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이재명은 '진짜 실용주의자'인가

UPI뉴스 / 2022-01-17 16:09:16
경험,실천,실적 중시 정치인이라 실용주의자 자처했겠으나
선거 앞두고 이전 정책, 발언 뒤집는 건 기회주의 아닌가
머리와 가슴이 결합하는 진실한 실용주의에 충실해야
"그분하고는 비교 안 하면 좋겠다. 그분은 가짜 실용주의자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실용주의자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이재명이 <중앙일보>(1월 11일) 인터뷰에서 자신이 전 대통령 이명박과 자주 비교되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이명박의 말로가 좋았다면 달리 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질 못하니 그리 답하는 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사실 이재명은 오래 전부터 실용주의자를 자처해 왔다. 그는 이미 2016년 "나는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면 우파, 좌파 정책 다 갖다 쓸 수 있는 실용주의자다"라고 했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은 좌파도 우파도, 보수도 진보도 아닌 '실용주의자'라는 걸 강조하는 의미에서 "저는 양(兩)파 또는 무(無)파입니다"라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재명은 과연 '진짜 실용주의자'인가? "이명박은 가짜 실용주의자"라는 그의 어법을 빌리자면, 그 역시 가짜다. 이렇게 말하는 게 결례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정치학자 안병진이 잘 지적했듯이, 한국에서 실용주의는 '우파의 전유물'로 이해돼 왔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우파가 아니며, 지극히 '민주당스러운' 정치인이라는 게 무슨 흉이 되겠는가.
 
이재명은 자신이 경험·실천·실적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실용주의자'라는 용어를 썼을 게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유연성'을 내세워 이전의 정책이나 발언을 뒤집는 일이 잦아 '기회주의자'와는 어떻게 다른 건지 궁금해진다.

실용주의자는 이념과 절대 가치를 배격한다. 이재명이 행정에선 그렇게 볼 수 있는 면을 보여준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건 미시적 행정의 속성이자 당위이기 때문에 그걸 근거로 "나는 실용주의자"라고 말하는 건 무리다. 전반적인 정치적 삶을 보고 평가하는 게 옳다.  그가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민주당 대선후보로까지 도약하면서 지지자들을 열광시킬 수 있었던 최대 비결은 이념과 절대 가치를 앞세운 '편가르기'였음을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이재명은 촛불정국에서 "가짜 보수 정치세력을 거대한 횃불로 모두 불태워 버리자",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어설픈 관용과 용서는 참극을 부른다", "박근혜의 무덤을 파, 박정희의 유해 곁으로 보내주자" 등과 같은 과격 발언으로 열성 지지자들을 감동시키지 않았던가. 2017년 대선 기간 중에도 "지난 대선은 3·15 부정선거를 능가하는 부정선거", "세월호 참사는 제2의 광주학살" 등의 과격 발언으로 지지자들의 피를 끓게 만들지 않았던가.

이재명의 역사관도 철저히 그런 절대적 비타협 노선 일변도였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과 노태우,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는 친일 독재·매국·학살 세력",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 등의 발언을 보라. 언론관도 "독극물 조작언론을 반드시 폐간시킬 것", "(가짜뉴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 등과 같이 과격했고, 의회관도 "민생 법안은 과감하게 날치기해줘야 한다"는 수준이었으며, 자신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 보고서를 낸 연구자를 향해선 "보호해야 할 학자도 연구도 아니며 청산해야 할 적폐"라고 인신공격을 퍼붓지 않았던가.

도대체 이런 모습 어디에서 실용주의자를 찾을 수 있겠는가. 실용주의는 이념과 절대적 가치뿐만 아니라 포퓰리즘도 배격한다. 포퓰리스트라는 비판을 자주 받는 것에 대해 대응 전략을 바꾸기로 했던 건지 이재명은 2018년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난 포퓰리스트다. 반대되는 말이 엘리트주의인데, 이건 국민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문제다. 우리 국민은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다. 촛불혁명이 보여주지 않았나. 이들을 대리하는 게 정치고, 이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게 곧 포퓰리즘이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포퓰리즘엔 '좋은 포퓰리즘'과 '나쁜 포퓰리즘'이 있는데, 자신이 하는 것은 '좋은 포퓰리즘'이라는 게 이재명의 생각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비판적 의미로 말하는 건 '나쁜 포퓰리즘'이므로, 자신은 그런 포퓰리스트는 아니라는 뜻일 게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겠는데, '좋은 포퓰리즘'과 '나쁜 포퓰리즘'의 경계가 명확한지는 의문이다. 예컨대, 그는 2020년 8월 "제가 단언하는데 재난지원금을 30만 원씩 50번, 100번 지급해도 서구 선진국의 국가부채비율에 도달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내놓았는데, 이걸 과연 '좋은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국 경제학자 폴 콜리어가 최근 출간한 <자본주의의 미래>에서 잘 지적했듯이, 포퓰리즘은 '머리가 없는 가슴'만을 들이밀고, 이념은 '가슴이 없는 머리'만을 들이민다. 콜리어는 "실용적 사고와 긴밀하게 맞물리는 우리의 가치는 가슴과 머리를 결합한다"고 말한다. 머리와 가슴의 결합을 각각 어떤 비율로 하건, 가장 중요한 원칙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지배하려는 욕구를 자제하는 것이다. 이왕 실용주의를 껴안기로 한 이상 뒤늦게나마 모든 면에서 진실로 실용주의 정신에 충실한 이재명을 보고 싶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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