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물동이' 나르기 위해 근육 단련하며 신화를 꿈꿨다

김해욱 / 2021-07-28 11:27:26
필리핀에 올림픽 첫 금메달 안긴 역도 디아스
반란 모의로 몰리기도…역경 딛고 인간승리
도쿄 올림픽 여자 역도에서 필리핀 대표로 출전해 조국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하이딜린 디아스(30) 선수가 화제다.

지난 26일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여자 역도 55kg급에서 디아스는 인상 97kg, 용상 127kg으로 총합 224kg을 들어 올리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2위를 기록한 중국의 랴오추윈(26)을 1kg 차이로 따돌렸다.

한 편의 영화와 같은 역도 인생을 살아온 디아스는 이번 금메달 획득 전에도 이미 필리핀의 스포츠 영웅이었다.

▲ 지난 26일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린 여자 역도 55kg급에 출전한 다이딜린 디아스 선수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필리핀 삼보앙가에서 태어난 디아스의 어린 시절 꿈은 역도 선수가 아닌 은행원이었다. 가난했던 집안 사정의 영향이었는데 그런 그가 역도를 시작한 계기 역시 가난이었다. 어릴 때부터 매일같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우물에서 40리터 이상의 물을 퍼 와야 했던 디아스는 어떻게 하면 더 가볍게 이 물동이를 들고 올까 고민하다가 기구를 들며 몸을 단련하는 것으로 역도 커리어를 시작했다.

디아스는 2008년부터 필리핀 역도 역사를 새롭게 썼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며 필리핀 여자 역도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2008년과 2012년 올림픽에서는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며 필리핀 역도 사상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가 필리핀의 국민영웅으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이 은메달은 당시 필리핀이 20년 만에 획득한 메달이기도 했다.

영웅이 되었지만 그의 역경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19년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그를 '블랙리스트'로 올렸다. 대통령의 법적 자문관 살바도르 파넬로가 디아스를 비롯해 몇몇 배구 스타와 TV스타들이 필리핀 정부 전복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한 것이다. 디아스는 강력히 부인했지만 살해협박을 당하는 것은 물론 훈련 경비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기업과 스포츠 후원가들은 그에게 투자하는 것을 주저했다.

지난해 2월엔 코치의 조언으로 말레이시아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체육관 출입을 통제 당했다. 그는 수개월간 좁은 숙소에서 역기를 들어 올리며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디아스가 역경을 딛고 금메달을 확정한 순간, 그는 물론 필리핀 취재진 및 관계자들 모두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1924년 첫 올림픽에 참가한 필리핀은 97년 간 10개의 메달을 획득했는데 모두 은메달과 동메달이었다. 

시련을 이겨낸 디아스에게 필리핀 정부와 몇몇 기업들은 3300만 페소(약 7억500만 원)의 포상금과 집을 선물하겠다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대변인 해리 로크도 축전을 통해 "디아스가 필리핀에 자부심과 영광을 가져다주었다"고 발표했다.

디아스는 우승 인터뷰에서 "내가 금메달을 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필리핀의 젊은 세대에게 '당신들도 나처럼 금메달을 꿈꿀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KPI뉴스 / 김해욱 기자 hwk1990@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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