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이 '언론재갈법'인 이유…독소 조항은

장은현 / 2021-08-25 15:38:08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근거로 언론사 대상 소송 남발
'정치·경제권력자, 손해배상 청구불가'…사각지대 여전
학계 "열람차단청구권은 공론장서 언론보도 퇴출시켜"
언론개혁의 핵심은 '보도에 따른 피해 구제'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 나날이 증가하는 허위·조작 정보로 인한 이용자의 피해를 구제하고 보상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하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본 취지에서 벗어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언론계는 물론 학계, 법조계 등은 몇몇 독소조항으로 권력 감시와 비판이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며 '재논의'를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더불어민주당 윤호중(오른쪽),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본회의 일정 논의 전 기념촬영을 마치고 자리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먼저 '고의중과실 추정'을 규정한 제30조2의 2항이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이 조항은 결국 '해석'의 영역이다. 고의로 판단할 '보복적', '반복적' 등의 잣대가 주관적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해 언론보도에 대한 무차별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5일 UPI뉴스와의 통화에서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결과를 예단해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누군가가 보복적이나 반복적인 허위 보도를 주장했을 때 확인을 통해 허위, 조작 여부를 따져야 하는 건데 이 과정을 건너뛰고 허위·조작으로 '추정'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결국 이 조항은, 지금은 삭제된 '언론의 입증책임'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는 이날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을 근거로 기획 기사나 추적 보도 등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 교수는 "이 규정 자체가 총체적으로 문제"라며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를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이날 새벽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중 '법원은 언론보도 등이 다음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라는 문구에서 '명백한'을 삭제했다. 김남국 의원은 "일반인이 고의 또는 중과실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은데, '명백한'이라는 표현을 넣으면 더 구제되기 어려워 빼는 게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청구인의 자의적 해석 가능성이 더 커진 것이다.

또 고의중과실 추정을 하는 요건의 첫째 항목인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에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를 뺐다. 소병철 의원이 "보복적, 반복적 허위 조작보도 자체가 고의중과실이라고 봐야 한다"고 제안하자 위원회는 삭제하기로 결정했다.

요건 중에서 논란이 컸던 '허위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었을 경우'라는 항목은 아예 삭제됐다. 최기상 의원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라고 했는데 그런 사례는 무엇이고 반대로 회복할 수 있는 손해는 어떤 경우를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23일 성명문을 통해 "고의중과실 사유를 예시 또는 열거해 추정하는 규정은 삭제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열람차단청구권'(제17조2)도 문제다. 이 조항에 따르면 인터넷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 서비스를 통한 언론보도 등으로 인해 피해를 받은 자는 기사의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다. △제목 또는 전체적인 맥락상 본문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않은 경우 △보도 내용이 개인의 신체, 신념, 성적 영역 등과 같은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하는 경우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 등이 해당된다.

이때 인터넷 언론 등은 곧바로 해당 기사에 관해 정정보도 청구, 반론보도 청구, 추후보도 청구가 있음을 알리는 표시를 해야 한다.

장영수 교수는 "이 조항은 언론 보도를 공론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터넷에 한정돼 있으나 열람 차단 표시를 붙이는 건 보도를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어 "물론 열람차단을 청구한다고 해서 100%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겠지만 법원의 판단이 아닌 언론중재위원회의 판단으로 사실상 검열에 가까운 효과를 가져오는 건 문제"라고 비판했다.

열람 차단 청구 기준인 '제목과 본문 내용이 진실하지 않은 경우'라는 조항도 "구체적으로 어디까지인지 기준이 모호하다"고 꼬집었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처리된 25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벽에 언론중재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시스]

손해배상 청구 주체에서 정치·경제 권력자를 제외한 부분에 있어서도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민주당은 당초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대기업 임원 등도 제한적으로 언론보도에 징벌적 손배를 청구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이들에 대한 손배 청구권은 빠졌다. 구체적으로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등 정무직 공무원과 1급 이상 고위 공무원이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최순실씨처럼 공직자는 아니지만 권력을 가진 이들이 손해배상 청구를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이 법사위에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최순실 씨가 공직자냐"고 따진 이유다.

이 법안대로라면, 공직자는 아니지만 권력을 가진 이들이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보도를 제멋대로 해석할 여지가 남아 있다. 또 청구 제한 대상에서 제외된 중견기업이 자사에 대한 의혹 보도 등을 허위·조작 보도로 신고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법안을 현재의 안 그대로 본회의에 통과시키겠다는 민주당의 태도다. 일부 의원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냈으나, 대다수 의원은 강행 처리를 주장하고 있다.

송영길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 모두발언을 통해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환영하고 내가 제일 먼저 나가서 말씀드리겠다"며 "저는 언론중재법에 대해 10시간을 이야기해도 할게 많이 있다"고 큰소리쳤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받지 않는 대상은 △'공익신고자보호법' 제2조 제1호의 공익침해행위와 관한 보도 △'청탁금지법'에서 금지하는 행위 보도 △위에 준하는 공적 관심사와 관련한 사항으로 제4조 제3항에 따른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언론보도 정도다.

KPI뉴스 / 장은현 기자 e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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