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그리움이라는 형벌이 글을 쓰게 했어요"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1-06-23 15:30:42
등단 16년 만에 첫 소설집 '통영' 펴낸 반수연
23년 이민 생활 견디게 하고 위무한 소설 쓰기
떠나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다시 돌아오는 공간
"이민 생활과 노년의 삶 더 깊이 들여다볼 것"

"매일 매일 너무 고향이 그리웠죠. 처음 이민 갔을 때 집에서 바다까지 삼십 분쯤 걸렸어요. 밤에 달려가서 캄캄한 바다를 보고 많이 울었어요. 너무 캄캄하니까 이게 고향 바다인지 낯선 바다인지 잘 구별이 안되더라구요, 파도소리만 들리고."

 

소설가 반수연의 고향은 통영이다. 서호시장 '딱정집'에서 가난한 성장기를 보냈다. 지척이 바다여서 파도소리는 도시의 소음처럼 일상적인 배경이었다. 그가 캐나다 벤쿠버로 이민을 떠난 시점은 1998년, 이후 내내 '그리움'이라는 병을 앓았다. 그 질환은 그에게 소설을 쓰게 했고, 신춘문예(조선일보 2005년)로 등단도 했다. 등단 이후 오랫동안 소설을 쓰지 못하다가 외교부 산하 기관이 주관하는 재외동포문학상 존재를 알고부터 다시 소설에 매달려 3번에 걸친 우수상 끝에 지난해에는 대상까지 받았다. 그의 첫 소설집 '통영'(강)이 등단 16년 만에 출간됐다. 본격적인 작가 생활 2막을 연 셈이다.

▲ 디아스포라의 삶을 다룬 단편들을 모아 첫 소설집을 펴낸 소설가 반수연. 캐나다 벤쿠버에서 이민 생활을 하면서 등단 이후 공백기를 거쳐 재외동포문학상을 계기로 다시 소설을 써온 그는 "이민과 고향이 아니었으면 소설 같은 건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반수연은 이민을 오지 않았다면 소설 같은 것은 쓰지 않았을 테고, 통영이 자신의 고향이 아니었으면 소설 같은 건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책 뒤에 밝혔다. 고향이 싫었고, 철들고부터는 고향을 떠나는 것만이 꿈이었는데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니 매일매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고도 썼다. 고향이란, 고래로 많은 문호들이 애증으로 그려낸 공간이다. 떠나오면 그립고, 돌아가도 이방인인 그곳은 사람들 가슴을 오래 아리게 만드는 질긴 곳이다. 이번 소설집 서두에 배치한 등단작 '메모리얼 가든'의 박 노인은 끝내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다 갔다. 

 

아내가 갈비집인 줄 알고 가져온 '메모리얼 가든' 구인란은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싱그러운 자연을 벗 삼아 성실히 일할 분'을 찾고 있었다. 화자는 그 가든의 한국인 담당 '장례코디네이터 겸 묘지 세일즈맨'으로 취직해 박 노인을 만난다. 그는 아들이 명문대에서 학위를 받고 주식 중개인으로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잘나가고 있다고 자랑하면서 정작 묘지 계약은 번번이 생트집을 잡아 미룬다. 묫자리 살 돈이 없어 내내 간직해왔다는 아내의 유골함을 맡아 나중에 합장시켜준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계약이 성사됐는데, 박 노인이 죽고 난 뒤 유서에는 정작 다른 요구가 적혀 있었다. 반수연은 "그들의 삶이 달랐듯 죽음 또한 그러해서 돌아가는 길도 제각각이었다"면서 "그들의 침묵이 돌덩이처럼 어깨를 짓눌렀다"고 썼다. 

 

'통영'은 원심력과 구심력이 길항하는 고향에 대한 정서가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표제작이다. 이민을 간 '박현택'이 노모의 부고를 받고 귀국해 장례를 치르면서 그간의 사연을 풀어놓는 형식이다. 이국에서 노동을 하다 손가락 두 개가 잘려나간 그는 뭉툭한 손으로 차가운 어머니 뺨을 만지며 '다시는 뜨거워질 수 없는 어머니의 몸 위로' 눈물을 떨군다. 시장통에서 살던 어머니는 아들을 낳으면 호적에 올려주겠다는 말을 믿고 '현택'을 낳았지만, 본처가 아들을 낳자 약속을 외면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학교에서 수업 중인 현택을 불러낸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인사나 하라고 본처 집에 들여보냈다.

 

'아버지라니, 당치도 않소. 누구 씨앗인지도 모르는 잡놈을. 술이나 따르던 근본 없는 년 말을 어찌 믿으라꼬. 무신 떡고물이라도 얻어 묵을까 싶어 그 영악한 여편네가 지 새끼를 염탐 보낸 기지. 아이고 어림없다.'

 

본처 자식들에게 돌아갈 재산을 나누지 않기 위한 악다구니였겠지만, 현택의 어린 가슴에는 내내 비수로 꽂혔다. 어머니는 그 고향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붙어 살고 싶어 했고, 그는 어떡하든 벗어나고 싶었다. 어머니는 그곳에 살아서 사람들이 수군댈수록 아들의 뿌리가 증명될 것이라고 여겼다. 아들은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았다. '일이 안 풀릴 때는 고달파서 와서 드러눕고 싶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제일 먼저 자랑하고 싶어서 어깨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동굴 속에서 나를 키운 어머니가 있어서도, 한 번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아버지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을 목격하고 무수히 해석하고 기억하며, 망각을 허락하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나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또다른 단편 '국경의 숲'에서는 한때 고국에서는 국회 출입기자로 유능했던 아버지가 이민 온 뒤 하루종일 침대에서 한국 드라마만 보는 우울한 삶을 산다. 그의 딸 '레이첼'은 국경을 불법으로 건네주는 가이드인 '승우'를 만나 아이까지 생기지만, 승우는 어디든 자리 잡히면 연락하마는 기약 없는 말만 남긴 채 다급히 쫓겨간다.


"어릴 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엄마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셔서 공중변소를 같이 쓰는 서호시장 딱정집에서 살았죠. 학교 선생들도 거기 사는 애들은 장돌뱅이들이라고 무시했는데 성장해서도 고향의 업이라는 게 오래 따라다니더군요. 2남4녀 중 막내로 아버지 없이 자란 시장판 엄마의 딸이라는 업을 벗으려고 발버둥을 쳤죠. 운명이라는 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규정한 대로 내가 빨려들어가는 느낌 같은 건데,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삶을 리셋하고 싶었던 거지요."

 

반수연은 "나에게 이민이라는 건 다른 곳에 정착했다는 것보다 고향을 떠났다는 의미가 더 컸다"면서 "정작 떠나보니 이국에 산다는 것은 그리움이라는 형벌을 받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리움 때문에 글을 읽고 글을 썼는데, 한국에 오니 여기서도 이방인이 된 느낌이고 다시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이라는 고질병을 앓는 느낌"이라고 했다. 소설은 그에게 "다른 방을 가질 수 있어서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기도 했고 현실에 대한 위안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의 글쓰기에 대한 욕망과 좌절은 '나이프 박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명희는 하루 종일 노트북을 펼쳐놓고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다가, 먹을 사람도 없는 빵을 두 번 발효를 해서 구웠다. 어떤 날은 노트북 앞으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 몇 시간 동안 기름을 걷어내며 지나치게 정성을 들여 곰국을 끓이거나 뒤뜰에 나가 해가 기울 때까지 잡초를 뽑곤 했다. 그렇게 명희는 자신의 오랜 열망으로부터 도망을 다녔다. 햇볕도 없고 바람도 없이 처박혔던 낡은 욕망이 저절로 파릇파릇 살아 있을 리가 없지.'

 

글쓰기로부터 좌절한 명희는 치앙마이로 가서 방을 얻어 글을 써보려고 수년간 모았던 돈을 다 쏟아부어가며 덜컥 요리학교에 등록한다. 요리학교에서 손을 베이고 수모를 참아가며 힘들게 마지막 실습까지 마친 명희는 '나이프 박스'를 처분한 뒤 '왜 스스로 이곳으로 걸어 들어와 머리를 땅속에 처박고 이런 색다른 고립을 자처했는지' 생각하다가 '진짜 실패를 피하려고 의도적인 좌절을 선택한 것일지도, 어쩌면 그것을 안전한 실패라고 여긴 것인지도' 모른다는 자각에 이른다. 이민 온 죽은 화가의 유품을 정리하는 '사슴이 숲으로'도 글 대신 그림으로 바뀌었을 뿐, 창작을 통해 구원을 찾는 큰 틀은 유사하다. 죽은 화가가 목탄 박스에 남겨놓은 현금으로 화구를 사서 손을 놓고 있던 자신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화자에게 그의 심정이 투사돼 있음은 두말할 것 없다.

 

"실제로 요리학교에 등록해 호텔에서 실습하면서 얼마나 교묘하게 글쓰기 욕망을 피해 다니면서 살았는지 대면하게 된 거죠. 아이들도 다 컸고 이제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상황이 됐는데도 또 우회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큰 수술을 하면서 크게 아팠던 적이 있는데, 그때 가능하다면 죽을 때까지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오롯이 드러나더군요. 놀이기구를 무서워해서 저에게는 엄청난 결단이었는데, 번지점프를 감행한 뒤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 반수연은 "소설 쓰기는 다른 방을 가질 수 있어서 현실로부터 도피이기도 했고 위안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지난해 재외동포문학상 대상을 받은 '혜선의 집'은 이국에서 늙어가는 일의 쓸쓸함과 고단함을 드러낸다. 몸이 불편해진 혜선은 집에 들인 일하는 여자들과 남편의 웃음, 다정한 몸짓들에 질투와 의심을 보낸다. 여자들을 내보내는 일이 반복되자 자식들은 어머니의 신경증을 탓하고 원망하지만, 혜선은 끝내 억울한 마음이다. 반수연은 "늙는다는 것과 타국에 사는 상황이 결합돼 보통의 노년보다 훨씬 더 외롭게 사는 분들을 옆에서 많이 보았다"면서 "남들이 말하는 삶의 성공이라는 것이 성공이 아닌 경우가 너무 많다"고 말했다.

 

'자이브를 추는 밤'은 타국에서 태어나 그곳 문화에서 자란 아들이 영어만 할 줄 아는 베트남계 애인을 데려와 가족들과 어울리는 이야기를 축으로, 자녀 세대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면서도 그들을 껴안아야 하는 이중성과 쓸쓸함을 다루었다. 반수연은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다른 세상을 만나 부모 세대와 아슬아슬한 갈등을 빚는다"면서 "그렇지만 애들은 단지 우리와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나누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작가 인생을 여는 그는 "한국에 와도 한국인이 아니고 외국에 가면 너무나 한국인인 이상한 위치가 대부분 이민자의 삶"이라면서 "그들의 삶에는 이질적인 틈이 있는데 이 틈의 이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생전에 묫자리를 까다롭게 고른 '메모리얼 가든'의 박 노인은 정작 유서에는 죽어서도 떠다니고 싶다고 썼다. 우리는 모두 어디로 돌아가는가. 알 길 없는 그곳이지만, 생전에도 떠돌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는 곳은 움직일 수 없는 땅이 아니라, 흐르는 바다였네. 나와 내 아내의 유해를 태평양 바다에 뿌려주게. 흐르고 흘러 고향에도 가고 아들이 살고 있는 뉴욕에도 가고 싶다네. 내 묘지는 자네가 팔아서 양로원 친구들 술이나 한 잔 사주시게. 부탁하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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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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