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인 "30년 저주의 봉인이 풀렸다"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 2022-06-29 17:04:58
[인터뷰] 전통적 규율, 방식 거부하는 김인 서양화가
화려한 원색에 반복적 패턴 '아톰·주먹 시리즈'로 반향
"그림, 놓을 수 없는 삶의 무게…전우애로 뭉친 아내 힘 커"
7월7일~22일 '르 비채아트뮤지엄' 김인 개인전 'Space Unknown'
▲ UPI뉴스와 인터뷰하는 서양화가 김인. 그는 '원색'과 '반복적 패턴'이란 '금기'를 용감히 깬 도전적 작가다. [이상훈 선임기자]

"원색은 화려하지만 자칫 잘못 사용하면 경박하고 반복적인 패턴은 더러 작품의 깊이를 훼손할 수 있다." 몇 해 전 한 전시회에서 만난 노작가의 주장이다. 그래선지 상당수 작가는 이런 도전을 삼간다.

올해 열린 부산아트페어 BAMA에선 이런 '금기'를 깬, 뱃심좋은 작가가 있었다. '아톰·주먹 시리즈'를 출품한 서양화가 김인(55)이다. 김 작가는 원색의 패턴화된 작품 여럿을 대중 앞에 내놓았다. 관객은 부스 앞에서 발길을 멈췄고 큐레이터는 꼬리를 무는 질문에 숨찬 하루를 보냈다.

화가 김인은 요즘 말로 '뜨는 작가'다. 족히 수십 년 한 우물을 팠으니 사실 늦은 감이 있다. BAMA에서 조우한 그의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는 결이 달랐다.

7월초 시작하는 초대전을 위해 상경한 그를 만났다. 김 작가는 "30년 만에 봉인된 저주가 풀렸다"고 했다. "대전 촌놈, 벗어나봐야 한계가 있다. 난 재능이 없다"는 말들 속에서 역설적으로 자신감이 느껴졌다. 김 작가는 "전통적인 회화방식이 싫었다. 관객의 관찰자 시선도 불편했다. 아예 더는 지쳐서 못 할 때까지 그림을 그리자고 맘먹었다"고 했다. 

김 작가 인터뷰는 지난 28일 서울 방배동 비채아트뮤지엄 전시관에서 한 시간여 진행했다.

▲ 자신의 작품 아톰 시리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인 작가. [이상훈 선임기자] 

"색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 사회는 원색을 선택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거리의 자동차를 보라. 몇 안 되는 칙칙한 색상을 등에 이고 있다. 예전엔 화려한 색상을 선택하면 경박하다거나 사상적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화려한 색은 사실 현대적이다. 어떤 색이든 나만의 방식대로 사용하려 한다. 색상을 선택하는 것은 작가가 누리는 유일한 권력일지 모른다."

김 작가는 연이어 "그래야만 하는 기존의 도리나 방식은 철저히 배격한다"는 말도 꺼냈다. 엘리트주의나 카르텔을 경계한다는 말로도 들렸다. 이런 도리나 규율, 혹은 방식은 한때 그에겐 압박이었다. 그가 1996년 서양화가인 아내 이재옥과 홀연히 프랑스로 떠난 이유이기도 하다. "3년 모든 돈을 손에 쥐고 무작정 떠났다. 남들은 부부작가의 프랑스행이 멋진 일이라고 했지만 사실 하루하루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그나마의 위안은 작품 하나로만 대중과 만나고 평가받을 기회였으니 좋은 기억이다"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구태여 왜 '아톰'인지 궁금했다. "작업을 마치고 귀가했을 때 우연히 아톰과 마주쳤다. 아톰이 나를 보고 있었다. 순간이지만 그때 아톰의 시선이나 관계 등이 묘하게 다가왔고 영혼이 흡입 당하는 듯했다. 아톰은 사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장난감이다. 하지만 탐스럽게 아톰의 반짝이는 외형과 눈에서 나는 인간과 닮은 욕망을 보았다"고 말했다.

김 작가의 작가 일생은 허투루 생기지 않았다. 붓을 놓지 않으려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몸을 부려 받은 하루 노임은 그가 붓을 놓지 않게 한 수단이었다. "몸이 힘든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과 보내야 하는 적막한 시간이 고통이었다."

그는 어린시절 홀어머니 아래서 컸다고 했다. 비루한 집안 사정에 TV도 딱히 없었으니 시간을 보낼만한 놀이거리도 없었다. "이불을 등에 두르고 엎드려 무작정 그림을 그린다며 끌쩍거렸다. 더러는 재주 있는 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배곯던 그 시절부터 그림그리기는 자연스레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미술은 구태여 남과 소통하려 들지 않아도 돼 좋다. 습관 때문인지 혼자 보내는 시간이 익숙하다. 젊은 시절에도 친구들과 노닥거리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외로움이 좋았다. 삶은 유한하니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사는 것도 나쁠 게 없다." 김 작가는 하루 15시간가량 작품에 몰두한다고 한다. 자고 먹는 일체의 생리적 시간 외에 모두 미술에 시간을 할애하니 그는 미술을 빼면 할 이야기도 딱히 없는 듯했다.

▲ 김인 작가의 작품 space boogie woogie,acrylic on canvas,130x130,2022

인터뷰 내내 옆자리에서 훈수를 두는 이가 있다. 김 작가의 아내인 서양화가 이재옥이다. 이 작가는 남편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더러 두 남자의 대화에 적당한 기술로 끼어들었다. 김 작가는 이런 아내를 두고 "우린 전우애로 뭉친 사이다. 1988년 충남대에 복학하며 처음 만났으니 긴 세월 함께했다. 사실 여러 삶의 전투에서 함께 사지를 넘나들었으니 전우라고 하는게 나을 듯하다. 궁지에 몰릴 때조차 서로 그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작가로 변치 말자는 맹세도 할 수 있으니 좋다"며 미소 지었다. 아내도 이런 남편의 이야기가 싫지는 않은지 덩달아 미소를 짓는다.

그가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가 있다. 방식자체가 독특하다. 그의 설명을 빌리면 김 작가는 퇴적한 땅처럼 캔버스에 물감을 쌓아가며 대상을 형상화한다. 붓으로 물감을 뭉개며 대상을 구체화하는 일반적인 방식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는 원색과 흰색을 반복하며 겹겹이 레이어를 쌓는다. 방식이 이러니 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특이한 점은 겹겹이 쌓인 입체적 표면이 일반 회화의 평면성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캐릭터에도 주목한다. "캐릭터 시대다. 생명력 긴 캐릭터는 어디든 있다. 이번 전시회엔 슈퍼맨을 희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캐릭터를 작품의 매개로 삼는 것은 스토리텔링이 많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친근감 있게 볼 수 있으니 더할 나위도 없다. 관객의 나이와 무관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니 캐릭터는 그런 면에서 좋은 소재다"라고 했다.

그는 포박하듯 품고 살아온 미술에 대해 "삶은 누구에게나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놓을 수 없는 것처럼 미술은 내게 그런 존재다. 이런 무게는 때론 감당키 어렵다. 하지만 내려놓을 수 없는 운명이니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25. acrylic on canvas. 90x130. 2015

김인 작가의 개인전은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비채아트뮤지엄(대표 전수미)에서 7월7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주제는 'Space Unknown'이다. 주요 전시 작품은 만화 캐릭터 아톰의 이미지를 담은 'No reason', '31'과 슈퍼맨 등을 담은 연작 'Space boogie woogie', 분홍색 주먹을 소재로 한 'Truth will set you free' 등 김 작가의 작품 총 20여 점이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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