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돌봄의 본질은 마음을 살피는 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2-03-17 14:29:31
두번째 소설집 '돌보는 마음' 펴낸 소설가 김유담
돌봄 노동이 일방적으로 의무처럼 부과된 현실
팬데믹 시대 고통받는 여성들에게 바치는 위로
"현명한 선택 아닐지라도 당당히 가는 '다른' 길"
'미야, 큰엄마 말 들어라. 나 하나 불편하면 모두가 편하고 웃게 된다. 결혼해서 여자는 그런 마음으로 살면 되는 거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지만 다 안다. 다른 사람들이 안 알아주면 부처님이라도 알아주신다.'

큰엄마는 젠더 이슈와 성평등 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시각의 기사를 쓰는 기자인 윤미를 이렇게 달랬다. 윤미는 자취 생활 12년을 청산하고 남편 '공'의 부모 도움을 받아 마련한 뉴타운 28평대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공간은 쾌적했지만 결혼 전에 기대했던 달콤한 생활은 쉽지 않았다. 매일 보던 아들, 주말에라도 한번 보자는 시댁의 요청에 시누이 식구까지 모두 모여 주말에 식사하는 자리가 관례로 굳어졌다. 시어머니가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먹고 치우는 노동은 고스란히 윤미의 몫이었다. 

▲새 소설집 '돌보는 마음'을 펴낸 김유담. 워킹맘인 그녀는 자신을 '돌보는 사람, 그리고 쓰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김준연, 김유담 제공]

주중에는 일에 지치고 주말에 영화라도 보면서 달콤한 신혼을 누려볼까 했는데 그것도 어려운 현실. 남편 '공'은 힘들어하는 윤미에게 일을 그만두고 주말에 좋은 컨디션으로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하자고 청한다. 윤미가 거부하자 공은 상처받은 얼굴로, 사랑하는 사람을 저버릴 만큼 그 일이 그렇게까지 중요하냐고 말한다. 정신이 번쩍 든 윤미가 공의 얼굴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했던 말은, 김유담 두 번째 소설집 '돌보는 마음'(민음사)에 수록된 '안(安)'에서 읽는 이가 확인할 몫이다.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온 김유담의 입심은 세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십대 청춘의 좌충우돌을 담은 소설집 '탬버린'에 이어 여탕 안 풍경을 내세워 다양한 사연을 직조해낸 장편 '이완의 자세'를 펴내고 다시 새 소설집을 낸 여정이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진하며 이야기를 힘차게 끌고 가는 문체의 흡인력이 크다. 이번 소설집에는 '돌봄'을 모티브로 부당하게 의무처럼 일방에게만 부과되는 그 노동의 실상을 다양하게 드러낸다.

윤미는 어린시절 바쁜 엄마 대신 큰엄마의 돌봄으로 컸다. '당시 큰집에는 할머니와 큰아버지 부부,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명의 사촌오빠, 그리고 결혼 하지 않은 막냇삼촌까지 같이 살고 있었다. 그 많은 식구들의 끼니와 빨래를 챙기고 집 안 청소를 하는 것은 오로지 큰엄마의 몫이었다. 그 와중에 작은집도 챙겨야 했다.' 이렇게 살았던 큰엄마이기에 '나 하나 불편하면 모두가 편하고 웃게 된다'는 말은 힘을 지니지만, 윤미가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요즘 여자들은 옛날에 비해 팔자가 늘어졌다는 평가를 윗세대 여성에게 받는 삶……. 그것은 대물림이라기보다는 '되물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나. 아니면 되풀이나 되갚음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나는 뒷덜미를 세게 물린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대를 이어 가부장제가 지속되면서 할머니나 어머니 세대보다는 우리 세대 여성의 삶이 나아진 거는 분명히 맞긴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 시각에서 봤을 때는 너무 답답한 부분들이 많은데, 그런 부분들이 오히려 윗대 여성들에게 더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소설에서 정답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냥 기존 삶을 답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지만, 윤미의 이후 삶이 사실 더 좋아질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단편을 발표한 뒤 온라인 독후 모임에서 50~60대 여성들은 얘가 이렇게 편하게 살면서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들이 있었고, 20~30대 여성들에게서는 왜 이런 결혼을 했고 2년이나 참았는지 모르겠다는 아주 격렬한 반응이 나오더군요." 


세 돌 지난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기 전 전화로 만난 김유담은 "2030 여성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면 더 세게 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펼쳐놓고 고민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아이가 태어난 후 "'돌보는 사람, 그리고 쓰는 사람' 외에는 다른 정체성이 허용되지 않았다"면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 문학의 일"이라고 '작가의 말'을 썼다. 윤미의 남편 '공'은 기실 윤미의 마음을 돌보지 못했다. 시댁에 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을 그만두라고 한 것은 노동 강도를 줄여주는 배려 이전에 마음을 들여다보는 '돌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패착인 셈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작가의 구체적인 생활에서 길어낸 양육 돌봄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들을 포함해 노년의 고통을 돌보는 일, 결혼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승주 씨, 나는 승주 씨가 단순히 사무를 보는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병원에 전화를 거는 분들은 모두 환자이거나 환자의 가족인 사람들이에요. 더군다나 이런 3차 병원까지 문을 두드리는 건 병세가 심각한 경우가 대부분이지. 그런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해 주면 안 될까?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게 나는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돌보는 마음'에 등장하는 미연은 신도시 대학병원 고객서비스 만족부 팀장으로 일하는 워킹맘이다. 팀원 하나가 암에 걸린 늙은 고객에게 심하게 당하고도 오히려 민원을 제기한 그이가 찾아와 사과하지 않으면 사방에 알리겠다고 협박하자 다독이며 하는 말이다. 미연은 짐짓 팀원에게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베이비시터들을 들이면서 미연 자신이 겪고 있는 장애이기도 하다. '연주의 절반'에는 베란다 좁은 창살 틈을 비집고 떨어져 사망한 아이의 엄마 연주가 나온다. 연주는 아이 엄마에게 무한책임을 강요하는 눈길을 피해 이혼 후 덴마크로 이주해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공여받는다. '나'는 그 선택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연주가 좋은 엄마가 되기에 충분한 사람이란 사실은 확신한다.

▲아이는 물론 노인 돌봄의 현실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인 김유담. [©김준연, 김유담 제공]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생존이 힘든 건 아이뿐 아니다. 늙어서 죽음을 목전에 둔 노인들도 마찬가지 신세다. '대추'에 나오는 병실의 할머니는 끔찍하게 아끼는 손자 '영석'을 병실에서 기다리지만 녀석은 학교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대추를 서리하면서 영석은 말한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대추를 기분 좋게, 맛있게 드시고, 그리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올가을이 지나기 전에 꼭.' 누군가의 힘든 돌봄노동이 필요한 할머니이지만 아들을 선호한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는 손자 녀석의 속마음은 서늘하다. 

'입원'에 등장하는 치매 걸린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바람피운 과수댁에게 가겠다고 늙은 아내에게 이혼해달라고 떼를 쓴다. 자신이 그 시절 그 나이라고 우기면서. 그는 요양원행 마지막 식사를 하면서 누구 생일이냐고 천진하게 묻는다. '특별재난지역'의 '일남'은 먹이고 치우고 돌보는 노동을 반복하며 희생해온 윗세대의 전형적인 여자 노인이다. 팬데믹 사태 초기에 경북 '청도' 지역에 들이닥친 재난을 배경으로 아들이 맡긴 손녀까지 떠맡아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삶은 처연하다. 

"요즘 페미니즘 여성 서사 대부분은 대도시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로 많이 이야기가 되고 있잖아요. 소외된 지역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대도시로부터 소외된 경북 청도라는 지역에서, 팬데믹이 제일 심하게 창궐한 특별재난지역에서 일남 같은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런 부분들이 더 생생하게 드러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유담은 팬데믹까지 겹친 시기에 '돌봄'을 의무적으로 부여받은 여성들의 고된 삶이 이 소설들을 통해 위로받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학교를 포함한 돌봄 기관들의 기능이 멈췄을 때 주변을 둘러보면 그 하중을 모두 떠안은 엄마들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고 전한다. 그녀는 "그분들이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공감하면서 위로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유담은 데뷔작 '핀 캐리'에서 '처치 곤란한 스페어,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스페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레인에 스스로를 세워보겠다고' 다짐하는 여성을 그렸다. 이번 소설집 '안'에서도 윤미는 '나는 그저 그들과는 다르게 살기로 결심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다르게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김유담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 문학의 일"이라고 썼다. [©김준연, 김유담 제공]

"실제로 그런 생각을 많이 해왔는데 지금 특별히 제가 다르게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경남 밀양 소도시에서 자라면서 정말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이 평범한 시골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겠다, 이런 생각을 어릴 때부터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막상 서울에 나와 살면서 제가 그렇게 특별하지 않고 정말 평범한 상태도 미치기 힘든 삶이구나, 이런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다른 선택이 현명하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당당히 그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는 인물들에는 김유담의 오랜 생각이 투사된 셈이다. 올 하반기에는 20대 사회 초년생 직장생활을 담은 장편 '커튼콜은 사양할게요'도 펴낼 예정이다. 쉼없이 '돌보는 문학의 일'에 몰두해온 김유담. 그녀는 "큰 작가의 꿈을 꾸기보다는 그냥 오래 쓰는 사람, 계속 제 삶과 문학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가로 오래 남고 싶다"고 말한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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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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