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학자 심민화 최권행의 15년에 걸친 번역 결실
'죽음' 비롯한 107편의 다양한 이야기 진솔하게 전개
'붓 가는대로 쓰는' 가벼운 수필 아닌, 주체적인 탐구서
"충분히 사는 것은 너희의 의지에 달려 있다"
'죽음이 어디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어디서나 죽음을 기다리자. 죽음에 대해 미리 숙고하는 것은 자유를 예비하는 것이다. 죽을 줄 알게 된 사람은 예속을 모른다. 죽는 법을 아는 것, 그것이 우리를 모든 종속과 속박에서 해방시킨다. 생명을 잃는 것이 불행이 아님을 잘 알게 된 사람에게는 인생에 불행이란 없다.'
500년이 지나도 변함 없는 사실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는 일, '나'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는 그것은 우리가 필사(必死)의 존재라는 사실이다. 반드시 언젠가는 죽는다는 언설 앞에 달리 부정할 말이 무엇이겠는가. 1580년 프랑스 보르도 사람 미셸 드 몽테뉴(1533~1592)가 '에세'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생각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치밀하게 관찰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3권에 이르는 이 책은 지금까지도 유럽인들이 침대 머리에 올려놓는 애독서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65년 손우성 번역으로 나온 '수상록'이 지금까지 유통되다가 최근 불문학자 심민화·최권행의 15년에 걸친 각고 끝에 '에세'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번역 출간됐다. 1580년 판에다 후일 몽테뉴가 책 여백에 메모로 추가한 내용을 포괄한 1588년 판본까지 모두 반영한 결과물이다.
1권에서 특히 세월을 건너 뛰어 여일하게 공감을 진하게 느끼게 하는 항목은 인간 보편의 '슬픔'과 '죽음'이다. 몽테뉴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자주 경험했다. '에세' 1권을 두고 누군가는 절친의 죽음에 바치는 '봉분'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30대 초반의 친구 죽음은 큰 충격을 주었다. 친구에 이어 아버지가 갑자기 타계하고, 아우가 스물셋의 나이에 정구를 치다 공에 맞아 죽고, 태어난 지 두 달 된 첫 딸이 죽었다. 몽테뉴 자신도 낙마 사고로 가사 상태에 이르는 경험을 했으니 "이처럼 잦은 예들이 이처럼 예사로 우리 눈앞을 지나가는데, 죽음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떨쳐 버릴 수 있으며, 어떻게 매 순간 죽음이 우리의 멱살을 쥐고 있는 듯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그의 물음은 절실하다.
우리가 백 년 전에 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으면서 백 년 후에는 살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모순된 생각인데, 우리는 무의식 중에 죽음을 이렇게 사고한다고 본다. 몽테뉴의 말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나'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는 필멸의 존재다. 언젠가는 모두 죽어 소멸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인데도 자신의 죽음만을 안타까워하는 것 또한 가련한 태도이다. 몽테뉴의 말은 미구에 모두 죽어야하는 존재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한 번이면 되는 일이 괴로울 것은 없다. 그토록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일을 그토록 긴 시간 동안 걱정한다는 것이 도대체 이치에 맞는 일인가? 오래 살건, 얼마 못 살건, 죽고 나면 매한가지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에게 긴 것도 짧은 것도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너희를 위해 사물들의 이 아름다운 구조를 바꾸란 말인가? 죽음은 너희가 창조된 조건이요, 너희의 일부이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가 향유하고 있는 너희의 그 존재는 공평하게 죽음에도 속하고 삶에도 속한다. 너희가 태어난 첫날은 너희를 삶으로 이끌듯 죽음으로 이끈다. …너희가 하루를 살았다면 모든 것을 본 것이다. 하루는 모든 날과 똑같다. 다른 빛도 없고 다른 어둠도 없다. 저 해, 저 달, 저 별들, 그것들의 배치, 그것은 너희 조상들이 즐겼던 그대로요, 또 지금 있는 그대로 너희 자손들을 기껍게 할 것이다.'
역자 심민화가 서두에 지적한 몽테뉴의 죽음과 가까울 수밖에 없었던 이력들은 '에세'의 깊이를 새삼 느끼게 한다. '에세'는 영미권으로 건너가 '에세이'라는 명칭으로 불렸고, 이는 다시 일본으로 수입되면서 '수필' 내지는 '수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우리에게는 붓 가는 대로 쓰는 가벼운 장르로 굳어졌다. 본디 '에세'는 한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철저하게 들여다보면서 주체적으로 한 생을 개척해나가려는 의지가 담긴, '나'라는 개인의 해방을 통해 궁극의 평화를 얻으려는 적극적인 자아 탐구서라는 게 역자 심민화의 말이다.
말의 공허함을 말하는 이런 대목은 어떤가. 스파르타 왕이 수사학자 페리클레스와 싸우면 누가 더 세냐고 물었을 때 투키디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을 확인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왜냐하면 격투를 벌여 내가 그를 땅에 쓰러뜨려도 그는 보고 있던 사람들을 설득해 자기가 쓰러진 적이 없다고 설복해 이긴 것으로 만드니까요." 몽테뉴는 "여인들에게 가면을 씌워 주고 분을 발라 주는 이들이 만들어 내는 해악은 이보다는 덜하다고 할 수 있는데, 맨얼굴을 못 본다는 것이 별 손해는 아니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앞에 말한 자들은 우리 눈이 아니라 판단력을 속이며 그렇게 하여 사물의 본질을 변질시키고 부패시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고 덧붙였다.
주벽(酒癖)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몽테뉴는 "플라톤은 열여덟 살이 되기 전에는 술 마시는 것을 금하고 마흔 살 이전에 취하는 것을 금했다"면서 "그러나 마흔이 넘은 사람들에겐 음주를 즐기라고 하면서, 회식 자리에서는 인간에게 쾌활성을 부여하고 노년에 청춘을 돌려주며, 불이 쇠를 녹이듯 영혼의 정열을 부드럽고 무르게 해 주는 그 착한 신, 디오니소스의 권능을 충분히 빌려 섞으라고 명했다"고 전한다. 그는 특히 나이든 사람들에게 술이 유용하다고 역설했다. "나이든 사람들이 유익하긴 해도 맨정신으로는 엄두를 못 내는 춤과 음악을 즐길 용기를 주기에 적절하기 때문이며, 술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몸을 건강하게 해 준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물론 금주를 강조한 특별한 상황들이 빠지진 않았다.
'전쟁에 나갈 때는 지참하지 말 것, 모든 사법관과 판관은 자기 임무를 수행하거나 공적인 일을 토의할 때는 금주할 것, 다른 일을 봐야 하는 낮 시간은 음주로 허비하지 말고, 아이를 만들기로 한 밤에도 마시지 말 것.'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쉬이 변하지 않는 인간들의 조건이란 허탈하고 흥미롭다. 팔팔했을 때는 군림했던 가장도 늙으면 조심하라는 이런 자상한 충고는 어떤가. '노년엔 너무 많은 결함이 있고 너무도 무력합니다. 멸시당하기 꼭 알맞은 노년에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식구들의 애정과 사랑입니다. 명령과 두려움은 더 이상 무기가 되지 못합니다.'
짧고 긴 에세 107편을 죽을 때까지 이어간 몽테뉴는 "이것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종류의 책으로, 외골수의 황당무계한 구상에서 나온 것"(2권 8장)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심민화는 "인간사를 만드는 온갖 정념과 인간 세상의 오만 양상이 펜끝에 소환되어, 마치 법정에서처럼 그의 정신, 마음, 영혼 안에서 서로 반박하거나 거들며 '나, 미셸'을 드러내고, 증언하고, 만들어 간다"고 썼다. 이를 통해 그가 "잡탕, 랩소디, 잡담, 잡동사니 글 다발, 횡설수설이라고 자진 폄하하며 주목할 만한 점이라고는 그 괴상함뿐"이라고 폄하한 이 괴물 같은 글쓰기를 통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한 존재, '미셸 드 몽테뉴'의 움직이는 입체적인 초상화를 그려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홀수(최권행)와 짝수(심민화) 장을 나누어 번역하고 검토를 거치는 과정을 겪다가 이후 2권은 심민화, 3권은 최권행이 번역해 최종 과업을 마쳤다. 최권행 서울대 불문과 명예교수는 "어둡고 우울한 시간을 살아가던 몽테뉴에게서 신기하다고 느껴지는 점은, 그를 떠올릴 때면 늘 낙관이 밴 미소가 그려진다는 것"이라며 "사회의 토대로서의 '연민'과 관계의 기초로서의 '우정'을 이야기하는 그를 읽어 가면서 누군가의 마음과 영혼을 만나는 일이 삶의 방향과 모습을 형성해 간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고 썼다. 500년 전 사람 몽테뉴가 전하는 '충분히 사는 법'.
'너희의 인생이 어디서 끝나건, 거기까지가 전부이다. 삶이 유익했는지 아닌지는 기간에 달린 것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썼느냐에 달렸다. 어떤 자는 오래 살고도 조금 살았다. 아직 삶 중에 있을 때 그것에 유의하라. 충분히 사는 것은 너희의 의지에 달린 것이지 산 햇수에 달린 것이 아니다. 너희가 끊임없이 향해 가던 그곳에 결코 다다르지 않을 줄 알았단 말인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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