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집으로 돌아가는 먼 길 울음 소리"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2-01-24 16:34:26
두툼한 새 시집 '즐거운 소란' 펴낸 이재무 시인
자연에게 훈육되던 옛집에서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는
난민처럼 걸어온 그 길에서 만난 사람과 사물에 대한
기억과 즉흥적 감흥, 강변 산책하며 포획해 시로 정련
"실천이 따르지 않는 명사로 신이나 진리 가두지 말라"
꽃들이 울었다. 아침에 울기 시작한 꽃들은 한낮 지나 저녁 지나 밤 도와 울다가 날 밝자 다시 울었다. 날 흐려 울다가 날 개서 울다가 바람 불어 울더니 바람 그쳐 울었다('꽃들이 울었다') 나무들이 운다 종일토록 운다/ 이 나무가 우니 저 나무가 운다/ 울면서 나무들이 자란다 창창울울 자란다(매미들) 마음의 우물 말라 버린 뒤/ 누구도 간절히 그립지 않고/ 숭숭 구멍 뚫린 문풍지/ 저 혼자 우는 사람 되었다('우는 사람') 영혼의 쇄골이 드러나도록// 안에 고인 설움을 퍼내고 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내일을 살자('통곡')

꽃들이 운다. 아침부터 내내 울더니 밤새 그치지 않고 날이 밝아도 운다. 나무들도 운다. 이 나무 저 나무 종일 운다. 울면서 창창울울 자란다. 나도 운다. 마음의 우물 말라버려 누구도 간절하지 않은 나, 문풍지처럼 운다. 이재무 시인이 새로 펴낸 시집 '즐거운 소란'(천년의시작)에는 유독 울음이 많다. 울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절망하는 울음은 아니다. 이 울음들에는 치유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살기 위해 우는 울음이다. 울어서 설움을 퍼내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통곡'도 감수한다.

▲ 2년 만에 왕성한 에너지로 통상 시집 두권 분량의 두툼한 새 시집을 펴낸 이재무 시인. 그는 "나는 자연에게 훈육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2년 만에 통상 시집에 실리는 두 배 넘는 분량인 157편을 담아 두툼하게 펴낸 새 시집은 이재무의 넘치는 에너지를 웅변한다. 그가 울어도 독자들은 따라 울지 않는다. 그 울음은 새로운 힘으로 전이되는 편이다. 매미들이 나무 대신 울어주는 곡비(哭婢)라고 썼지만, 정작 그는 독자들의 곡비인 셈이다. 왜 울음이 많아졌느냐고 묻자, 시인은 아무래도 나이 탓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시인들은 통상 잡지에 발표한 시들을 나중에 새로 고치고 분류해 시집에 수록하거나, 처음부터 계획해서 시집을 내는 유형으로 나뉘지만 그는 순간순간 대상에 대한 순발력과 감흥에 의존해 시를 써왔다고 했다. 걸을 때 평지돌출 떠오르는 시들이 많아 그는 자주 한강변을 따라 걷는다. 걸으면서 사물에 대한 즉흥적 감흥을 느끼고 사람에 대해 회상하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유년과 시간에 대해 자주 사유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떠올린 시상을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나중에 재구성해 시를 쓰고 칼럼도 기고한다. 이렇게 완성된 시들을 구획하지 않고 뒤섞어 수록했다. 두툼한 시집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가능한 배경이다. 

밤늦게 집에 오다가 창백한 안색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헐떡이는 길을 보았다. 멍든 자국들, 부어오른 발등, 무엇에 긁힌 상흔들, 불빛과 소음에 지친 도시의 길이 깊고 길게 신음을 뱉어 내고 있다. 해진 런닝구처럼 얼룩덜룩 때 묻은 어둠의 천 조각들이 여기저기 소리 없이 아우성치며 함부로 나부끼고 있다.('귀가')

이재무는 집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살아갈수록 전형적인 농촌공동체의 서정적인 삶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는, 집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다. 그에게 가까워지는 또다른 집이란, 영원히 머무를 미지의 공간이다. 그는 그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데, 도중에 만난 사건과 사고와 인연을 시에 담는 것이라고 했다. 멀리 떠나온 옛 집에 살던 '아버지'가 이번 시집에는 자주 등장한다.


몸에서 아버지 튀어나온다/ 고향 떠나온 지 사십 년/ 아버지로부터 도망 나와/ 아버지를 지우며 살아왔지만/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아버지/ 몸 깊숙이 뿌리 내린,/ 캐내지 못한 아버지/ 여태도 나를 입고 사신다/ 아버지로부터의 도피/ 아버지로부터의 해방/ 나는 평생을 꿈꾸며 살아왔으나/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식민지/ 불쑥, 아버지 튀어나와/ 오늘도 생활을 뒤엎고 있다 ('아버지')

시인에게 아버지는 '떠올릴 때마다 횡격막 근처로/ 회한의 피가 몰려오는 듯/ 가슴 위아래가 까닭 없이 묵직해지고/ 답답해지는, 살았을 적 살붙이로/ 따뜻한 정 나누지 못했던,/ 일자무식에다가 술주정 심해/ 가급적 언저리에도 가고 싶지 않았던,/ 무능하고 고지식해서 오직 당신 육체만을/ 생계의 수단으로 삼아야 했던,/ 우여곡절과 파란만장과 요철의 생/ 마감할 때까지 태어나 자란 곳/ 벗어나지 못했던/ 내게 다혈과 가난을 유산으로 물려주신,/ 온몸을 필기도구 삼아 뜨겁게/ 미완의 두꺼운 책 쓰다 가신/ 세상에서 제일 아픈 이름'이다.

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버릇처럼 농약병을 들고는 이놈의 더러운 세상 못 살겠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설치시고 엄니는 그런 아부지 허리에 매달려 왜 그런대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슈, 무슨 약속처럼 신파를 늘어놓고는 하시었'는데 '다 큰 아들 앞에서 벌이는 신파극이 지겨워 농약병을 건넸다가 싸대기를 세게 맞았고, 그 덕에 아부지의 버릇을 고칠 수 있었'지만 '살아 계시면 술 한 잔 따라 드리며 그날의 무례를 빌고 싶은데…… 아부지는 가닿을 수 없는 먼 곳에 계시고 난 그날의 아부지가 남긴 유산인 청승과 멜로를 살고 있을 뿐'이라고 시인은 '가족 극장'에 털어놓았다. 

아버지가 이재무에게 남긴 유산은 '언변술'과 '다혈질'이라고 했다. 그의 가족은 시골 동네에서 모두 이야기꾼으로 소문날 정도로 입담이 센 공통점을 지녔다. 걸죽한 입담만 물려받았다면 좋은데,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다혈질도 물려받아 그는 매일 후회한다고 했다. 그는 '눈물과 분노에 쉽게 전염되는 사람/ 누군가 울고 있으면 내 몸은 벌써/ 습지처럼 촉촉하게 젖어 오고/ 누군가 의분으로 떨쳐 일어서면/ 내 몸은 이미 주먹으로 단단해져' 있으며 '나는 눈물과 분노 바이러스에/ 항체가 없어,/ 매일을 속수무책 울며 소리치는 사람'이라고 '나는'에 썼다. 

▲이재무 시인은 고향에서 국어 선생으로 살고 싶었지만 수상한 세월 탓에 '분노를 학습시킨 서울시 주민'으로 운명에 멱살 잡혀  살고 있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재무는 충남 부여의 전통적인 농경사회 집성촌에서 5대 장손으로 컸다. 대학시절 학생 신분으로 교사 채용 비리 고발 글을 기고했다가 졸업한 친구들은 대부분 2급정교사 자격증을 땄지만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선배의 소개로 서울에 올라와 출판사에 잠깐 다니다 다시 낙향, 이후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 간사로 불려 올라와 고달픈 서울살이가 시작됐다. '훗날 국어 선생이 되어/ 고향의 아이들에게 시를 읽어 주고/ 주말이면 이웃들과 천렵을 다니거나/ 산을 타고 돌아와/ 보시기 안주로 탁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수상한 세월 탓에 '분노를 학습시킨 서울시 주민'으로 '어릴 적 내가 단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는/ 운명에게 멱살 잡힌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쓰는 배경이다. 운명에 멱살 잡혀 새로운 집이 더 가까워진 나이에 이르렀지만, 옛 집의 정서야말로 자연과 사물에 대해 그가 느끼는 활력을 고스란히 전해준 귀한 힘이다.

여름은 소란이 번성하는 계절/ 새들의 산부인과 병동인 야산에 새 새끼들/ 울음소리 질펀하고 무논에서 둑으로/ 무리 지어 튀어나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며/  타작마당 콩알들처럼 여기저기/ 가지에서 쏟아지는 매미들 떼창에 귀가 먹먹하다/ 몸보다 큰 그림자 끌며 유영하는 물고기들/ 살이 오르고, 불쑥 떠오른 생각처럼/ 바람 불 때마다 은피라미인 양/ 팔랑팔랑 하얗게 몸을 뒤집는 나뭇잎들/ 숲에는 그늘이 고여 출렁이고/ 괄약근 느슨해진 하늘에서 천둥 번개 치고/ 큰비 내려 계곡과 냇가에 갑자기 불어난 물이/ 변성기 소년의 성대처럼 괄괄 소리 내어 흐르는데/ 비 갠 하늘에 나타난 비행기가/ 폭음을 내려놓고 사라진다 ('즐거운 소란')

새 새끼들이, 개구리들이, 타작마당 콩알들이, 매미들이, 물고기들이, 나뭇잎들이, 천둥이, 계곡물이 소란하다. 소란하지만 시끄럽지 않다. 소란한 침묵이다. 시인은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라고 '침묵'에 썼다. '자연의 온갖 소리들 새 울음소리, 강물 소리, 벼랑을 물었다 뱉는 파도 소리, 나뭇가지 스치는 바람 소리, 홈통 타고 내려오는 빗소리, 눈 내리는 소리, 산의 능선을 타는 달의 숨소리 등속을 관통하여 마침내 신의 음성을 듣는 것'이라고. 

6월의 나뭇가지에/ 가득 열린 푸른 물고기들/ 바람이 불 때마다/ 지느러미 흔들며/ 공중을 헤엄치고 있다/ 나무들마다 만선이다 ('만선')

그는 전형적인 농경사회에서 태어나 자란 덕분에 자연을 묘사하는 에너지의 근본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기형도 시인의 경우 자연은 거의 검거나 죽어있거나 딱딱한 반면에 그가 묘사하는 자연은 활동하는 존재들이라고 했다. 모든 사물에 감정이 깃든, 애니미즘에 가까운, 의인화된 세계관은 모두 유년기에 자연에게 훈육된 덕분이라고 본다.

▲인사동 거리에 선 이재무 시인. 그는 옛집을 떠나온 이래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난민처럼 살아왔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재무는 '시인이란 사물의 아름다움에 기꺼이 마음이 발기되는 자, 전인격을 강조할수록 시는 궁핍해진다'고 '외로운 밤'에 썼다. '싼값에/ 좋은 것을 골라/ 더 많이 주려고/ 안절부절못하며 애쓰는,/ 단 한 줄의 시조차/ 읽은 적 없는 과일 행상 할머니의/ 어진 마음이야말로 절창 아니고 무엇이랴'고 '시'를 규정하기도 한다. 그는 시인이란 세상 만물에 대해 연민을 느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언어 따로 시 따로 사는 사람들을 그는 경멸한다. 생활과 시의 보폭이 같아야 한다고 자주 말하는 배경이다. 그는 '명사에는 진실이 없다/ 진실은 동사로 이루어진다/ 신이나 진리를 명사로 가두지 마라'고 '동사動詞를 위하여' 항변한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명사에는 진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새로운 변화가 없으면 시를 서둘러 쓰지 않을 생각이다. 이번 시집에 그동안 썼던 많은 편수를 한꺼번에 묶은 이유라고 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조와 작법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난민처럼 살아온 길, 남은 생에는 내내 이런 평화 누리기를.

보채는 몸속 잠을 눈으로 내뱉다보니/ 눈물 살짝 고인 눈가로,/ 냇물 속 벗은 발목에 몰려와서는/ 조동아리로 살 물어대던 치어 떼처럼/ 내보낸 졸음의 물고기들 다시 몰려와/ 지느러미 흔들어대며 헤살 짓고 있네('졸음')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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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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