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가 숨긴 역사의 기록을 파헤친 역작

김당 / 2022-06-10 15:21:02
[북리뷰] 김충식 저, 〈5공 남산의 부장들 1, 2〉
저자는 사실에 충실한 기록자이자 '살아있는 증언자'
전두환, 아웅산 폭탄테러 전에 두번이나 암살 표적
〈5공 남산의 부장들〉(김충식 저, 블루엘리펀트)이 2권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저자의 역작인 〈남산의 부장들〉을 잇는 후속작이다.

▲ 〈5공 남산의 부장들〉은 '권력 그 치명적 유혹'(1권)과 '권력과 함께 춤을'(2권)이란 부제가 암시하듯, 12∙12에서 5∙18로 이어지는 전두환의 집권 비화와 5공 안기부장들의 정치공작 비화를 다뤘다. [블루엘리펀트 제공]

전작은 '박정희교의 전도사'이자 '프리토리언'(집정관)이었던 역대 중앙정보부장 10명의 '18년 흑역사'를 다뤘다. 1992년에 나온 '남산의 부장들'은 5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저널리스트의 저서로는 역대 최다 부수 기록이라고 한다.

이에 힘입어 일본어판(講談社, 1994년)에 이어 중국어판(타이완 凌宇출판사, 2021년)도 출간되었다. 2020년 1월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는 코로나 정국임에도 47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저자는 "왜 속편을 쓰지 않냐"는 언론계 후배들의 채근 덕분에 '빚을 갚는 의무감'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대학(가천대)에서 정년을 맞이한 3년 전에 이 책을 구상해 집필까지 3년이 걸렸다고 한다.

후속작은 '박정희의 양아들'로 통했던 전두환의 '철권통치 8년'을 '셀프 기여'한 전두환 부장서리와 유학성·노신영·장세동·안무혁 등 안기부장 4명의 정치공작 흑역사를 다뤘다.

저자가 전작에서 언급했지만, 박정희 사후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계엄하 합수본부장이 되어 중앙정보부와 경찰 그리고 검찰까지 지휘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가 죽기 전에 대통령령을 고쳐 계엄령 하에서 보안사령관이 합수본부장을 맡도록 멍석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서울대 학군단(ROTC) 교관(대위)이어서 '군사혁명'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쿠데타 이후 동분서주한 전두환은 육사 생도의 '혁명 지지 시가 행진'을 이끌어낸 공로로 박정희 소장의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을 거쳐 중정 인사과장으로 발탁됐다.

전작 '남산의 부장들' 2권의 마지막 제20장은 '전두환 인사과장, 부장 되어 돌아오다'라는 제목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1963년에 중정 인사과장이던 전두환 소령이 17년만에 실권을 장악한 3성장군이 돼 부장자리를 차고 앉은 것을 묘사한 것이다(전두환은 1980년 3월 합수본부장 시절 소장에서 중장으로 '셀프 진급'했다). 

전두환이 남산을 집권의 '징검다리'로 삼은 까닭

후속작 〈5공 남산의 부장들〉은 '권력 그 치명적 유혹'(1권)과 '권력과 함께 춤을'(2권)이란 부제가 암시하듯, 12∙12에서 5∙18로 이어지는 전두환과 신군부의 집권 비화와 5공 안기부장들의 정치공작 비화를 다룬다.

▲ 1980년 6월 중앙정보부 창설 19주년 기념 행사에서 전두환 부장서리(가운데)와 부인 이순자가 생일 축하 떡을 자르고 있다. [양지일지 캡처]

보안사령관 겸 합수본부장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해 '역적의 소굴'이 된 남산(중앙정보부)을 장악한 뒤에 남산을 자신의 합법적(?) 집권을 위한 '징검다리'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현역 군인은 중앙정보부장을 겸임할 수 없다는 실정법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부장 대신 '부장서리'라는 편법을 써 남산을 장악했다. 부장 감투보다 실리, 즉 남산의 '펄펄 뛰는 정보'와 '눈먼 돈'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부장서리가 되면 사복을 입고 국무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1석3조(一石三鳥)였다.

'안개 정국' 혹은 '서울의 봄'이라고 부른 그 시절 전두환은 보안사령관(합수본부장)과 중정 부장서리, 그리고 국보위 상임위원장으로 '1인 3역'을 했다. 역할이 많을수록 돈 쓸 일도 많았다는 얘기다. 이런 내용은 필자가 발굴한 〈양지일지(陽地日誌)〉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두환은 중정 예산에서 불용액 120억원을 끌어다가 집권을 위한 '국보위' 창설 자금과 보안사령관실 판공비(합수본부 수사비)로 썼다.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전두환 자신의 집권과 영달을 위해 중정 예산 120억원을 횡령한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돼 국정원장들에게 통치자금 명목으로 원장 특활비 상납을 요구해 국고를 횡령한 사건과 맞닥뜨린다. 공소시효가 살아 있다면 전두환도 박근혜처럼 감방에 갈 죄목이다.

그래서 전두환 부장(서리)은 "3개월 재임했다"라기보다는 "석 달 동안 짧지만 굵게 해먹었다"라고 기술하는 게 정확하다. 전두환이 중정 부장서리로 있던 3개월 동안 벌어진 일들을 복기하면 그 맥락이 더 분명해진다.

이른바 '3단계 쿠데타'의 분수령이 된 전군 지휘관회의와 비상계엄 전국 확대 및 여야 정치권 '싹쓸이'(5. 17),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의 연합사 소속 병력 광주 시위 진압 동원 동의(5. 23), 김재규 사형 집행(5. 24), 계엄군의 유혈 작전으로 '시민군' 제압(5. 27),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신설(5. 31, 의장 최규하∙상임위원장 전두환), 신군부 핵심 인사들, 전두환 대통령 추대 밀실 합의(6. 27) 등이 전두환 부장서리 재임 중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도 초대 김종필(1961. 5. 20~1963. 1. 6, 1년 8개월)부터 35대 박지원(2020. 7. 29~2022. 5. 11, 1년 9개월)까지 소개된 국정원 누리집의 역대 원장(부장) 코너에는 부장서리가 아니라 "10代 전두환 부장(1980. 4. 14~7. 17, 3개월)"으로 돼 있다. 국정원 스스로 탈법과 편법을 용인하는 꼴이다. 

무협소설·다큐보다 더 리얼하고 라이브한 권력의 뒷모습 파헤쳐

▲ 1980년 당시 전두환 중앙정보부 부장서리가 방한한 케냐공화국 국무장관을 남산의 중정 부장실에서 접견하면서 선물을 받고 있다. 전두환은 당시 실세로서 사실상 국가수반 역할을 했다. [양지일지 캡처]

사실 12∙12와 5∙18은 검찰의 두 번에 걸친 수사로 철저히 파헤쳐진 소재다. 사골곰탕에 비유하면 재탕과 삼탕을 끓여 다큐나 드라마로 우려먹은 소재이다. 그럼에도 텍스트가 흥미진진한 것은 저자의 취재력과 글발 때문이리라.

저자는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서 국회와 정당, 국방부, 외교부,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폭넓게 만난 취재원을 인터뷰한 메모를 바탕으로 기록했다. 저자는 기자 시절 악명높은 남산 지하실에서 3박 4일 동안 고문당해 미국 국무부 인권보고서(1986)에도 실린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사실에 충실한 기록자이자 '살아있는 증언자'이다.

5.17 전군지휘관회의 이후 주영복 국방장관과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찾아와 비상계엄 전국확대 안건을 결재해달라고 요청하자, 신현확 총리는 목청을 높여 이렇게 거절한다. "혁명을 결재 받아서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혁명은 총칼로 하는 거지."

기가 차는 역설이다. 그래서 40여년이 지났지만 현장을 생중계하는 것처럼 생생하고 리얼하다. 오죽했으면 안상운 변호사는 이 책을 읽고서 "한 편의 무협지 소설이나 다큐보다도 훨씬 더 리얼하고 라이브한 권력(리바이어든)의 모습이 충격이면서도 분노가 치민다"고 했을까 싶다.

이 책에는 많은 특종 비화가 담겨 있지만, 특히 저자가 꼽는 특종 비화는 1986년 7월 4일 주한미국대사관의 건국기념일 리셉션에 재야인사 김대중이 초청된 뒤에 벌어진 인사 파동이다.

당시 김대중을 '실정법 위반 범죄인'이라고 견제한 장세동 안기부는 외무부장관과 미주국장을 통해 김대중을 초청하지 못하도록 공작을 지시했다. 그런데도 공작에 실패하자 이원경 외교부장관의 장선섭 미주국장의 목을 친 것이다.

이외에도 1980년 2월경 전두환 신당을 만들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게 되자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박보희 총재와 조내벽(라이프주택), 박성철(신원통상) 등 기업인들에게서 180억원을 염출하려 했던 비화, 1980년 3월 6일 육군 제30사단 사격장에서 김재규 중정 부장 수행비서관 박흥주 대령의 총살형이 집행된 장면도 처음 공개되었다.

▲ '5공 남산의 부장들'은 10대 전두환 부장서리부터 유학성·노신영·장세동·안무혁 안기부장까지 5명의 정치공작 흑역사를 다뤘다.

전두환이 목숨을 걸고 군사반란을 일으켰지만 정작 대통령이 된 뒤에 몇 번이나 북한의 암살 표적이 돼 죽을 고비를 넘긴 대목도 역사의 아이러니다. 전두환은 불과 3개월간 부장서리를 했지만 방한한 아프리카 케냐 국무장관 등 외교사절을 접견하는 등 사실상 국가수반 역할까지 했다. 하지만 하마터면 아프리카에서 폭사를 당할 뻔했다.

우리가 아는 정사(正史)는 1983년 10월 9일 버마에서 발생한 아웅산 폭탄테러뿐이지만, 전두환은 그 전에도 두번이나 북한의 암살 표적이 되었다. 국정원 차장과 청와대 안보실장을 지낸 나종일 석좌교수(가천대)에 따르면, 북한은 1981년 7월, 첫 번째로 필리핀에서 전두환 암살을 시도했다. 60만 달러를 들여 캐나다인 킬러 2명을 포섭했으나 킬러들은 돈만 챙기고 날라버렸다.

1년 뒤인 1982년 8월 전두환의 아프리카 순방 당시 김정일은 일본인 테러리스트를 기용해 두번째 암살공작을 준비했다. 두 일본인은 원산 앞바다 '황토섬'에서 특수공작 지옥훈련을 받은 정예 테러 요원들이었다. 청진에서 간첩선을 타고 일본에 가서 일본 여권을 받아, 그것을 들고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의 자이레 공항까지 넘어왔다.

하지만 가봉에서의 폭탄 테러는 '거사' 하루 전에 보고를 받은 김일성의 지시로 전격 취소되었다. 김일성은 "우리가 그동안 무기 원조와 투자 등으로 50여개 나라에 공들여왔는데 만일 발각이라도 된다면,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우리에게 등을 돌릴 우려가 있다"며 김정일에게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현장의 북한 대외조사정보부 과장이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안내조로 픽업한 고영환 자이레공화국(콩고)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1991년 탈북 망명, 국정원 안보전략연구원 근무)에게 밝힌 암살공작의 배경은 이랬다.

"전두환이는 남조선 인민들의 공적(公敵)이다. 서울의 봄이라는 인민궐기를 짓밟고 권력을 잡았으나 인기가 없다. 그깐 놈 하나 없애도 문제없고, 오히려 지금이 없앨 적기다. 이것이 장군님(김정일)의 판단이고, 그 암살 실행이 우리의 임무였다."

이처럼 다양한 취재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두환 일대기를 추적해 그의 심리와 행태를 분석하다보니, 의도치 않게도 이 책은 뛰어난 '전두환 평전'이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패러독스다. 하지만 전두환과 4명의 안기부장들이 펼친 하극상의 무용담과 악행들은 대부분 실정법을 위반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6∙29선언 하나만 봐도, 권력을 대(代)물림 한 전두환-노태우의 회고록 평가가 서로 다르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둘 다 거짓말임을 입증하는 일은 저자의 몫이 되었다. 전두환 철권통치 8년 악행의 법률적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역사의 공소시효가 살아있음을 저자는 일깨워준다. 그래서일까? 사학자인 서중석(성균관대 명예교수)은 추천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독재자는 기록다운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역사학자들이 민완 기자의 비화 발굴에 기대는 이유다. '남산의 부장들' 후속(제5공화국)편인 이 책은 현대사 연구자들이 곁에 두고 봐야 할 필독서의 하나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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