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과 치부를 스스로 널리 알리는 자해일 뿐 우리는 '쿠데타'라고 하면 주로 '5·16 쿠데타'를 생각하지만, 국민적 언어 생활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자면 2년 넘게 매일 외쳐진 '쿠데타'를 '5·16 쿠데타'의 반열에 올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바로 2년 전인 2019년에 일어난 '8·27 쿠데타'다.
그날 오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조국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문재인 정권 인사들과 지지자들은 이를 '검찰 쿠데타'로 규정했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2년 넘게 '쿠데타'는 한국인들의 일상 용어가 되었다. 문 정권 인사들이 윤석열과 검찰을 비난할 때에 자주 동원하는 말이 쿠데타였고, 이는 언론을 통해 널리 퍼져 나갔다.
때는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가 아닌가. 각종 뉴미디어도 이런 전파에 가세했다. 정치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도 소셜 미디어와 사이버 커뮤니티 등을 통해 1년 365일 내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밝혔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쿠데타는 일상 용어로 승격된 것이다.
'검찰 쿠데타'의 자매어로 '연성 쿠데타'와 '사법 쿠데타'라는 말도 널리 쓰이기 시작했는데, 이 용어들의 전파엔 김어준이 큰 역할을 했다. 2020년 12월 11일 김어준의 팟캐스트 '다스뵈이다'(143회)는 브라질의 민주주의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를 거론하면서 이른바 '연성 쿠데타'론을 제기했다.
패널로 출연한 변호사 신장식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작년 조국 사태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과정이 마치 브라질의 연성쿠데타를 연상시킨다"고 주장했고, 김어준은 "어떻게 법률을 이용해서 쿠데타를 일으키는지를 다큐로 찍은 건데"라면서 맞장구를 쳤다.
'연성 쿠데타'의 대체어로 쓰인 '사법 쿠데타'라는 말은 10여일 후 나온 두 건의 법원 판결로 인해 이후 여권이 즐겨 쓰는 상용어가 되었다. 12월 23일 전 법무부 장관 조국의 부인 정경심이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고, 다음날 법무부의 검찰총장 윤석열 정직 2개월 중징계에 대해 법원이 '집행 정지 결정'을 내렸다. 여권은 분노의 수준을 넘어 '사법 쿠데타'라며 3권분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2월 28일 민주당 의원 민형배는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윤석열 탄핵, 역풍은 오지 않는다: 윤 총장 탄핵이 반드시 필요한 네 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장문의 글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검찰이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법원은 이 카르텔에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보조를 맞추며 동조,협력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주권자를 서슴없이 유린하는 이 행위들을 '사법쿠데타'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담아낼 말이 없다."
'사법쿠데타'에 관한 한 한국은 제2의 브라질인가? 이미 여권에선 그렇다고 보는 확신을 넘어 신앙이 자리를 잡았지만, 과연 그런가? 노정태는 최근 출간한 <불량정치: 우리가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은 24가지>라는 책에서 반론을 제시한다. 지면의 한계상 반론의 내용을 소개하기는 어려우므로 관심 있는 독자는 이 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여권의 내로남불이 너무 코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큰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 그간 나온 법원 판결은 여권에 불리한 것들도 있었고 유리한 것들도 있었다. 유리한 게 나오면 여권은 "법의 정의는 살아있다"며 사법부를 칭송하다가도 불리한 것만 나오면 '사법 쿠데타"라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모든 걸 자기 중심으로 판단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애 같지 않은가?
여권은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쿠데타'라는 말을 열심히 쓰고 있다. 그 진실이 무엇이건 여권이 '쿠데타 병'에 걸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수사 비리나 과잉 수사를 '쿠데타'로 부르겠다면, 쿠데타라는 개념을 새롭게 재정의한 후에나 그리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쿠데타의 수괴가 주도한 국정농단 수사도 문제가 없었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공명정대하게 나가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잖은가.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집권세력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해나가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지 않은가. 그런 집권세력이 걸핏하면 '쿠데타 타령'을 해대는 건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과 치부를 스스로 널리 알리는 자해(自害)가 아닌가. 여권은 왜 그런 '자해 취미'를 갖게 된 걸까?
싸우는 상대편을 거악(巨惡)으로 매도해야만 우리편의 악(惡)을 사소하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는 동시에 지지자들의 증오를 부추겨 동원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은 아닐까? 단지 그런 목적을 위해 한국을 2년 넘게 매일 '쿠데타'가 외쳐지는 나라로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런 의문이 강하게 들긴 하지만 마음의 평온을 위해 좋은 쪽으로 해석하자. 쿠데타의 원조인 군사 쿠데타의 위협이 사라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자축하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이해하자.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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