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배경으로 집필한 연작 4편…편견과 차별의 이면
힘든 시기, 상처를 주지 않고 서로 연대하는 온기 탐색
"여행기 아닌 다른 세계에 들어가서 나를 탐구하는 소설" '오래전에 바다였던 그곳은 점점 모래가 쌓여 호수가 되었다. 핑크빛을 띠어서 장미 호수로도 불리지만 햇빛이 강하고 바람이 많은 날은 선명한 붉은색이 된다. 수진과 마마두는 작은 나무배로 붉은 호수에 들어간다. 호수는 깊지 않다. 한가운데에 이르면 호수 바닥을 딛고 서서 광주리로 소금을 퍼올리는 검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검은 사람 하나가 수진의 손바닥에 따뜻한 소금 한줌을 건네준다.'
상처와 좌절을 겪고 자신의 틀을 깨기 위해 뉴욕으로 떠나온 수진과 그곳 어학원에서 만난 세네갈 흑인 마마두. 마마두가 작문 시간에 그린 두 사람의 미래는 수진의 손바닥에 건넨 소금처럼 따뜻하지만 현실은 장밋빛이 아니다. 어학원에서 학습 파트너로 짝지어진 마마두와 단문의 영어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는 서로 편견이 끼어들 틈이 없지만, 바깥으로 나와 햇빛 아래 거구의 흑인과 작은 동양 여자가 나란히 걸을 때는 형편이 달랐다. 두 사람 자의식에 파고드는 편견의 굴레는 둘 사이를 서먹하게 만든다.
소설집으로는 6년 만에 '장미의 이름은 장미'(문학동네)를 펴낸 은희경은 '누군가의 왜곡된 히스토리는 장밋빛으로 시작한다'고 썼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는 이름이 규정하는 편견 혹은 폭력에서 벗어나자는 맥락이다. 이번 소설집은 표제작을 포함해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아가씨 유정도 하지' 등 뉴욕을 무대로 한 연작 4편으로 구성됐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서울 합정동에서 만난 은희경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것들이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고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름으로 규정해 버리고 단정해버리는 관성에 경계심을 갖자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왜 뉴욕인가.
"가까운 혈족이 뉴욕에 살고 있어서 딱히 여행하러 간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조금씩 체류하기 위해 갔다. 단순히 관광객이 아니라 거기에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 입장에서 보니까 좀 다르게 보이는 것도 많았던 것 같다. 5년 동안 붙들고 있던 장편을 펴낸 뒤 단편을 쓰는 게 잘 안 돼서 내가 잘 아는 이야기를 써보자고 한 것인데, 마감하고 뉴욕에 가니까 더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아서 세 번 정도 더 쓰게 됐다."
-'새의 선물'과 '타인에게 말 걸기'로부터 이어진 열다섯 번째 작품이다. '타인'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담아온 27년 작가인생에서 이번 연작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타인들이 지속적인 관심사인 건 맞다. 지금 우리가 힘든 시기를 걷고 있는데 여기에서 뭐가 힘이 될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모두 힘들 때 서로에 대한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하는데, 그런 게 또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떻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연대할 것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인간이란 어차피 다 다르고,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냉정하게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지금은 우리가 연대해야 되는 입장인데 어디까지 어떻게 타인을 이해하고 또 내가 어디까지 존중받을 수 있는지 좀 더 생각해본 것이다. 외국에 나가면 지금 여기서 그냥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이 다른 필터를 통해 보이지 않나. 그러한 과정에서 내 문제를 발견할 수도 있고, 내가 누려야 될 것이 무엇인데 그냥 자연스럽게 빼앗기고 있었는지 새로 발견할 수도 있고, 그런 것 같다."
이번 연작소설에서 은희경은 타인들끼리의 '느슨한 연대'에 방점을 찍었다고 했다. 어차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타인들이지만 어떻게 그들에게 서로 상처를 주지 않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 탐색했다. 첫번째로 완성한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인스타그램에서 상큼한 뉴욕 생활을 보여주는 친구 '민영'을 '승아'가 방문하는 이야기다. 기대했던 것보다 썩 반기지 않는 듯한 민영의 태도와 고층빌딩이 보이지 않는 지역의 허름한 집에서 승아는 조금 실망하면서도 나름대로 버티어보려고 했지만, 결국 낙담하고 일정을 앞당겨 귀국할 결심을 한다.
'고생 좀 했나 싶더니 변한 건 하나도 없네. 그렇게 독립적인 척하면서 부모가 주는 학비로 공부하고 무슨 일이든 친구들보다 높은 점수를 따지 않으면 못 참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도 결국은 자신 있는 답안지 제출과 스펙 과시 같은 거였나. 그 사진이 아니었으면 승아는 이 좁고 낡은 집과 더위에 갇혀 집안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민영의 이기심에 상처를 받고도 또 이렇게 당하고 있는 자신의 한결같은 성실성과 적응력에 넌더리가 난 승아는 방으로 들어가서 행어에 걸어놓았던 자신의 옷과 마트에서 사온 초콜릿이며 과자들을 캐리어 안에 쓸어 넣었다.'
민영은 마이크라는 친구가 한국에서라면 충분히 착각할 만큼 관심을 기울여주는 존재여서 내심 연인으로 기대를 했지만, 마이크가 자전거를 잃어버리면서 자신에게 냉정해지자 그의 속마음이 궁금한 심란한 상태였다. 중학생 때 유학을 온 이래 이혼한 부모를 두고 나름대로 뉴욕에 정착하기 위해 애를 써온 민영 입장에서는 열릴 듯 열리지 않는 뉴욕 사회의 인간관계에서 흔들리고 있었지만, 뜻밖에도 뉴욕까지 찾아온 친구에게 내색하긴 싫었던 터였다. 승아는 승아대로 계약직이 만료돼 방황하는 처지에 무언가 새로운 계기를 찾기 위해 뉴욕까지 왔다. 두 사람은 서로의 난경에 대해 털어놓지 않는 대신,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강 건너 맨해튼 밤 풍경을 함께 바라본다. '여기서 오래 혼자 살다보면 그냥 친절한 건지 특별한 감정인지 잘 구별 못하게 돼. 자기들끼리 선을 그어놓고 그 바깥에 있는 사람한테 친절하게 보이려는 사람들이 좀 있거든.' 민영의 말을 승아가 웃으면서 받는다. '그럴 때면 말야. 왜 얼마 동안 어디에를 생각해봐. 거기에 대답만 잘하면 문을 통과할 수 있어.' 입국심사대에서 이민국 공무원이 물었던 세 가지 질문, '왜, 얼마동안, 어디에'를 떠올린 농담이었다. 은희경이 찾아낸 느슨하지만 온기가 감도는 연대의 방식이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은 뉴욕에 정착한 한국 남자 로언을 찾아간 현주의 이야기다. 로언은 한국말이 통하는 상대이지만 뉴욕 사회에 적응해서 현주를 관광객처럼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극본을 쓰기 위해 뉴욕을 찾은 현주는 로언에게 실망하면서 생각한다. '관광객은 열린 문 밖에 선 채로 피상적인 환대를 받는다. 그러나 관광객도 계급이 나뉘며 그 편견이 작동하면 이방인에게는 그마저도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니치빌리지에서 그랬듯 눈앞에서 그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현주의 이어지는 성찰. '이곳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하지만 문이 하도 많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도시, 언제까지나 타인을 여행객으로 대하고 이방인으로 만드는 도시였다. 처음에는 환대하는 듯하다가 이쪽에서 손을 내밀기 시작하면 정색을 하고 물러나는 낯선 얼굴의 연인 같았다.'
-뉴욕이라는 특정 도시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아가 타인들을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인간관계 보편으로 확대되는 느낌이다.
"그렇게 느꼈다. 그냥 뉴욕이라는 한 도시에 대한 얘기라기보다 이 세계에 대한 생각이다. 다른 도시에 대해 썼어도 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하려는 얘기는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여행기가 아니라 다른 세계에 들어가서 나를 탐구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문이 하도 많아서 뉴욕이라는 도시가 싸늘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와 타인과의 관계가 다 그렇다는 생각이다."
한국에서 이혼을 하고 떠나온 수진은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과연 자신이 떠나온 것인지 돌아본다. '나는 왜 떠나온 것일까. 누군가를 더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을 때 혼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규칙적이고 또 가시적으로 발전이 드러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 대체 왜 그런 진지한 생각을 했을까. 그런 점 역시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도록 의미를 재단하는 독선적인 진지함의 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나를 증오에 빠지고 용서를 외면하고 또 결별에 이르도록 만든 순정의 무거움, 그리고 서로 다름에서 생겨나는 일상의 수많은 상처와 좌절들, 낙관적이지 못한 복잡한 생각과 그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기나긴 말다툼을 통과하고도 나는 여전히 그 틀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내가 과연 떠나오기는 한 것일까.'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수진이 고뇌하는 대목은 '이 소설들이 나의 편견과 조바심을 자백하는 반성문인 셈'이라고 털어놓은 '작가의 말'처럼 읽힌다.
"어떤 공간을 떠나보아도 스스로가 안 바뀌어 있으면 그런 단절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수진이 깨달은 거다. 내가 여기까지 떠나와 봤자 이게 떠나온 거냐, 내가 안 바뀌었는데 내 편견이 안 바뀌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장면이다. 내 반성과 통하는 게 있다. 항상 동시대의 작가가 되고 싶고, 그래서 동시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어차피 문학이라는 것이 약자와 소수자,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 아닌가. 부조리한 시스템 때문에 상처받고 소외되는 사람들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게 문학 아닌가. 나도 항상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이 시스템 안에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외국에 가서 약자가 돼 보면 많이 느낀다. 심지어 그 안에서 같은 약자끼리도 내가 편견을 갖고 있는 걸 거기 가서 발견한다. 그런 내 안의 편견을 자각하면서 무얼 쓸 수 있을지 조바심을 느끼는 거다."
말미에 수록한 '아가씨 유정도 하지'는 뉴욕시 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아시아 문학 주간 행사에 초청받은 남성 작가가 노모와 동행한 이야기다. 팔십삼 세의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청해 아들을 따라 뉴욕에 온다. 노모의 트렁크에서 1955년 미국에 간 고향청년이 어머니에게 보낸 봉함엽서를 발견한다. '지난 주말에는 코니아일랜드라는 곳에 갔습니다. 정녕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 풍경을 도저히 편지에 담을 수가 없군요. 언젠가는 꼭 나의 유정한 사람과 그 해변을 걷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1955.8.6.' 늙은 어머니 '최유정'과 함께 '유정한 사람'이 되어 해변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에서 이혼한 캐릭터 '수진'의 전 남편이 이 소설의 화자다. 노모와 아들은 뉴욕의 눈 내리는 해변에서 추억과 상처를 매만진다.
-드물게 실버세대가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나이가 들면서 보다 편하게 들여다보게 된 건가.
"6년 전에 작고한 모친 이야기다. 시애틀에 2년 정도 살 때 방문하셨는데, 실제로 엄마가 오랫동안 보관했던 봉함엽서를 보았다. 예전 같으면 너무 감상적인 것 같아 안 썼을 텐데, 엄마가 수첩에 보관한 내용을 내 소설에 남겨놓고 싶었다."
-본인이 감상적이라고 경계할 만한, 그동안 써온 은희경 소설과는 결이 조금 다르긴 하다.
"네 편에 모두 조금씩 따뜻함을 넣고 싶었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에서는 섣불리 화해하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 건데 같이 있다, 어차피 저 막막한 세상을 건너가야 하지만 같이 있다는 생각을 말미에 승아와 민영에게 투영했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마마두가 따스한 미래를 상상해 주는 것도 그렇고,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에서는 항상 관계에 억눌려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들끼리 아무 선입견 없이 공원에서 어울리는 자유로운 장면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서도 눈 내리는 장면에서 할머니도 자유롭고, 남자도 상처를 다스릴 희망을 안고 춤추듯 노모에게 다가가는 그런 따뜻한 장면들을 넣고 싶었다."
-은희경 소설이 변곡점을 지나는 건가.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 결국 타인을 원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누군가는 이번 소설들에서는 '냉소'가 왜 없어졌느냐고도 하는데, 그렇게 무조건 차갑고 비관적인 냉소는 아니다. 타인을 원하는데 왜 안 될까, 그런 질문이기 때문에 예전에는 서로 통째로 이해하려고 완전히 하나가 되려고 하지 말자 이런 정도였다면, 이제는 결국 온기가 중요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동안 내 소설에서 해왔던 질문은 같지만 이번에는 사람들 관계의 소중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고민하면서 인간끼리의 느슨한 연대 같은 걸 제시한 셈이다."
은희경은 이제 '용기'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동안 '사회성'이 가미된 작품들은 능력이 없어서 못 쓴다고 생각해왔는데 돌아보니 '회피'했던 것 아닌지 반성한다고 했다. 곧 발간될 '자음과 모음' 봄호에 광주항쟁을 연상시키는 단편 '화산 소풍'을 마감했다. 그는 "작가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크게 인정받거나 편리하게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자기 생각을 표현해서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큰 권력을 지녔다"면서 "문학을 하는 일은 무기를 다루는 것 같아서 더 정신을 차려 정확하고 섬세하게 다가가야지, 그냥 재미있거나 관심 가는 이야기를 쓰는 그런 간단한 마음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고독 속에서도 연대하기를 바라는 그의 반성문.
'나는 소설 속 인물들이 위축되고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으며 타인에게 공감하려고 애쓰기를 바랐다. 고독 속에서 연대하기를 바랐고. 그러니 이 반성문을 쓸 때의 내가 진심이었기를, 그것이 삶과 책의 판관들에게 무사히 전해져 내가 사면을 받고, 쓰는 자로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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