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바닷가에서' '그후의 삶' 3종 아시아 첫 출간 계기
"전쟁이나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할 수 없어"
"풍요와 평화 누리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삶 환대해야"
"인간은 괴물이지만 그 이면의 친절함도 잊지 말아야" 202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압둘라자크 구르나(74)가 18일 한국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났다. 한국에서는 그의 번역 작품이 전무한 상태에서 지난해 수상 소식을 접했고, 최근에서야 그의 대표작 3종(문학동네)이 출간된 것을 계기로 이루어진 자리였다. '낙원' '바닷가에서' '그후의 삶'이 그것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처음 출간되는 작품들이다.
열두 살 소년 유수프가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낙원'은 구르나의 많은 소설들이 형상화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디아스포라 삶의 서장을 연다. '바닷가에서'는 망명 신청자의 사연을 중심으로 두 집안의 풍파를 통해 난민의 삶을 드러낸다. '그후의 삶'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다. 이날 영국 자택에서 화상으로 인터뷰에 응한 구르나는 이 3종 가운데 하나만 선택한다면 최근작을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고 밝혔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식민주의의 영향과 난민의 운명을 천착해온 탄자니아 출신 영국 소설가. 아프리카 출신 비백인 수상자로는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 이후 35년 만이다. 1948년 동아프리카 잔지바르 섬에서 태어난 구르나는 1960년대 말 난민 신분으로 영국에 도착했다. 노예무역 기지로 이름을 날렸던 잔지바르는 1963년 영국 신민통지에서 해방된 이후 혁명을 겪었고, 이후 아랍계 시민들에 대한 억압 속에서 대량학살이 일어나면서 구르나는 그곳을 탈출했다. 그는 1984년에서야 잔지바르로 돌아가 임종 직전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구르나는 최근 은퇴할 때까지 영국 켄터베리 켄트대학에서 탈식민지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살면서 작품을 써왔다.
그는 영국에 망명한 후 21세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0편의 장편과 여러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구르나는 "풍요와 평화를 누리고 있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환대할 의무가 있다"면서 "전쟁이나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에게는 괴물의 속성이 있다"면서 "우리 삶에 만연한 불공정하고 부당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이면에 있는 친절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르나는 "한국 역사에 대해서 조금 안다"면서 "내 작품이 한국 독자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상태였는가.
"집에 막 들어와서 차를 만들려고 하던 중에 전화를 받았다. 처음에는 장난전화인 줄 알았다. 한림원 관계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얘기를 전했을 때, 믿기 어려웠다. 컴퓨터를 켜고 한림원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전화를 했던 바로 그분이 수상자 발표를 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수상 사실을 실감했다."
-한국에서 세 작품이 동시에 출간됐다. 아시아 최초 출간이기도 한데, 이 소설들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낙원'은 3종 소설 중 가장 먼저 출간된 작품인데 1914~ 1918년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전쟁, 그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자 했다. 주인공이 어떻게 식민주의에 휩쓸리고 또 그러한 여정을 겪게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것은 30년 후에 쓰여진 '그 후의 삶'이라는 소설에서 보다 깊이 다루었다. 이 소설들은 긴 시간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깊게 연결돼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교수와 작가로서 살아온 삶은 창작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개인적인 삶과 소설가로서의 활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다. 학자이자 교수로서 오랫동안 대학에서 가르쳐왔다. 동시에 작가로도 활동을 하면서 소설뿐 아니라 학술지에도 기고를 하고 각종 학술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어떻게 보면 이중적인 삶을 이어온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두 가지 다른 활동을 어떻게 밸런스를 맞추느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그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한 것은 아니고, 학기 중에는 학자로서 교수로서 전념을 하고 안식년이나 방학 기간에 소설을 써왔다. 4년 전 교수직에서 은퇴한 뒤로는 소설에 전념을 할 수 있게 됐다."
-노벨문학상 수상 전과 비교하면 무엇이 달라졌는가.
"노벨상 수상이 그야말로 글로벌 이벤트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나라는 작가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고 더 많이 알고 싶어함으로써 바로 오늘 같은 자리도 마련됐다.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게 된 점이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 중 하나이다."
-전쟁과 기후 위기, 팬데믹에 더해서 젠더 세대 인종 문제 등 각종 갈등이 만연한 지금 같은 시대에 문학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지금 같은 시대라고 말했는데, 사실 그런 표현은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것 같다. 인류는 늘 많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왔고, 그런 것들과 싸우고 해결해 나가면서 지금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학이 왜 중요하고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독서라는 행위, 문학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는 것,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한 게 아니다. 정보만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신문이나 논문이라든지 다른 서적을 읽어도 된다. 우리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문학 책을 집어 읽는 행위를 하고 있다. 동시에 문학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삶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 천착할 수 있다. 인간 관계나 타인이 살아가는 삶의 조건, 그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대해 더 알아나갈 수 있게 된다. 문학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우리를 보다 인간답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라는 건 결국 인간의 삶에 관계된 것이어서 잔혹성, 사랑, 나약함이 주제가 된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지침이 따로 있는가.
"진실된 글을 쓸 때는 삶의 조건을 살펴보게 되는데, 잔혹함이나 불공정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따뜻함이나 사랑 또는 친절함에 대해서도 써야 된다는 맥락이다. 인간의 삶 혹은 인간성의 양면이라고 할 두 가지 다른 모습들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가혹하게 우리 삶에 만연한 불공정함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부당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있는 친절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작품 속에서 셰익스피어에서 미국 작가의 문장까지, 문학적 인용을 자주 하는 편이다. 어떤 의도인가.
"다른 문학 작품을 인용하고 참고 자료로 제시하는 일이 글을 쓰고 읽는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잘못 발음할 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가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그 향기를 간직한다'는 뜻으로 이야기했던 인용을 떠올리곤 한다. 다른 문학 작품 또는 레퍼런스가 내 글에 개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작가로서 큰 즐거움이고, 독자에게도 재미를 안겨주는 효과를 준다고 생각한다. 암호를 해독하는 것 같은, 굉장히 장난스러운 게임에 참여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동아프리카 이야기를 천착해온 이유는 무엇인가.
"비영미권 작가들 작품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분위기에서 1980년대 초반에 첫 작품을 출간했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가 어디 출신이냐보다 이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에 더 관심을 보이던 때였다. 나는 무엇보다 동아프리카와 유럽의 식민주의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치누아 아체베나 응구기 와 티옹오 같은 위대한 아프리카 작가들이 천착한 주제이긴 하지만, 내가 풀어낸 이야기는 아프리카에만 국한된 것이 절대 아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전 세계 다른 지역들과 교류하면서 수백 년간 굉장히 많은 역사를 쌓아왔다. 이런 다층적인 측면을 살펴보고자 했기 때문에 내 소설은 단순하게 동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할 수 없다. 역사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것이 갖고 있는 어떤 동시대적인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오랜 기간 집필 활동을 하면서 정체되는 순간은 없었는가.
"모르고 넘어갔을 수도 있지만, 작가로서 정체기는 없었던 것 같다. 작품을 구상할 시간은 충분했고, 오히려 어려움이 있었다면 연구 논문을 어떤 주제로 써야 할지가 종종 고민 거리였다. "
-주제는 어떻게 찾는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정해놓고 시작하기보다는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을 한다. 내 주변에서 눈길을 끄는 것들에서 비롯된다. 일례를 들자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 고향인 잔지바르에 돌아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굉장히 연로했던 아버지가 집에서 길 건너 모스크까지 굉장히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아버지가 소년이었을 때를 떠올렸다. 영국이 잔지바르를 식민지로 장악했던 그 시기에 아버지가 과연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성장기를 겪었을까 생각하게 됐고, 이런 구상이 '낙원'이라는 소설로 구현되기까지 약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바닷가에서' 는 다양한 경로로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당했던 비행기가 런던에 도착했던 사건이 있었다. 비행기가 도착한 바로 다음 날 많은 사람들이 망명 신청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연로한 백발 신사는 왜 본인의 삶이 있는 나라를 떠나서 영국에 남기로 결정한 것일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동시에 그가 남기고 온 사회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
-단일민족 정체성을 지닌 한국 사회의 배타성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한국사회에 대해 잘 알지 못해 조언할 처지는 아니지만, 사실 배타성이라든지 외부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모든 사회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전쟁이라든지 폭력 또는 많은 형태의 궁핍으로 위협 받는 삶을 우리는 인류로서 환대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 사회도 몇 년을 주기로 그 대상은 바뀌지만 외부인 또는 난민에 대해 일종의 공황에 빠지는 것 같다."
-소설 작업에 패턴이 있는가.
"지금까지 50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장편 소설 10편을 써왔다. 소설가로서 어떤 패턴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한 번에 적어도 5~6주 정도 또는 가능하다면 몇 달 정도 이어서 집필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생각을 하고 노트를 만든 후에는 이어서 글을 쓰고, 다른 업무를 하다가 다시 글 쓰기로 돌아오는 형태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비극은 끊이지 않는다. 참상을 막을 대안이 없을까.
"인간이라는 것은 분명히 괴물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도발에도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굉장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믿기 어렵다. 전쟁이라든지 폭력이라는 것을 절대 합리화할 수 없다는 점만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작가로서 나는 팽배한 부당함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된다거나 또는 어떤 신념을 가져야 된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단지 나는 이러이러한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기는 바라는가.
"풍요와 평화를 누리고 있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환대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역사에 대해서 조금 아는데, '바닷가에서'라는 소설이 한국 독자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다면 작가로서 더없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바로 이점이 문학이 지닌 굉장히 즐거운 측면이다. 다른 사회나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의 사회와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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