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에 존재하는 꿈 같은 사랑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심판을 내리고 동시에 구원도 행하는 사랑이라는 '신'
"절대자 향한 신앙처럼, 인간이 인간에 헌신하는 종교" 사랑 때문에 심장이 과도하게 뛰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뜨거운 마음일 때가 한 번쯤은 있었을 테다. 한 번에 그치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숨을 놓을 때까지 흘러가고 다시 오는 것이 그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아니면 살아 있을 만한 이유도 없고, 사랑하기 위해서 살고 살기 위해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병철(38) 시인이 최근 펴낸 두 번째 시집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걷는사람)는 사랑의 준열한 심판에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지만, 그 '사랑'은 심판과 더불어 구원도 가능한 '신'이기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우리가 마주보고 누웠을 때/ 당신의 심장은 아래로 쏟아지고/ 내 심장은 쏟아지는 세상을 받아냈는데/ 내 팔베개에서 자꾸만 강물이 흘러/ 당신 귀는 깊이 잠들지 못했네/ 내 피가 실어 나르는 복숭아 꽃말을/ 다 듣고 있었네 그때 나는/ 벌써 죽은 사람이었고/ 당신은 살아서는 다시 못 꿀/ 꿈처럼 가엾이 아름다웠네('몽유도원')
사랑이 끝났다. 살아서는 다시 못 꿀 꿈인 것 같다. 그들이 마주 보고 누웠을 때, 팔베개를 밴 연인의 귀에는 뜨거운 피 흐르는 소리 들렸을 테고, 그 피가 전하는 도화 빛깔 밀어를 황홀하게 받아들였을 것이고, 내내 잠조차 들지 못하는 몽롱한 상태였을 것이다. 이제는 흘러간 일, 사랑이라는 세계에 완전히 몰입해 있던 그 충만함은 이제 사라졌으니, 그때의 나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죽은 사람인 것이다.
안개가 매화를 감싸 안는 동안/ 죽은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새벽강에서 펄떡이는 물고기를 낚아/ 여윈 바람에 비린 숨을 떠먹여 줄 때였다// 새처럼 안개 속을 지저귀는 벨소리가/ 묘비보다 선명한 이름을 화면에 물어다 놓았다/ 오직 한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던 음악에는/ 반복되는 슬픔이 있어서/ 숲속인지 물인지 아니면 구름 위의 병실인지/ 내가 서 있는 곳을 나는 알 수 없고// 받으면 자꾸 올까봐 받지 않았다/ 울면 자꾸 받을까봐 울지 않았다/ 여우비 지나가는 소리일 거라고/ 절기를 착각한 끝서리의 입술일 거라고/ 전화벨은 내내 울리고 바람에서는/ 살아 있는 것의 냄새가 피어올랐다// 당신이 사는 다른 세계가 있다고 믿으므로/ 꿰미에 걸어 둔 물고기를 강으로 돌려보냈다/ 첫 매화를 꽂고 싶었을 하얀 귀밑머리들이/ 흘러가고 벨소리가 멈추고 안개가 걷히고// 나는 가장 붉은 매화를 사진 찍어 전송했다/ 확인할 수 없는 어떤 확인처럼/ 맑은 날씨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부재중 전화')
'나'만 죽은 사람은 아니다. 그 사람도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이긴 마찬가지다. 안개 덮인 매화밭 옆 새벽 강에서 펄떡이는 물고기를 낚는 동안 죽은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받으면 울까봐, 울면 자꾸 받을까봐 울지 않았다. 전화벨은 내내 울렸지만 강 바람이 살아 있는 것들 냄새를 피워 올렸다. 나는 당신이 사는 세계로 다시는 건너갈 수 없다. '죽은 사람'에게는 그들만의 다른 세상이 열리는 법이다.
"사람이 절대자에게 신앙을 갖게 되면 자기 삶을 온전히 다 들어다가 바칠 정도로 깊이 몰입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게 꼭 초월적 존재인 신과 맺는 그런 관계 양상만은 아니고, 사람이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자기 삶을 그냥 다 갖다 바치고, 파멸까지 감수하는 모습을 보이잖아요. 이런 점이 종교와 비슷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 이후에 남겨지는 괴로움들, 어떻게 보면 이게 심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심판은 계속 지속되는 그런 심판은 아니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또 다른 신이 나타나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시인은 짐짓 이렇게 말하지만,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사랑은 찰나에 존재하는 속절없는 대상이다. '사랑은 조금만 치우쳐도 하얗게 굳는 화학작용/ 얼음 속에 갇힌 마지막 표정으로 서로를 기억하면서/ 몇만 년 후에 어느 극점에서나 다시 만나자고,/ 너무 추워서 추운 줄도 모르는/ 한 시대의 마음이 멸종하고 있다'(빙하기의 사랑). 펄펄 끓는 태양의 빙점 같은, 도저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사랑이라고 머리를 흔들기도 한다. '불로 비춰야만 읽을 수 있는 문장들// 펄펄 끓어야 비로소 우러나는 빛/ 태양이 지닌 단 하나의 작은 빙점을/ 나는 사랑이라고 배운다'(홍차가 아직 따뜻할 때). 사랑은 사람의 일생에서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 꿈속의 사건일 뿐이라고 절망하기도 한다. '신기하지 햇빛과 바람은 격렬히 다투면서 다투는 소리도 내지 않고 계절을 붉게 하고, 사랑은 일생 밖으로는 한 번도 고개 내밀지 않고 꿈속에서만 자라나는 게'(물고기 악기)
이병철 시인은 박사 학위를 지닌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강사로 여러 해 복무 중이다. 한 해 절반 정도는 바다와 강에 나가 낚시를 하는 전문 꾼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야생의 삶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요즘은 배달 라이더 생활도 감수한다. 강사의 임금과 원고료만으로는 좋아하는 여행과 낚시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굳이 이즈음 젊은 사람들 어려운 처지를 대입해 생각하기는 싫다고 했다. 주문을 받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고 배달하는 단순한 작업 과정에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냥 기계적으로 움직이면 되는 일이라 오히려 마음은 편하다. 활자에 파묻혀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좀 떨어져서 자연 속에 있을 때는 막혔던 생각들이 터지기도 한다. 낚시를 직접 소재로 끌어오진 않지만, 그런 면에서는 글쓰기에 보탬이 되는 생활이다.
절단면에서 날아오르는 붉은 새 떼가/ 참돔에게 캄캄한 저녁을 덮어 주고 간다/ 덩그러니 버려진 대가리에는 맑은 눈알이 박혀 있고/ 눈알 속에는 벚꽃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벚꽃은 참돔의 미래// (…)// 꽃 같은 그 한마디 말이 되려고/ 참돔이라는 형태가 사라진 세계// 우리는 밤늦도록 웃고 취하며/ 서로의 윤곽을 파먹는다// 그것이 미래인 줄 모르고/ 끊임없이 사라지는 경계인 줄 모르고('벚꽃은 참돔의 미래')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참돔을 해체해 무늬의 결을 맞춰 접시에 진설하면, 누군가는 술자리에서 떠놓은 회 모양을 보고 꽃잎 같다고 말한다. 시인은 형태의 허무함, 언젠가는 도래할 그 미래, 끊임없이 사라지는 경계를 떠올리면서 벚꽃에서 참돔의 미래를 본다. 그는 "사랑이라는 것이 형태나 윤곽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한 시절 서로가 만나는 특별한 삶의 양식이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형태가 변형되기도 하고 아예 사라져서 소멸되기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날 나는 도굴꾼이 맞닥뜨린 해골처럼 너를 만났지/ 네 몸에선 녹색 그러데이션의 이끼가 자라나고 있었어/ 마르지 않는 물방울에게 입 맞추는 사랑이 시작되었고// 살을 뚫고 나온 웃자란 뼈에 대해/ 가죽 버선 안에 갇힌 전족에 대해/ 자는 척을 하는 죽은 사람에 대해// 말하는 입을 갖게 되었다/ 불완전한 것에 순종하는 마음을 믿게 되었다// 옥상에 사는 너와 반지하에 사는 나는/ 서로가 발명해낸 가장 아름다운 낙차여서/ 비가 멈추지 않는 여름 내내/ 사랑의 행진을/ 용서라는 단죄를/ 추락하는 불면을 멈추지 않았지// 이끼가 자라나고/ 녹색 이끼가 자라나고// 위독하다고 했다// 왜냐고 묻지도 못하고/ 그저 살고 싶어, 말하는 입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믿지 못하면서('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시인은 '도굴꾼이 맞닥뜨린 해골처럼' 너를 만났다고 했다. 끝난 사랑을 돌아보는 시선에 등장하는 이들은 해골 같다. 그들은 옥상과 반지하에 서로 살았다. 사랑을 할 때는 그 가난은 의식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아름다운 낙차'일 뿐이었다. 싸우고 용서하는 사랑이 반복되는 동안 서서히 이끼가 자라나서 그들은 서로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야 했다.
우리의 내일이 모두 끝나버린 서사라면// 내가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너는 닿을 수 없는 세상 끝으로 가야 했지/ 멀어지는 동안에 꽃으로 피를 속이고/ 눈에 번지는 어둠으로 아침을 겨누면서// (...)// 어떤 서사가 다시 쓰인다면/ 거기서는 네가 신이야// 다시는 신을 믿지 않겠다고 했지만/ 너를 믿기 위해 나는 위독해지기로 했다// 기도하자 모든 의심이 사라지고// 이끼가 자라나고/ 핏속에 이끼가 자라나고// 물에서 살과 뼈가 만져졌다/ 흐르는 것을 붙잡는 손이 생겼다// 펜을 들고 탑을 오른다// 나도 신이 되려고('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시인이 현실에서는 사랑에 절망하면서도 그 사랑만이 구원을 가능하게 할 '신'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쓸 수 있는 '펜'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랑을 갈구하고 그 힘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끝없이 무너지는 마음을 애써 붙드는 '시시포스'의 펜이다. 그 펜으로, 기도한다.
십초가 평생이 되어 버린 저는/ 오늘 밤 눈 내리는 사막의 감정으로/ 날아가는 토마토의 침울한 희망으로// 인간에게 갈래요, 전부 잃어버리기 위해서('천사의 기도')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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