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 전쟁 발발 이후 첫 패배 인정…궁지 몰린 푸틴

김당 / 2022-09-14 17:22:03
푸틴, 하르키우 패배로 선택지는 '동원령' 또는 '협상 카드'뿐
패배로 밀블로거들 '공황'…"크림반도 러시아인 가족에 대피령"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 겹쳐…"소련 붕괴 이후 최대 위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주에서의 패배를 인정했다. 크렘린이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패배를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 적(러시아)들이 13일(현지시간)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가족을 긴급히 피신시키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GUR) [GUR 누리집 캡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독립적으로 전황을 추적해온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13일(현지시간) "크렘린의 관리들과 여론 선전가들이 하르키우 주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원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ISW는 "이는 제한적인 세부 사항으로 과장되거나 날조된 러시아의 성공에 대해 보도하던 이전 패턴에서 현저한 변화"라면서 이같이 분석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국방부는 원래 하르키우 주에서 패배한 것을 돈바스의 '해방'과 '선의의 제스처'로 스네이크 섬에서의 철수를 우선시한 결정과 유사하게 설명했으나 이 '거짓 내러티브'가 온라인상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 10일 "돈바스 해방이라는 특별 군사작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바라클리아와 이지움에 배치된 부대를 재편성한다"고 발표했다.

공식적으로는 '재편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하르키우의 병력을 철수하면서 이 지역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ISW는 이에 패배에 대한 책임을 푸틴에게서 지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대신 하르키프 주의 손실을 푸틴의 서클 내에서 정보가 부족한 군사 고문에게 돌리고 있다는 크렘린 소식통을 인용해 "크렘린이 하르키우에서 패배를 인정한 것은 푸틴이 최소한 어떤 상황에서는 러시아의 패배를 인정하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데 집중할 용의와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크게 바뀐 전황 지도(9월 6일과 13일 비교) [알자지라 캡처]

하지만 외신과 일부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하르키우에서의 패배로 선택지가 줄어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소련 붕괴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러시아 국영방송은 전선이 밀리는 것을 두고 "병력 재편성 작전의 일환"이라며 자국 군대의 영웅적인 모습을 칭송하고 있지만, 전쟁 지지 세력 사이에서조차 노골적인 불만이 표출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러시아 국가두마(의회) 몇몇 의원들과 야당 정치인들은 13일 개막된 가을 회기 첫 본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전선의 심각한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친정권 성향인 '정의 러시아당'의 세르게이 미로노프 당수는 러시아 국민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사회적 동원'을 요구했다.

미로노프 당수는 지난 10일 푸틴 대통령 주도로 모스크바에서 불꽃놀이를 포함한 성대한 행사가 개최된 것을 두고도 "오늘도 우리 청년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척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르키우 주에서 러시아가 패배하자 점령된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는 러시아인과 군인, 그리고 밀블로거(milblogger) 커뮤니티에선 공황 상태가 벌어지고 있다.

▲ 9월 13일(현지시간) 현재 우크라이나 전황 지도 [ISW & AEI's Critical Threats Project, ISW 누리집]

우크라이나 군정보부(GUR)은 이날 크림반도에 있는 러시아 당국이 우크라이나의 공격에 대한 대응책으로 가족들에게 러시아로 대피할 것을 촉구했고,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직원들은 크림반도에 있는 집을 팔고 가족들을 긴급 대피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에서 영향력이 큰 밀블로거 커뮤니티의 팔로워 40만명을 보유한 전쟁 지지 성향의 텔레그램 계정 관리자도 "2024년 대선에서 이 정부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CNN은 이날 러시아가 하르키우주에서 패퇴하면서 푸틴 대통령 앞에 놓인 선택지가 확전을 위한 '동원령'과 재충전을 노린 '협상'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이 전국적인 동원령을 내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 러시아 의회 일각의 동원령 요구에 대해 "현재로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없다"고 밝혔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아울러 동원령을 요구한 인사들이 온라인상에서 지도력을 문제 삼고 있는데 대해선 "이것이 다원주의의 한 예"라며 러시아인들은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국가 원수의 결정을 중심으로 결속돼 있다"고 답했다.

게다가 러시아가 주도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 사이의 내분도 푸틴을 궁지로 내몰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군사적 실패는 구 소비에트연방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니콜 파시니얀 아르메니아 총리(오른쪽)가 9월 7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 본회의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파시니얀 총리는 13일(현지시간)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CSTO 회원국 회의를 소집했지만 CSTO 집단안보협정을 발동하지는 않았다. [TASS, 러시아 대통령실]

아르메니아는 이날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가 중재한 휴전을 위반하고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국경을 따라 아르메니아군을 공격했다"고 비난했다.

니콜 파시니얀 아르메니아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이날 오후 CSTO 회원국 회의를 소집했지만 CSTO의 집단안보협정을 발동하지는 않았다.

ISW는 "우크라이나에서 6개월간의 파괴적인 전쟁 이후 쇠퇴한 러시아군은 휴전을 시행하거나 해당 지역에 추가 평화유지군을 배치하기에 충분한 병력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며 "러시아가 만들어 주도하는 정부간 군사동맹의 갈등에서 러시아가 군사 또는 평화유지 지원을 제공할 수 없는 경우 아르메니아 및 기타 CSTO 회원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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