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치의 판 뒤엎어 보겠다는 야망 드러내
'이로남불' 위기…과거 언행 성찰적 점검해야 "집권여당 대표가, 그것도 구태정치와 단절을 선언했던 젊은 정치인이 성상납과 알선수재 논란에 휩싸여 있고, 7억 원을 주고 성상납 사건의 증인을 회유하려 했다는 증거인멸교사 의혹까지 받고 있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니다. 연이은 가처분 신청으로 맹렬히 저항하고 있는 이준석은 정작 자신의 비위 의혹에 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낀다."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 이진순이 지난 9월 7일 한겨레에 쓴 '참 이상한 정치방정식'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이상한 일이다. 그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너무도 억울해 밤잠을 못 이룰 텐데. 억울한 건 죽어도 못 참는 성격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그런 인내심을 발휘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러는 걸까? 이진순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는다.
"권력암투의 생리에 밝은 그의 셈법은 영리하다. '이준석 성상납' 프레임보다 '이준석 대 윤핵관의 권력투쟁' 프레임이 그에겐 훨씬 남는 장사가 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랬듯 '권력으로부터 박해받는 자'의 이미지는 그의 주가를 급등시키는 반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이번 싸움에서 패하더라도 그의 비위 의혹은 권력투쟁 구도 아래 묻힐 것이고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위기가 가속될 때 그는 언제든 정치적 대안 카드로 다시 호명될지 모른다."
이진순이 이런 분석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지도자의 덕성과 자질이란 변수에 어떤 숫자를 대입하든 권력투쟁이란 함수에 들어가면 모든 윤리적·사법적 비위의 결과값이 0으로 수렴하고 증발하는 이 기괴한 방정식을 도대체 어떤 고등수학으로 설명해낼 수 있단 말인가?"
탁월한 질문이다. 이 질문 앞에서 가장 부끄러워 해야 할 쪽은 언론이다. 언론은 이준석에 대한 호·불호와 무관하게 오직 상업주의적 관점에서 장사가 더 잘되는 권력투쟁의 문제에만 집중함으로써 사실상 이준석의 그런 프레임 전환을 적극적으로 도왔으니 말이다. 언론의 협력에 고무된 이준석은 윤핵관을 넘어 윤석열을 직접 타격함으로써 한국 보수 정치의 판을 뒤엎어 보겠다는 야망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성상납 의혹? 그건 보수 정치의 판을 뒤엎는 거대한 과업에 비추어 너무도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준석의 시도를 기성 정치의 권위주의 체질에 대한 도전으로 예찬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권위주의 체질에 질린 일부 청년층에서는 이준석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이준석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선 절대적 신뢰를 보내면서도 이준석의 성상납 의혹에 대해선 이준석이 유죄 판결을 받아야 인정하겠다는 이중 기준을 보인다.
그런데 이준석은 과연 기존 권위주의 질서와 체질에 도전해 온 인물이었던가? 이준석은 눈물까지 보인 8·13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진 '선당후사(先黨後私)' 개념을 '근본 없는 용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국민의힘을 넘어서 조직에 충성하는 국민의힘도 불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오로지 자유와 인권의 가치와 미래에 충실한 국민의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가슴을 설레게 만들 정도로 정말 멋진 말씀이다. 다만 문제는 그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고 실천했느냐는 점일 게다.
이준석은 지난해 8월 부동산 관련 불법 의혹이 제기돼 제명 또는 탈당 요구 조치를 받은 6명의 의원을 향해 "가장 중요한 것은 대선 승리를 위해 모두가 합심하는 것이고, 선당후사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을 향하면 '근본 없는 용어'이지만, 자신이 요청하면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발휘해야 할 정신'이라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이준석이 "제가 제대로 역할을 맡으면 윤석열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 하락 문제를 20일이면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말한 건 7월 3일이었다. 자신이 당 징계의 위협에 시달리던 때엔 자신의 충성심을 강조하는 말을 해도 되지만, 7월 8일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고, 7월 26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는 윤석열의 발언이 공개되었으니, 사정이 달라졌다는 건가? 그렇다면 그냥 권력투쟁을 하는 것이지 무슨 큰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잖은가.
이준석은 지난해 6·11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비빔밥론'을 부르짖으면서 "저는 다른 생각과 공존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그가 한 일은 자신과 생각이 조금만 다르면 비판하고 공격한 것이었다. 자신의 주요 지지 기반인 2030 남성 세대에 어필하기 위해 영입 여성 인사가 매우 온건한 수준의 페미니즘 성향만 가져도 반대하는 횡포를 부려온 게 대표적인 예다.
'성상납 의혹'을 '윤석열 공격'으로 바꿔치기 한 이준석의 묘기 능력은 흔쾌히 인정하겠지만, 그가 좋아하는 사자성어 하나를 빌려 말하자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한때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등의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준석은 이미 '이로남불', '이적이'의 위기에 처한 건 아닌가? 자신의 과거 언행에 대한 성찰적 점검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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