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10명 중 7명 "ESG 부정적 기업 제품 안 산 적 있다"
30대 그룹 중 ESG 위원회 16곳…기업 3곳 중 1곳 부진
세계 3대 아웃도어 기업인 파타고니아는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에 "Don't buy this jacket(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란 광고로 대표적 친환경 기업으로 떠올랐다. 의류업체가 환경을 생각해 새 옷을 사지 말라고 한 일이 소비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것. 파타고니아는 또 매년 '지구세(Earth Tax)'라는 명목으로 매출의 1%를 자연 환경 보존과 복구에 사용하고 있으며 다양한 환경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기업' 이미지를 선점한 덕분에 파타고니아의 재킷은 수년 동안 월가에서 금융인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종사자를 상징하는 '교복'으로 인식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서도 가수 이효리를 비롯해 MZ세대가 사랑하는 '완소' 브랜드로 통한다.
여론 조사·컨설팅 기관 글로브스캔과 싱크탱크 서스테이너빌리티 2020년 조사에서 파타코니아는 지속 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기업으로 8년 연속 2위에 올랐다.
이 조사에서 10년 연속 1위에 오른 유닐레버는 얼마 전부터 새로운 식물성 대체육류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유닐레버는 화장품 폰즈(POND'S)를 포함해 비누 도브(DOVE), 홍차 립톤(Lipton) 등 수많은 히트 상품을 보유한 다국적 기업으로 파타고니아와 함께 대표적 ESG 경영 실천 기업으로 꼽힌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저탄소·녹색 경영으로 미래 지향적 착한 기업 이미지를 선점한 기업들은 '착한 소비'를 이끌어내고 있지만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지 않는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는 게 세계적 트렌드다.
글로벌 선진기업들은 이미 십여 년 전부터 환경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ESG 경영에 올인 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갈 길이 멀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뗐을 뿐이다.
소비자 뿐 아니다. 글로벌 투자자들도 ESG 경영 여부가 투자 결정에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2020년 초 "화석 연료로 25% 이상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서신을 주요 금융사들에게 보냈다. 블랙록 뿐 아니라 뱅가드, UBS, 피델리티 등 세계 주요 자산운용사들이 '기후변화 행동주의'를 표방하며 화석연료 사용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신건 EY한영 상무는 16일 UPI뉴스에 "ESG 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기업 생존의 문제"라며 "착한 기업 제품을 소비하려는 경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매출, 영업이익, 주식배당률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윤리·도덕성 등 비재무적 지표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민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ESG 경영과 기업 역할에 대한 국민 인식'을 조사한 결과, 기업의 ESG 활동이 제품 구매에 영향을 주는지를 묻는 질문에 전체의 63%는 '영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ESG에 부정적인 기업의 제품을 의도적으로 구매하지 않은 경험이 있는지'를 묻자 70.3%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SNS와 동영상 플랫폼 등의 발달로 기업의 ESG 관련 이슈가 쉽게 대중들에게 공유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탄소 중립' 맞물리며 기업 생존 문제로
ESG 경영은 '탄소 중립(Net zero)'이란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한 글로벌 공조 추세와 맞물리면서 기업 생존의 문제가 됐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탄소 중립 로드맵을 선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파리협정에 재가입하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탄소 중립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게 되면 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와 기업은 교역과 수출에 있어 적지 않은 제한을 받게 된다.
이른바 '탄소 국경세' 도입 논의다. 탄소 국경세는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한 상품을 규제가 강한 국가로 수출할 때 탄소 비용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가장 활발하게 탄소 국경세 도입을 준비하는 곳은 유럽연합(EU)이다. EU는 2018년 12월 '유럽 그린딜' 전략을 발표하고 늦어도 2023년부터는 탄소 국경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국제 환경단체(NGO) 그린피스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주력 수출업종에서 EU·미국·중국 등 중요 수출국에 교역을 위해 지출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 추가 금액이 2023년 6100억 원, 2030년에는 1조87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대한상의 설문을 보면 EU와 미국에서 추진 중인 탄소 국경세가 시행된다면 73.7%의 기업이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30대 그룹 중 ESG委 설치는 16곳 그쳐
내년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 공시의무가 자산 1조 원 이상 상장회사로 확대된다. 오는 2025년부터는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 작성·공시 의무까지 추가될 예정이다. 내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 2025년부터 환경정보 공시 등이 각각 적용된다.
우리 기업들도 ESG 경영 강화를 서두르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재계에선 국내 기업 3곳 중 1곳꼴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30대 그룹 가운데 이사회 내 'ESG 위원회'를 설치한 곳은 16개 그룹에 그친다.
낮은 ESG 경영 수준은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공격 대상이 된다. 세계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주주제안 표결에 참여한 한국 기업 수는 2019년 12개 사에서 지난해 27개 사로 두 배 넘게 급증했다.
2018년 엘리엇의 현대차 지배구조 개선안에 관한 반대, 2020년 한국전력공사의 베트남 등 해외 석탄발전소 투자 관련 서한 발송, 같은 해 LG화학의 인도 공장 가스누출 사건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등 블랙록이 우리 기업에 주주권을 행사한 대표적 사례다.
최만연 블랙록자산운용 대표는 "한국의 기업들은 기후와 관련된 리스크를 해결하고 탄소 중립 이행을 위해 글로벌 기준을 맞추려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올 들어 경영계 최고위급 거버넌스 'ESG 경영위원회'를 창설했다. 삼성·현대차·LG·SK 4대 그룹을 비롯해 18개 그룹에서 전체 계열사 966개에 이르는 사장단 대표로 구성했다.
전경련은 올해 하반기 미국 등에 ESG 사절단을 파견을 추진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모건스탠리 등을 방문하고, 투자자 간담회를 열어 한국 기업의 ESG 활동을 적극 알릴 계획이다.
KPI뉴스 / 박일경 기자 ek.par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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