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관련 저널리즘도 극단적인 양극화 시각만 표출
'이준석=악한' 확신 보류하고 1%라도 유보적 자세 취해야
나는 지난 6일 <경향신문>에 "이준석을 덮친 '성공의 저주'"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의 성공을 가능케 했던 이유가 성공 이후 그의 실패를 불러온 이유가 되었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었다. 이 글에 대해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님(이하 존칭 생략)께서 "이준석 징계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따끔한 비판을 주셨다. 감사드린다. '이준석 현상'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지면을 통해 답을 드리고자 한다.
김희원은 이준석에 대한 당 중앙윤리위원회 징계와 관련해 "당권에 미칠 여파 분석만 넘쳐나는 반응에 질렸다"며 "징계가 중요한 것은 성비위를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권의 향배에 미칠 영향 때문이라는 걸, 공공연히 당연시하는 정치 문화야말로 나쁜 유산으로 남게 됐다"고 개탄했다. 김희원은 내 글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해주셨다.
"그는 현실을 반만 보고 있다. 독설과 조롱은 분명 이 대표의 강력한 정치 도구이나, 환호한 것은 젊은 세대가 아닌 젊은 남성이었다. 여성 다수는 국민의힘을 '5·18 광주민주화를 비하·왜곡하는 정당'에서 '여성을 혐오·배제하는 정당'으로 다시 보았다. 강 교수가 궁금하다는, 이 대표에 대한 당내 반감이 그토록 쉽게 확산된 이유는 그가 '대선·지선의 1등 공신'이 아니라 크게 이길 대선을 질 뻔하게 만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DJ의 멍에, 호남 차별을 앞장서 비판했던 강 교수는 이 대표의 당당한 장애인·중국인·여성 혐오를 예민하게 볼 법한데 '호남 끌어안기'만 높이 평가할 뿐이니 한탄스럽다."
새겨 들을 게 있는 귀한 말씀이지만, 다소 성급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준석의 성비위 의혹은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이 아닌가. 알려진 것조차 많지 않은 사건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중앙윤리위원회는 성비위 의혹과 무관하게 증거인멸 교사에 따른 '품위유지의무 위반'을 문제 삼겠다고 했으니, 본격적으로 성비위 의혹을 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 올 때까진 이준석 관련 글을 써선 안된다는 뜻은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정치 저널리즘이 경쟁 세력간 정치적 득실 분석에만 치우쳐 있는 것에 대한 김희원의 강한 문제의식엔 동의하며 경의를 표하고 싶다. 나 역시 비슷한 비판을 해왔던 사람인지라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건 전반적인 양과 정도의 문제일 뿐, 아예 그런 분석을 해선 안된다는 이야긴 아닐 게다. 국민의힘 내부의 권력투쟁도 향후 정치발전에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이준석에 대해 말하는 법에 그 어떤 서열을 매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양성의 공존을 지지한다. 김희원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치 윤리와 원칙을 짚는 목소리'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정치 저널리즘이 단지 그것뿐이라면 '너무 뻔하다'며 등을 돌릴 독자들도 많을 게다.
사실 내 글은 이준석에 대한 징계를 예상하고 쓴 '굿바이 이준석'이었다. 말로 성공했던 그가 말로 무너진 '성공의 저주'를 지적하면서, 다시 일어서고자 한다면 '새롭게 달라진 모습'이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굿바이에 따라붙기 마련인 덕담에 대해 김희원이 강한 이의 제기를 한 것에 반론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다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 문제이며, 얼마든지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생산적인 제안을 하고 싶다.
이준석 관련 저널리즘의 문제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시각만 표출될 뿐 그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진보적이고 페미니즘 지향적인 언론이나 독자들에게 이준석은 거의 '악한'처럼 취급된다. 김희원도 이준석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여성 다수가 국민의힘을 '여성을 혐오·배제하는 정당'으로 다시 보게 된 건 당연하며 그건 이준석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이준석의 반(反)페미니즘 성향과 메시지에 대해선 "터널비전의 극치", "성질 부리기", "떼를 쓰는 어린 아이의 모습" 등과 같은 거친 말로 비판을 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많은 2030 남성들이 이준석의 그런 발언에 열광하거나 지지를 보내는 이유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놀란 건 페미니스트들이 2030 남성들을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들의 반페미 성향과 발언을 용납할 수 없는 '백래시'(반동)로 일축해버리는 모습이었다.
페미니즘이 '공공의 적'이 되고, 페미니스트가 '최고의 멸칭이 돼버린 시대'라는 우려와 개탄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는 어찌 해야 하는가? '백래시'와의 전면전만 외치면 되는 걸까? 페미니즘 진영엔 성찰해야 할 일이 전혀 없는 걸까? 나는 이준석 관련 저널리즘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준석을 악한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에 대한 100%의 확신을 보류하고 단 1% 만이라도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는 숨쉴 구멍을 허용해주길 바란다. 나는 김희원에게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 현재의 이준석 담론은 전반적으로 너무 단순명쾌하다. 나는 이준석에 대해 말하는 법이 좀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기를 바란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