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 대기업 등 공인도 배액 배상 규정토록 적용
野 "정부 여당의 입맛에 따라 재단하는 언론재갈법"
학계 "언론 길들이겠다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 더불어민주당이 허위·조작 보도로 인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9일 언론계와 학계, 정치권에서는 지난 5월 31일 출범한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가 채 2달도 되기 전에 졸속으로 '언론개혁'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야당은 "언론재갈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법안소위를 소집하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13개를 단독으로 상정했다. 민주당 미디어특위 위원장인 김용민 의원의 발의안과 박광온 의원의 발의안,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의 발의안 등을 토대로 단일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각 대안에는 지금까지 당에서 논의돼 온 내용보다 더 강한 규제 방침이 담겨 있다. △언론의 허위보도에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국가기관, 공직자, 공공기관, 대기업 등에 대해서도 배액 배상 규정 적용 △신문의 1면과 방송 첫 화면, 홈페이지 첫 화면에 정정보도를 게재하도록 한 조항 등이 대표적이다.
김용민 의원 측은 UPI뉴스와의 통화에서 "미디어 혁신 관련한 문제는 20년도 넘게 논의돼 온 것"이라며 "각 조항 하나하나에 우려를 표하기보다 어떤 결정을 통해 어떤 개혁을 해 나갈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언론계, 포털 관계자 등과 8차례 정도 간담회를 진행했기 때문에 논의는 충분히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회장 서양원 매일경제 편집전무)는 전날 성명서를 내고 민주당을 향해 "개정 작업을 즉각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편집인협회는 "언론의 책임을 과도하게 규정할 경우 선으로 위장된 비위나 잘못된 행위, 제도와 관행에 대한 비판기능이 제한될 우려가 크다"며 "이번 언론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중대한 국정 현안에 대한 비판기능이 제한받으면서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도 반발했다. 지난 7일 성명서를 내고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은 보도로 발생한 시민 피해에는 몇 배라도 손해배상을 할 수 있지만 민주당의 개정안은 모호한 고의·중과실·면책 규정의 요건 등 여전히 숙의를 거쳐야 할 사안이 다수 존재한다"고 우려했다.
가장 먼저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이 위축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지난 6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민주당의 징벌적 손배제 관련 간담회에서 "공적 영역의 감시를 위해 공인에 의한 징벌적 손배제 남용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SBS 기자)도 "공적 영역 보도는 배액 배상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가 제기되는 것은 김용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신설되는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특칙(배액배상 규정)'때문이다. 김 의원은 일반 시민 외에 국가기관, 공직자, 공공기관, 대기업 등에 대해서도 징벌적 손배제를 모두 적용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다만 정무직 공무원이나 대기업은 해당 보도에 그들을 '해할 목적'이 있을 때만 법을 적용받도록 예외 규정을 뒀다.
언론노조 자문을 담당하는 신선아 변호사는 "예외 규정의 범위가 매우 협소하고 '해할 목적'이라는 요건이 얼마나 엄격히 해석될지 의문이기 때문에 소송 남용을 막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략적 봉쇄 소송'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정치적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가 허위사실 여부나 소송 승패 전망과 관계없이, 보도 초기부터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가압류 등의 조치를 취해 후속 보도와 사안의 공론화를 막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권력기관은 항상 국민의 감시·비판 대상이 돼야 하고, 그렇기에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이는 헌법상 기본권인 언론 자유의 핵심적 내용이자 민주적 기본 질서 유지의 근간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민주당의 개정안에 대해 '총체적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이 교수는 "허위·조작 보도라는 개념이 여전히 모호하다"며 "논의가 충분히 안 된 상황임에도 배상 규모를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로 정해놓은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다른 법률과 비교했을 때 5배 배상 기준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 변호사는 "현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적용을 받는 사례에서 3배가 넘는 손해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사례는 없다"며 "다른 법률이나 일반 불법행위에서의 손해배상 기준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지난 8일 의원총회에서 "집권 세력의 '언론 재갈 물리기' 언론 규제법안이 날치기 강행처리 시도의 문턱까지 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체위 간사인 민주당 박정 의원 측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심사를 이어가기 위해 현재 야당과 문체위 소위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KPI뉴스 / 장은현 기자 e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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