 문제는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역대 정부는 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쌀을 사들여서 불만을 무마하는 손쉬운 방법만 택해 왔다. 이제는 쌀 소비 증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쌀 소비 증가를 위해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것이 학교에서 아침 급식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쌀 소비를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고 학생들의 영양에도 도움이 되고 또 맞벌이 부부들의 가사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아침 급식은 소관 부처가 농림축산식품부가 아니라 교육부이다 보니 논의가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번 정부에서 전향적으로 검토돼야 할 것이다.

또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쌀에 대한 불신을 풀어주는 게 선행돼야 한다. 언제부턴가 쌀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그러나 영양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쌀과 반찬으로 구성된 한식이 가장 균형 잡힌 식단이라고 한다. 따라서 건강식으로서의 쌀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춰서 즉석밥이나 김밥, 도시락에 특화된 품질을 쌀을 개발할 것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쌀농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의 논리를 배제하는 것이다. 생산은 줄이고 소비는 늘리는 경제 논리로 접근하되 이 과정에서 농민의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 그래야 세금을 쓰는 이유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 김기성 경제평론가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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