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홍범도, 바람처럼 살다 간 쓸쓸하고 매혹적인 인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1-08-19 15:37:27
'홍범도 실명소설' 연재 시작한 소설가 방현석
이념과 편가르기 거부하고 기본을 강조한 사람
여성 화자 내세워 인간 홍범도에 섬세한 접근
"억압과 차별을 향해 발사한 일격필살의 저격"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1868~1943) 장군이 고국에 돌아왔다. 카자흐스탄 땅에 묻힌 지 78년 만이다. 머슴으로 살다가 행자승, 포수로 살다가 의병이 되어 일제에 대항해 봉오동 청산리 등지에서 강건하고 대범하게 싸워 민족의 기개를 떨친 장군이었다. 장군의 업적에 비해 말년은 쓸쓸했다. 연해주에서 고려인들과 함께 중앙아시아로 추방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극장 수위로 살다 숨을 거두었다. 대중에게는 세세하게 알려지지 않은 홍장군의 삶은 유해 봉환을 계기로 조명받고 있지만, 그의 세밀한 삶과 투쟁과 생각은 아직 크즐오르다에 묻혀 있는 셈이다. 

 

영웅이기를 거부하고 이념과 편가르기를 마다했던 그의 생각과 삶은 문학이라는 프리즘으로 들여다보면 더 섬세하게 드러난다. 일찌감치 이동순 시인이 '민족서사시 홍범도'를 전 10권(2003년, 국학자료원)으로 집필해 먼지를 털어냈고, 지난해에는 소설가 송은일이 청산리전투로 끝나는 '나는 홍범도'(2020, 바틀비)라는 장편을 선보이기도 했다. 장군 삶의 골격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작업들이다. 

▲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한인 대표로 참석한 홍범도. 사진 하단에 러시아어로 홍범도의 이름이 기재돼 있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제공]


소설가 방현석은 장군의 유해 봉환을 하루 앞두고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 연재 첫 회분을 선보였다. 12년 동안 붙들어 왔고, 2년 전부터 본격 집필하기 시작해 200자원고지 3000장까지 이미 완성했다. '홍범도 일지'를 근간으로 수많은 고비와 곡절의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품고 왜 그리 행동했는지, 그때 심정은 어땠는지 장군의 마음이 되어 되짚고 대화를 나누는 작업을 수행해왔다. 이제 그의 쓸쓸한 최후를 배웅하는 500장을 추가로 집필하면 대장정이 끝난다. 연말께 두툼한 장편 3권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방현석과 전화로 만나 홍범도 장군을 문학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보았다.

-오랜 시간 홍범도를 붙들게 된 배경은?

"만주를 비롯해 연해주 중앙아시아를 돌아다니면서 처음에는 항일독립운동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 삶의 광활함과 황막함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으로 쓸쓸하고 또 강인하고, 그러면서도 가장 섬세했던 사람이 홍범도였다. 그이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살았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런 질문들 하면서, 거기에 필요한 자료들을 찾고 대답을 내가 스스로 찾으면서 10년 동안 그런 대화를 나누는 파트너로 살았다. 처음에는 홍범도를 중심으로 만주에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를 쓰려다가 점점 홍범도로 좁혀진 거다. 지난 2년 동안은 완전히 매달려 살았고. 매주 200자원고지 50장씩 따박따박 썼다."

 

-홍범도의 어떤 면을 특별히 부각시키고 싶었는가.

"인간 홍범도를 통해서 한 시대의 철학, 한 시대의 삶을, 그 시대의 사랑을 그려내고 싶었다. 홍범도는 그 시대의 풍운아였다. 풍운아의 삶과 사랑을 잘 직조하려고 했다."

 

소설 첫 회는 '조선 최초의 비혼주의자였던 백무아와 그의 남자, 그리고 만주와 연해주, 중앙아시아에서 돌아오지 못한 저격여단의 단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로 시작하고 있다. 프롤로그 소제목은 '내 할머니의 남자'. 여성 '내포화자'를 내세우되 홍범도가 직접 자신의 삶을 일인칭으로 기술하는 형식이다. 공식 연보를 보면 홍범도는 두 번 결혼한다. 첫 아내 단양 이씨는 일제에 잡혀 고문당하다 사망했고, 아들도 함께 싸우다 전사했다. 61세에 연해주에서 재혼했고 이후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됐다. 방현석은 공식 기록에는 없는, 홍범도를 사랑하고 지켜본 비혼주의자 여성 저격수를 등장시켜 인간 홍범도를 보다 깊이 입체적으로 부각시키는 전략을 취한 셈이다. 여성 화자는 말한다. 

 

'나는 항일 무장투쟁사를 바꾼 전설적 영웅의 생애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 번도 당당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사랑하는 내 할머니, 그녀에게 심장을 저격당한 한 남자를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내 할머니로 해서 더욱 고독했으나 내 할머니로 하여 최후의 순간까지 단독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었던 남자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 12년에 걸쳐 홍범도와 소설로 대화를 나누어 온 방현석.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피상적으로 알려진 홍범도 장군의 생을 세밀하게 구축하기 위해 오래 고심한 것 같다.

"중앙아시아까지 쫓겨 가서 살았던 삶이 쓸쓸하다. 연해주에서도 '자유시 사변' 때 어이없이 독립군끼리 서로 총질해서 죽었다. 파란만장하게 일제와 싸우던 사람들이 정작 '자유시 사변' 때 가장 많이 죽었다. 개죽음들을 했다. 중앙아시아로 끌려가기 전에도 스탈린은 일본의 간첩이라는 명분으로 엄청나게 고려인들을 죽인다. 홍범도가 안 죽고 살아서 간 것만 해도 기적이다. 중앙아시아로 버려졌는데 거기서 또 살아간다. 이 과정을 보면 스스로 영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는 종류가 다르다. 연해주에 있을 때도 독립운동 자금이 없어 부두에 나가서 성실하게 노동하고, 장군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견디었다. 1941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도 나이 70이 훌쩍 넘은 사람이 자원입대를 청한다. 홍범도 일지를 보면 옆집 여자를 욕하기도 하는 소박한 면도 보여준다. 일지만이 정본에 가까운 자료일 뿐이다. 나머지는 상상 속에서 그이와 대화를 나누며 함께 썼다."

 

이른바 '자유시 참변'(自由市慘變)은 1921년 6월 28일 소련 스보보드니(자유시)에 집결한 대한독립군단을 붉은 군대가 포위하고 학살해 무장해제시킨 사건이다. 이 과정에는 독립군단 내부의 반목과 갈등도 작용해 같은 편끼리 싸우는 비극도 연출됐다. 자유시 참변 이듬해인 1922년 2월 홍범도는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의 주최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한인 대표로 참석했고, 레닌과 단독면담도 가졌다. 이때 레닌으로부터 권총과 함께 격려금도 받았다. 

 

-최근 유해 봉환을 둘러싸고 홍범도 장군이 공산당과 협력하는 반민족행위를 했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어찌 생각하는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당시에 소련은 파시즘과 대항해서 싸우는 미국과 동맹국이었다. 레닌도 민족 해방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나라가 없으면 소련이든 만주에 가서 싸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미국에 있는 이들은 그 조건에서 협조를 얻어낼 수밖에 없고, 중국에서는 중국에, 소련에서는 소련에 협조를 할 수밖에 없다. 그건 선택 사항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의 지금 시각으로 당시를 평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다. 나라를 빼앗기고 이웃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다. 레닌이 조선독립운동에서 가장 역할을 많이 한 사람들을 초청해서 갔다. 공산당 유력자들이 아니라 가장 민족 해방에 공적을 올린 사람들을 초청한 것이다. 레닌이 그 공적에 대한 선물로 권총과 격려금을 준 거다. 조선독립운동가로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수많은 독립군 지도자들이 소련이나 같은 편에 의해 사살되고 암살되는 와중에도 홍범도는 기적처럼 끝까지 살아남았다. 그의 이념이나 노선은 무엇이었나?

"자유시사변 때 자기들에게 필요한 소련군 끌어들여서 노선 다른 사람들을 죽였다. 그 당시뿐 아니라 그 전후에도 보면 서로 죽이러 다니고 그런다. 일제와 그렇게 힘겹게 싸우다 살아서 동족을 서로 죽이고 죽고… 기록을 보면 다 나온다. 나라 빼앗긴 이들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다 내부 싸움까지 겹친 것이다. 지도자급들은 중앙아시아로 축출당하기 전에 많은 이들이 간첩으로 몰려 처형됐다. 홍범도는 정파 투쟁에 가담하지 않았다. 노선투쟁에 거의 끼지 않는다.  그래서 안 죽은 거다. 홍범도는 그런 노선투쟁에 사실은 관심이 없던 사람이다. 아주 기본적인 사람이다. 애국해야 돼, 착하게 살아야 돼, 어른 공경해야 돼, 공부 열심히 해야 돼… 이런 사람이었다. 연해주에서도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노선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글 한 줄도 남긴 게 없다."

▲ 78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홍범도 장군 유해가 특별기에서 운구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


-인간 홍범도를 압축해서 설명한다면?

"바람 같이 살다 간 사람이다. 어떻게 그 파란만장한 삶을 간단히 압축하겠나. 그는 너무나 쓸쓸하고 매혹적인 사람이었다. 밖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홍범도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소설 쓰러 서둘러 들어왔다. 그와 매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 소설을 쓴 건 사실 내가 아니고, 절반 이상은 홍범도가 끌고 갔고 나는 따라갔다. 서로 이야기하고 깔깔거리면서 같이 쓴 것이다."

 

광복절인 15일, 홍범도 장군 유해를 모신 특별기가 방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하자 엄호비행에 나선 우리 공군 전투기 6대의 조종사들은 일제히 거수경례를 했다. 장군의 유해는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긴 여정을 시작한 방현석 소설의 여성 화자는 말한다. 

 

'바람처럼 살다 간 한 남자의 심장을 저격했던 내 할머니의 눈빛을 읽어내는 사람이 당신이기를 바란다. 쓸쓸하고도 아름다웠던 그들의 시대를 조선 최초의 저격수였던 내 할머니의 눈길로 포착하는 사람이 당신이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당신의 심장이 저격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기를 또한 바란다. 그들은 자신의 가늠쇠 위에 올려놓은 상대를 그대로 내려놓아 준 적이 없는 일격필살의 저격수였다. '억압'과 '차별'을 향해 발사한 그들의 탄환은 아직 탄착점에 도착하지 않았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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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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