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울면서 들어왔다 울면서 나간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2-07-13 19:45:13
산문집 '사라지는 말들', 시집 '충북선' 펴낸 문학평론가 유종호
잊히거나 대체된 말들을 소환해 배경과 의미를 되짚은 노작
늙음에 대한 소회를 중심으로 삶을 진솔하게 들여다 본 시집
"남몰래 흘린 눈물이, 이르지 못할 그리움이, 어찌 내게만 없었겠느냐"

갈가지, 구메구메, 곤댓짓, 바지랑대, 말광대, 말전주, 망골, 보비위, 두툼발이, 오사바사하다, 삽주, 신섭, 유자코, 은군자, 얼레발, 설은살, 입찬소리, 호습다, 휘지다, 절곡, 출반주, 타개지다…….

지금은 다른 말로 대체되거나 쓰지 않게 된 우리 말들의 일부다. 이 중 몇 개나 해득이 가능한가. 대체로 아는 말들이 많으면 노년일 테고, 모르는 말들이 태반이라면 젊은 축에 속할 것이다. 아예 모두 모르는 말이어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 세상이 변하면서 말도 변하고 그 쓰임도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우리 말의 영역을 넓히려는 노력과 더불어 그 말에 얽힌 시대의 세목까지 외면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잊혀진 말들을 소환해 그 말이 쓰이던 배경과 의미를 밀도 높은 단행본으로 출간한 문학평론가 유종호. '정신 노화에 대처하는 나름의 방식'으로 쓰기 시작한 시들을 모은 두 번째 시집 '충북선'도 함께 펴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원로 인문학자 유종호(87·전 연세대 특임교수) 교수가 최근 펴낸 '사라진 말들-말과 사회사'(현대문학)에는 잊히고 대체된 사라진 말들의 세목이 지난 시대에 대한 기억과 함께 풍성하게 진설돼 있다. 유 교수가 미수(米壽)를 맞아 펴낸 이 책은 월간 '현대문학'에 지난 2년 동안 연재된 내용을 묶은 것으로 "말을 통한 잃어버린 시간의 탐구요 많은 동반자를 희구하는 사회사적 탐방"을 표방했다. 유 교수는 팔순에 접어들어 써온 시편들을 담은 시집 '충북선'(서정시학)도 함께 펴냈다. 늙음에 대한 소회를 중심으로 삶을 진솔하게 들여다보는 울림이 큰 시편들이 수록됐다. 종일 장대비가 내리던 날, 그가 일제 강점기에 준하는 세월 동안 살아왔다고 글에서 종종 밝힌 목동5단지 아파트를 찾았다. 

-사라져가는 우리 말을 되짚어보면서 그 말이 쓰이던 당시를 증언하고 기록하게 된 배경은 어떤 겁니까?
"우리 학생들은 주로 참고서에서 어휘를 보기 때문에 사전을 안 찾아봐요. 그래서 어휘가 매우 한정돼 있어요. 사전도 용례가 안들어가거나 예문이 들어 있어도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이를테면 '수퉁스럽다'는 말을 예전에는 부모들이 많이 썼는데, 내가 들은 범위 내에서는 '부끄럽고 좀 멋쩍다'는 뜻으로 쓴 거예요. 그런데 사전에는 '부끄럽고 분하다'고 적혀 있어요. 말의 현장에서 포착된 의미가 아니라 한자 말을 그대로 풀이해 놓은 거예요. '말광대' 같은 우리 말도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는데, 말광대의 역사를 보면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많아요. 결국 이 작업이 나에게는 잃어버린 시간의 탐구이고, 말의 변화라고 하는 것이 사회의 변화를 가장 민첩하게 보여주는 것이어서 일종의 사회사적 탐방이기도 한 것이죠. 이런 걸 계기로 우리 말도 사랑하고 과거도 좀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잃어버린 시간의 탐구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증언하고 남겨야 할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말은 대체로 언제 어떻게 왜 사라집니까?
"사라진다기보다 다른 말로 대체되는 거죠. 처음에는 '산아제한'이라고 했다가 '가족계획'이라고 했잖아요?  또 옛날에 곡기를 끊는다는 의미로 '절곡'이라는 말을 썼는데, 일본 사람들이 '단식'이라는 말을 퍼뜨린 거죠. 간디가 단식했다고 그러지 절곡했다고는 안 하죠. 염상섭의 소설만 하더라도 '절곡'을 썼고, 옛날 노인네들은 스스로 곡기를 끊는 절곡을 해서 생을 끝내기도 했죠. 지금은 자살이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자진'한다는 말을 썼어요. '살'(殺)이라는 말이 좀 끔찍하고 보다 직접적이니까 '자진'이라는 말을 쓴 건데 지금은 싹 없어졌죠."

▲원로 인문학자 유종호는 "말은 화장이나 순화보다 실상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가 말의 변화를 마뜩지 않아 하는 것은 아니다. 시류를 반영하는 것이야 자연스럽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외양보다 실질이라는 것이 그의 속생각이다. 그는 "강간이란 말이 슬며시 사라져가고 성폭행이란 어사가 대체하고 있는 것은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면서 "그렇다고 우리 사회의 잠재적 폭력성과 잔혹성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우리는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그는 또한 "형무소를 교도소로 고친다고 실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면서 "말의 화장이나 순화보다 중요한 것은 실상의 변화요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요컨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거나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폭력은 증가하게 마련이며, 중요한 것은 언제나 실질이지 외양이 아니다"는 생각이다.

시편에 자연스럽게 쓰인 '사라진 말'들은 산문집에서 세밀하게 전후 맥락이 설명되는 경우도 자주 눈에 띈다. 표제작 '충북선'에 등장하는 '인단' '타개진' '팔랑개비' '선불'이라는 어휘는 모두 산문집에 배경과 함께 의미가 흥미롭게 기술돼 있다.

충북선은 내 마음의/ 자연사 박물관/ 출발의 설레임은 언제나/ 종점의 허망으로 끝나고/ 달려와 사라지는 풍경에 끌리어/ 혼자만의 낮꿈을 즐겼지./ 카이저 수염의 백작인가/ 인단仁丹 광고판이 보이면/ 유치하게 부자가 되고 싶었지/ 타개진 가마니로 몸을 감싸고/ 화물차에 실려 가는 장정들/ 반역의 꿈은 사납고 무서워/ 무시로 먼 산이나 바라보았지/ 정하井下, 오근장梧根場, 도안道安, 소이蘇伊/ 이국정서의 낯선 매혹에/ 팔랑개비 나그네로 살고 싶었으나/ 지갑이 얇아서 책장이나 뒤졌지/ 선불 맞은 맹수의 비명/ 증기 기관차의 기적 소리 아니 나고/ 들리느니 이제는/ 점잖은 디젤의 기적일 뿐이나/ 충북선은 여전히 3등 노선/ 내 고독의 자연사 박물관/ 잃어버린 시간의 잔설殘雪이 푸르구나('충북선忠北線')


-충북선이 '내 마음의 자연사박물관'이 된 건 어떤 맥락인가요?
"조치원에서 충주까지 다니다 지금은 제천까지 연장된 충북선은 경부선이나 호남선과 달리 국철이 아니라 사철로 출발했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삼등 노선이에요. 유년기에 청주와 충주 중간 지역인 증평에 살았는데, 저기압일 때면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려오고 그럴 때면 어머니는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었지요. 자연사 박물관이 말 그대로 자연의 변화 역사를 담는 거라면, 내 어린 날 여러가지 경험들이 그 철도 언저리에 있는 거죠."

단 한 번 일은 없었던 일/ 기어코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살구꽃 그늘에서 소매 닦은 눈물도/ 그대의 찬 손 잡던 그 여름도/ 마른 입맞춤의 헤어짐도/ 단 한번뿐이었고// 분해서 불끈 쥔 빈주먹도/ 용서는 패배라 적어본 것도/ 사바로 쫓겨 온 스무닷새도/ 단 한 번뿐이었으니// 모두가 모두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이승 수자리는 애 저녁에 없었던 일.('Einmal Ist Keinmal')

-어차피 생은 한 번뿐인데, '한 번은 없었던 일'이라는 건 허무합니다.
"젊어서는 별거 아니었던 독일 속담인데, 늙어서 보니 정말로 실감이 납니다. 번역하기가 어려워서 '단 한 번의 일은 없었던 일'이라고 표현한 건데, 허무함보다도 아쉽다는 느낌이 들어요. 삶이 한 번 더 있어서 나쁜 놈들은 응징을 받고 착한 사람들은 보상을 받고 이래야지, 이걸로 끝내는 거는 불공평하고 정의에 맞지 않다, 그런 느낌이죠."

▲유종호는 "패션은 죽음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면서 "문인들이 눈치를 보며 글을 쓰는, '죽음의 어머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남몰래 흘린 눈물이/ 어찌 내겐들 없었겠느냐/ 불빛 없는 뒷골목에서/ 분해서 불끈 쥔 주먹으로/ 남몰래 훔친 눈물이/ 어찌 내겐들 없었겠느냐/ 이르지 못할 그리움이/ 벼랑 끝 꽃잎 되고 싶던 날이/ 깨어나지 말기를 간구한 밤이/ 어찌 내겐들 없었겠느냐/ 별을 그리다 스러진 꿈이/ 좋아하면 아니 되는 사람이/ 문득 먼산 바라기의 적막이/ 어찌 내겐들 없었겠느냐/ 세상은 갈수록 수미산/ 남몰래 흘린 눈물이/ 어찌 내게만 없었겠느냐('남몰래 흘린 눈물 –젊은 벗에게')

-시가 공감의 폭을 넓히려면 쓰는 이의 절실하고 솔직한 자세가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시편을 접하면서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데요.
"앙드레지드가 도스토예프스키론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좋은 감정과 좋은 의도에서는 나쁜 문학이 나온다고. 좋은 감정을 가지고 동포를 사랑하자, 이런 생각을 정말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쓰면 나쁜 문학이 나온다는 거죠. 오히려 숨기고 싶은 거, 남들이 얘기하지 않는 거, 시대와는 어긋나더라도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갖지 않는가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 시집에 한 가지 자부를 느끼는 것은 여기에 가짜는 없다는 겁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일부러 어렵게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비트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 드러나요. 옛날에 모더니스트들이 참 별 시도를 다 했는데 지금 읽히는 거는 거의 없어요. 김수영이나 김기림 김광균, 이런 사람들 빼놓고 모더니스트로서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요.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게 써야죠. 눈치를 보면, 결국 조금 작위적인 것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죠. "

-트렌드나 유행에 휩쓸리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라는 말씀은 특히 젊은 후배들에게 소중한 조언인 것 같습니다. 
"패션은 죽음의 어머니라고 이탈리아 시인이 노래했어요. 패션을 따르면 곧 죽게 된다는 얘기지요. 패션이라는 건 자꾸 변하잖아요? 패션이라는 게 유행할 적에는 멋있지만 곧 죽어버린단 말입니다. 문학인들도 죽음의 어머니가 되어서는 안 되죠. 김수영이 오래 살아남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어요. 김수영의 시는 보배도 많지만 돌도 많아요. '김소월은 신시(新詩)라는 자갈밭에 굴러 있는 희한한 옥돌이었다'는 지적이 있어요. 신시에 시다운 게 없었어요. 김소월 시에도 자갈이 많은데, 그래도 몇 개의 옥돌을 남겨놓은 거거든요."

▲ '울면서 들어왔다 울면서 나간다'는 말은 삶에 대한 우화 같다고 유종호는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울면서 들어왔다/ 울면서 떠난다는 옛말/ 단양에 있고 영월에 있고/ 충남 공주에도 있다/ 이승도 그와 같아/ 울면서 들어왔다/ 막상 떠나려니 아쉬워지나?('이승도 그와 같아')

-울면서 들어왔다 울면서 떠나는 공간이 이승에 적용되니 아연 느꺼워집니다. 
"단양이나 영월에 그런 말이 있어요. 워낙 궁벽한 곳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거기가 좌천지예요. 그래서 단양이나 영월 군수로 발령을 받으면 들어갈 때 울면서 들어갔다가 풍광이 좋고 인심이 좋아서 떠나려고 하면 또 막상 울음이 나온다는 건데, 울면서 들어왔다 울면서 떠난다는 말은 거의 전국에 어디에나 있어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것이 삶에 대한 우화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일흔 살이 되던 해(2004)에 첫 시집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를 상자한 이후 이번에 다시 시집을 낸 유종호는 "시와 모국어를 향해 건네는 소소한 애정의 헌사요 정신 노화에 대처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라며 "시인 소리 듣고 싶은 생각은 그때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서두에 밝혔다. 그는 "나이 들면서 삶이란 죽음으로부터의 도망이요 둔주라는 실감을 갖게 되기 마련인데 조그만 일에 몰두하는 것은 도망자의 공포를 조금은 희석시켜 주리라"고 기대한다면서 "고령자의 소년 회귀를 관대하게 보아주시길" 바란다고 썼다.

▲36년 동안 살아온 목동의 아파트 베란다에 선 문학평론가 유종호. 그에게 글쓰기는 늙음의 끝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편이기도 하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그는 "솔직하게 얘기해서 나이를 먹으니까 뭐가 나쁘냐 하면 동년배들이 자꾸 없어지는 거"라면서 "궂은 날만 남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간다고 생각하면 좀 허전하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는 글쓰기를 지속해 두 권 정도는 더 남기고 싶다고 했다. 거실까지 틈입하는 줄기찬 빗소리를 배음으로, 구순을 목전에 둔 그는 시종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담담하게 노년을 말했다.

따라오지 않으련?/ 지나가는 바람이 내 귀에 소곤댄다.// 같이 가지 않으련?/ 지나가는 바람이 또 귀에 소곤댄다.('지나가는 바람이')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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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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