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정치 야합 현실 신랄·통렬하게 풍자
목사와 교수, 검찰과 언론이 뒤엉킨 난장판
"정도가 어렵다면 최소한 선이라도 지키자"
'우리 개신교가 정치의 시녀입니까, 아니면 광댑니까? 신도들과 태극기 어르신들을 광장에 내보내고 공당에서는 하시는 일이 뭡니까? 합법적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선량들은 세비만 또박또박 받아 챙기고 눈치만 살살 보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요, 지금. 그러면서 왜 우리 애국 신도와 시민들만 광장에 내보내서 광대짓을 시키려는 겁니까?'
고광률이 펴낸 장편소설 '성자의 전성시대'(강)의 성자(聖者) 신사랑 목사는 그들의 '뒷배'를 자처한 6선 정객을 꾸짖으며 자신이 직접 정치에 나서겠다고 선언한다. '복수나 하자고, 분풀이나 하자고 정치하십니까? 아니면 부귀영화를 챙기려고 정치를 하십니까? 다 아니라구? 그럼 이제부터 선을 위한 심판에 선을 위한 성전에 동참들 하셔. 내가 칼을 뽑았은게.'
일견 선을 위해 나서겠다는 명분이 그럴듯한데, 이를 지켜보는 신 목사의 고아원 동기 맹 장로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탄식한다. '그가 뛰어든 광야는 하나님의 공의를 찾을 수 있는 광야가 아니라, 이념과 이해(利害)를 다투는 그야말로 힌놈의 골짜기요, 음부(陰府)요, 불의 광장이 아니던가. 어찌하여 불나방이 되어 불의 광장으로 뛰어든단 말인가. 아, 어찌 악으로 선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충북 노근리, 6·25전쟁 때 미군의 민간인 학살지역에 고아로 버려진 처지여서 보육원에서 '노근'이라는 이름을 붙여줘 '신노근'이 본명인 신사랑 목사. 그는 타고난 언변으로 '주만사랑교회'를 일구어 '혹자는 하나님의 동기간으로, 혹자는 인기 절정의 유명 연예인으로, 또 혹자는 권위 있는 종교학자이자 성자로, 영향력 있는 사회 지도자로' 추앙받는 목사로 거듭났다.
그는 강남 끄트머리에 성전 부지를 사놓았는데 갑자기 SRT가 생기는 바람에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부동산 투자 차원에서는 크게 성공했지만, 투기 목적으로 산 땅이 아니라 성에 차지 않는다. 그곳은 '강남몽(江南夢)' 실현을 위한 거대 성전을 짓고자 산 땅이었다. 갈수록 '목회자인지, 인기 연예인인지, 사회 명사인지 도통 구분이 되지' 않는 신사랑 목사는 '목회자를 빙자해 개인 영리사업을 하는 사이비 연예인' 같기도 하다.
'미투'에 발목까지 잡힌 이 '성자'를 중심으로, 안중근의 '테러' 때문에 '진정한 내선일체'가 방해받았다는 요설을 늘어놓는 얼빠진 극우 교수 방영석, '오랜 기간 검찰청과 정치판을 헤집고 다니며 인맥을 쌓고 못된 잔기술을 많이 보고 배운 놈'인 기자 어동수를 비롯해 정치인과 검사, 깡패까지 등장한다. 고광률은 이들을 통해 종교와 정치와 언론과 권력이 함께 놀아나는 '혼효의 대한민국'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대학사회의 이전투구를 다룬 '시일야방성대학', 정치인의 민낯과 먹이사슬 구조를 들여다본 '뻐꾸기, 날다'에 이어 부패한 종교가 정치와 야합하는 현실을 드러내는 이번 작품에 이르기까지 최근 3년에 걸쳐 연이어 분투해온 고광률은 "아무리 모든 게 뒤죽박죽인 세상이라지만 정도를 지키는 건 어렵더라도 최소한의 선만이라도 넘지 말자"는 취지에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한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자신들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서만 광분하는 현실에서 도덕(道德)을 거론할 때의 그 '도'는 더이상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것 같다. 자라나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어떤 도덕이나 상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옳은 길로 가야한다는 신념을 백번 양보해서 포기하더라도 최소한 '정도'(程度)만이라도 지키며 살자고 말하고 싶다. 넘으면 안되는 최소한의 것, 그 정도만이라도 확보하자고, 당신들이 지금 하고 있는 짓들이 모든 것을 뒤섞어버리는 '혼효'(混淆)의 세상을 만드는 거라고, 외치고 싶었다. "
-신사랑 목사는 종교를 도구 삼아 욕망을 실현하는 인물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실제 현실과 어느 정도 닮았나?
"예수를 팔아서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목사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우리나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는 거의 없다. 소설을 보고 과장됐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순진한 사람이다. 소설에서 드러낸 현실보다 열배는 더 심하다. 윤리라거나 도덕을 지키는 게 종교 아닌가. 그것이 망가진 경우를 많이 본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종교를 디딤돌 삼아 '야만적이고 반지성적'인 정치가 활개를 친다는 사실이다."
-신사랑 목사의 영육을 키워준 원로목사는 "없던 대한민국을 세우고, 빨갱이들에게 먹힐 대한민국을 지키고, 지금 같은 위상으로 대한민국을 번영시킨 게 다 우리 개신교 덕"이라고 역설한다. 어떤 배경인가.
"대부분 개신교가 실제로 그렇게 설교한다.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개신교는 5% 내외일 거다. 50세 이상은 거의 그렇다고 보면 되고, 기독교인인 내가 실제로 설교에서 들은 것은 그보다 더하다. 천지 만물은 다 하나님이 만든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그 뜻이 아니더라. 무슨 얘기나면, 이승만 박사가 우리로 치면 애굽 땅에서 유대인들을 끌고 나온 모세라는 거다. 이 나라를 건국하고 빨갱이들로부터 지켜낸 사람, 모세라는 주장이다. 소설에도 나오듯 그러면 4·19는 우리가 모세를 쫓아낸 폭거인 셈이다."
맞장 이슈토론에서 '미국이 아니었으면 해방도 건국도 없었고, 빨갱이 천국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는 엄중한 역사적 사실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자신이 가르친 애제자에게 당한 방영석 교수는 술집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지식인들 중에는 자기가 관심과 사랑을 못 받는다 싶으면, 좀 소외당하는 것 같다 싶으면 유별나게 못 견뎌 하는 놈들이 있어. 특히 어려서부터 말썽을 부리며 커서 그런지, 애정결핍증에 시달리는 좌파 애들이 많은데, 걔네들이 입에 달고 사는 지식인의 양심이라거나 사회정의 따위는 그냥 불어젖히는 나발, 아니 구걸 수단이고, 본인이 인정과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실리만 챙길 수 있다면 제 밥상머리에 올라가서라도 똥을 싸 지를 놈들이야.'
-소설에서 극우 교수 방영석이 "신념을 진리로 알고 있는 놈들이 좌파"라면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면 언제든지 진영에서 이탈하는 놈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대목이 씁쓸하다.
"사실 방영석이가 몰라서 안중근 의사를 테러범으로 몰아가는 건 아니다. 그래야만 자기의 포지션, 이익이 확보되니까 그런 거다. 지식인들 중에는 관심받고 사랑받지 못하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만 되기 때문에 반드시 문제 일으킨다. 교수들이 어떤 방향을 설정하고 정책을 만들면 정치인이 그것을 실천하는 게 원래 순서여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일단 정치인들이 저질러 놓으면 논리를 만들어서 맞춰주는 게 교수들이다. 그러다 도저히 맞출 수 없으면 자꾸 헛소리를 하게 되는 거다."
신사랑 목사는 결국 직접 대권 도전에 나서기 위해 '구국을 위한 선(善)한 성전(聖戰) 출정 선언식'을 벌이고, 아내를 빼앗긴 신도 요한은 권총을 들고 신 목사를 저격하기 위해 그 현장에 출정한다. 주님을 위한 아들이라는 뜻에서 '위한'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신 목사의 아들까지 합세한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이 어떤 파국에 이르는지는 독자들이 확인할 몫이다. 시종 거침없는 묘사와 생생한 입말이 만만치 않은 분량의 소설을 단숨에 읽게 만드는 동력을 발휘한다.
-중세도 아닌데 종교가 정치와 결합하는 양상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오늘날 종교도 소설에 나오는 '순천국' 교파처럼 정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다. 사실 종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진리로 받들기 때문에 대화나 타협이 있을 수가 없는데 정치는 반드시 대화와 타협이 전제돼야 하는 것 아닌가. 서로 본래 같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신사랑 목사' 같은 이의 뒷배를 정치인이 봐주고, 언론도 감싸주는 상황이 벌어져 왔다. 정치와 결합되면서 교회의 부패가 더 부추겨졌다."
-이즈음 작단에서는 사라진, 직격하는 리얼리스트의 자세다. 문학의 소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앙드레 말로나 옌롄커, 조지 오웰 같은 작가들을 좋아한다. 세상이 녹록지 않은데 어떻게 작가가 세상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하겠는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올바른 계몽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일을 지식인들이 해야 된다는 사명감이 우선 발동된 경우다. 이제 작가로서 전반기 작업을 끝내고, 후반기에는 찬찬히 미학적인 작품을 쓰고 싶다."
고광률은 다음 작품으로 껍데기에 불과한 이데올로기의 폐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파고드는 서사를 준비 중이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또는 추구해야 할 선·정의·행복·공의·공익 구현의 수단에 불과한 이념인 보수와 진보를, 목적으로 둔갑시켜 서로가 서로를 절대선인 양 주장하며 죽기 살기로 싸운다"면서 "이 소설을 정의와 공의를 위해 지난한 싸움을 하느라 지치고 고달픈 지경에 빠진 분들에게 바친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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