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바닷가 늙은 집에서 부르는 시인의 노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1-12-14 21:22:45
산문집 '섬에서 부르는 노래' 펴낸 손세실리아 시인
친필사인본 제주 북카페 '시인의 집' 운영해 온 이야기
시인이 추천한 책들에 얽힌 사연과 인연을 노래처럼 펼쳐
"처처에 무명 고수들… 이 공간에 천사가 다녀간 것 같다"
제주에서 책방 겸 카페를 운영하는 손세실리아 시인이 두 번째 산문집을 펴냈다. 이 책 '섬에서 부르는 노래'는 유일하게 저자 친필 사인본만을 판매하며 자신이 고른 책을 전파하는 책방 주인의 보고서이자, 시인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노래처럼 띄우는 인사이기도 하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만난 사람과 책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되, 시인의 섬살이에 담긴 정한이 따스하다.

▲감염병 재난으로 요양원에 갇힌 엄마와 전화로 '가요무대'를 진행했던 손세실리아 시인. 요즘도 수신인 없는 전화에 대고 노래를 부른다, 천국에서 들으시라고.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시인은 요즘도 습관처럼 아침 산책에 나서 '닭머르해안길'을 걷다가 엄마 전화번호를 눌러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천국에서 들으시라고. 유례없는 감염병 사태로 요양원에 있던 노모 면회가 어려워지자, 모녀는 전화로 노래를 주고받았다. 딸이 '가요무대'라고 명명한 이 행위는 수개월 간 지속됐다. 시인은 어린시절부터 엄마에게 자연스럽게 습득한 덕분에 또래들에 비해 흘러간 노래를 많이 아는 편이다. 엄마의 젊을 적 애창곡을 부르되 재탕 삼탕을 하지 말자는 원칙을 세웠는데, 예상 외로 '가요무대'가 오래 지속되자 레퍼터리가 거덜나 난감하기도 했다. 

맨 첫 선곡은 엄마의 십팔번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었다. 딸이 먼저 시작하면 엄마가 전화기 저편에서 들릴락말락 따라 불렀다. 요양원 다인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모깃소리처럼 작게 불렀던 것인데, '목포의 눈물' 과 '하숙생', '가슴 아프게'와 '꿈속의 사랑' 들을 가만히 듣던 엄마는 중간중간 열심히 추임새를 넣었다. '비 내리는 고모령'에 이르러 엄마는 가만가만 따라 불렀고, 딸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에 이르러 엄마가 다시 노래를 그치자 딸이 이어서 불렀는데, 노모는 노래는 아랑곳없이 "사랑해. 사랑해. 우리 딸을 많이 사랑해"라고 읊조렸다. 시인은 근조화환이 에워싼 영정 앞에 앉아 엄마의 독백과 노래가 담긴 '가요무대' 녹음 파일을 재생시켜놓고 "그 안의 추임새, 그 안의 숨소리, 그 안의 여전한 웃음, 그 안의 울먹울먹…에 따라 약속이나 한 듯 추임새를 넣고, 숨을 고르고, 깔깔거리고, 흐느꼈다"고 '고아의 노래'에 썼다.

딸 하나 딸린 과부로 생계형 선술집을 꾸렸던 엄마와 딸은, 태생의 우여곡절로 인해 호적상으로 모녀지간인 적이 없었다. '무적자로 지내다 통장이 만들어준 행불자 이름으로 반평생을 살다 간 여자, 기초수급 탈락될세라 수양딸로 입단속 시키곤 하던 여자'였다. 딸은 엄마에게 노래는 고해성사이자 고백이고 넋두리이자 절규였다고 했다. '제삼자라 사망 신고도 안 돼 시청 민원실 바닥에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게' 만들었고 '내 모든 가난과 한숨과 주눅과 그늘의 원천이지만 내 시의 출발이기도 한 여자'이고 '가진 거라곤 나뿐이던 나만 바라보던 천치 같은 여자'였던 엄마를 보낸 후, 딸은 '몇 줌 뼛가루/ 생전 당부대로 바다에 놓아드리다가/ 그 뜻 온전히 따를 순 없어/ 1티스푼 몰래 덜어 와/ 마당가 동백나무 아래' 모셨다. 엄마가 떠난 지 팔 개월 넘게 '실어기'에 빠져 장례 때 위로해준 이들에게 답례 문자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다가 처음 발표한 시가 '동백 핀 날'이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 단 한번도 누려본 적 없는 꽃 사치/ 원 없이 향유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말문 열리지 않는단 이유로 미루고/ 미룬 유월의 인사 이제 전합니다/ 선홍빛 그녀의 재촉이기도 하고요// 슬픈 날 기별 주세요/ 곁에 있겠습니다


손 시인은 여고시절 고향에서 시립합창단원으로도 활동했고 지휘도 했다. 성악 발성이지만 문단에 나와 대중가요를 부르자 그녀를 시인보다 가수로 여기는 이들이 많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것이 싫어 노래를 멀리한 덕분에 시를 더 천착하게 됐고, 나중에는 목에 이상이 생겨 노래가 힘들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자부심이 강하다. 그녀가 열창했던, 다시는 부르지 못할 것 같지만 전혀 애석하지는 않다는, 지금은 '내 시의 내재율'이 됐다고 고백하는 '애창곡(愛唱曲)이자 애창곡(哀唱曲)' 목록.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서 부른 '가고파' '사랑'. 가수 이동원 선생 디너쇼 무대에서 부른 '립스틱 짙게 바르고'. 고국인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는 자카리아 무함마드(Zakaria Mohammad) 시인을 위해 한강 유람선 선상에서 불렀던 '이별 노래'. 그리고… 맨발로 빙의된 듯 열창해 문단의 조수미라 불리기도 했던 '나 가거든'."

손세실리아는 제주살이를 소망하다가 백년 넘은 낡은 집을 발견해 그 집을 고쳐서 지금의 북카페에 이르렀다. 그녀는 집을 자신이 선택했다기보다 그 집이 자신을 고른 것 같다고 했다. 초기에는 공간 자체가 주는 보람이 컸지만, 이제는 책들을 읽고 추천하는 일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이 더 고맙다고 했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책방 주인을 꿈꾸었다"면서 "이런 공간을 만나고 늦은 나이에 시를 쓰고, 불우했던 성장기에도 불구하고 이런 삶을 살게 된 출발점이 책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문맹의 어머니 슬하에서도 주위에 어느 한 순간도 책이 없는 순간은 없었다고 했다. 여고시절 책꽂이에 꽂혀 있던 번역서 '커피를 드릴까요 나를 드릴까요'를 무심코 옆집 남학생에 빌려주었다가, 오해한 그 녀석이 껴안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제주 조천 바닷가 백년 넘은 낡은 집을 고쳐 저자 친필 사인본만을 판매하는 카페로 운영해 온 손세실리아 시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제주 해안가를 걷다가/ 버려진 집을 발견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그 어떤 이끌림으로/ 빨려들 듯 들어섰던 것인데요 둘러보니/ 폐가처럼 보이던 외관과는 달리/ 뼈대란 뼈대와 살점이란 살점이 합심해/ 무너뜨리고 주저앉히려는 세력에 맞서/ 대항한 이력 곳곳에 역력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생도 저렇듯/ 담담하고 의연히 쇠락하길 바라며/ 덜컥 입도(入島)를 결심하고 말았던 것인데요/ 이런 속내를 알아챈/ 조천 앞바다 수십 수만 평이/ 우르르우르르 덤으로 딸려 왔습니다('바닷가 늙은 집')

말이 책방이지 대형 서점에서조차 기피하는 시집이 80퍼센트인 반면에 산문·소설·그림책·화집 등은 고작해야 20퍼센트에 지나지 않고, 카페의 일정한 공간만을 할애하고 있어 처음 방문한 이들은 공간의 정체성에 고개를 갸웃하곤 한다고 했다. 저자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책을 주문해놓으면 반품을 할 수가 없으니 고스란히 책방 주인이 떠안아야 한다. 그만큼 책 선택에 신중하고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아직도 이곳이 유일한 저자 친필 사인본 서점인 까닭이다. 그녀의 책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명징하게 드러나는 배경이다.

손 시인은 "이 공간에 진짜 천사가 다녀간 것처럼 일정 부분 제가 끌고 왔다기보다 끌려온 것 같기도 하다"면서 "덕분에 제 영혼이 강해지고 한편으로는 순해진 것 같다"고 말한다. 강인해졌다는 것은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자신감이 그것이고, 이 공간을 찾는 다양한 처처의 '무명 고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순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지독한 활자중독자인데 시력에 이상이 생겨 책을 놓고 있다가 이곳에 들러 오랜만에 읽기에 심취할 수 있었다는 사람은 '아름답고 향기로운 책방을 지켜주어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혼자 여행을 떠나와 미안해서 남편에게 선물하려고 책을 한 권 선택해 사인을 요청하는 여자도 있었다. 알고 보니 남편은 삼년 전 세상을 떠났는데, 손세실리아의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 표지에 음각된 '기억 속의 사람이 울컥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속수무책 그리울 때가 있다'는 문장이 그녀를 움직였다고 했다. 

▲손세실리아는 "꿈을 꾸는 고단한 이들과 내 시의 무한 권력인 독자들께 바친다"고 산문집 후기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손 시인은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게다가 책방을 운영하지 않았다면 닿지 못했을 인연이 바로 이런 경우 중 하나"라면서 "진심 어린 고백을 생의 이쪽에서 생의 저쪽으로 대신 전달하는 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 천번 만번 생각해도 축복 맞다"고 썼다. 처음 섬에 들어와 "설지 않은 게 없다/ 백수를 넘긴 바닷가 늙은 집과/ 양보하고 타협하며 허물을 트는 일도/ 혼자 먹는 밥도/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일도/ 서글프고 막막하기 짝이 없다"면서 "도망쳐온 섬의 밤은 길다 아직/ 설고도 설다 얼마를 더 뒤척여야/ 아침 하늘이 열릴까"('조천朝天에서')라고 힘들어하던 때를 돌이키면 '천사'가 다녀간 건 맞는 것 같다. 후기에 붙인 세실리아의 섬 노래.

삼백칠십여 개의 크고 작은 오름과/ 생태계의 허파인 곶자왈과/ 잦은 강풍과/ 검은 돌로 에워싸인 집과 밭과 무덤/ 그리고 삼천육백여 명의 해녀와/ 만 팔천여 신(神)과/ 소멸 위기에 처한 매혹적인 방언과/ 정명(正名)되지 않아 슬픈 무자년 광풍의/ 제주에 산다/ 어느 날의 돌연한 입도(入島)가/ 그새 십일 년째다/  출생으로 주어진 고향을 제외하면/ 가장 오랜 정주이니/ 자의로 획득한 고향이랄 수 있겠다/ 여기서 나는/ 사철 피고 지는 꽃과 철새와 갯것과/ 세상 멋진 길고양이 랭보와/ 다감한 삽화로/ 글에 생기를 불어넣어준 딸아이 율과/ 섬살이 중이다/ 아니 꿈을 노래하고 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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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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