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 수술 등 면제하는 외국과 딴판
성전환자 인격 보장토록 절차 개선해야
트랜스젠더에게 성별정정은 필수다. 자기삶을 되찾는 일이다. 성 정체성을 법적으로 인정받아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러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전쟁을 치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존엄성, 행복추구권, 인격권은 먼 얘기다. 일상적 삶도 상당 기간 파괴된다.
지방에서 자영업을 하는 A(39)는 법원에서 여자에서 남자로 성별정정을 '허가'받기까지 12년이 걸렸다. 세 번의 기각, 두 번의 신청 거부를 거쳐 올해 1월 한 지방법원에서 겨우 허가 통보를 받았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A는 자신의 인생을 가볍게 취급하는 듯한 법원에 의해 바닥 끝까지 추락했다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그냥 살아라. 신청서 가지고 가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 처음으로 성별정정을 신청했을 때 A씨는 아무 이유 없이 신청을 거부당했다. 오랜 시간 호르몬 치료를 받고 한국 법원에서 요구하는 신체적 수술 일부도 마친 상태였다. 요구조건을 구비해 갔음에도 A는 심문조차 받지 못했다. 6개 법원을 전전했지만 기각 또 기각이었다.
A는 2019년 서울서부지방법원 심문을 잊지 못한다. 판사의 질문은 칼날이 되어 A의 마음을, 인격을 난도질했다.
"여자친구는 당신 같은 사람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나?"
A는 그 자리에서 판사가 자신을 '쓰레기'로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간이 아닌 '비정상적인 어떠한 것'이 된 것 같았다.
인천가정법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A는 혈압약을 복용하기 때문에 외부 성기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수술을 할 수 없다. 건강상 심각한 위험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단을 담은 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했지만 판사는 A에게 성기 형성 수술과 관련된 질문을 거듭했다. "외부 성기를 형성하면 성관계를 할 수 있냐"는 모욕적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결과는 또 기각이었다.
A는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일상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주위에서 좋지 않은 소식도 자꾸 들려왔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지방에 있는 한 법원에 성별정정을 신청했다. 다행히 12년 만인 올해 1월 그는 법적으로 여성에서 남성이 됐다.
A만의 문제이겠나. 성별정정 과정을 거친 트랜스젠더 대다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수많은 상황을 경험한다. 취업 준비 중인 B(28)는 지난해 10월 여자에서 남자로 성별정정 허가를 받았다. B는 판사의 가치관에 따라 성별정정 허가 여부가 결정되는 현재의 시스템을 비판했다. 기약 없는 판결 기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B는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중학교 때는 머리가 짧았는데 왜 초등학교 때는 머리가 길었나?" "옷은 어떻게 입었나?" B는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느꼈던 성적 괴리감을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옷, 머리 길이 등 외적인 요소가 성별을 나누는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판사가 이해되지 않았다.
B는 인천가정법원에서 기각 결정을 받은 후 지난해 9월 다른 지역에 있는 법원에 성별정정 신청을 했다. 특별히 서류를 더 추가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는 같은 해 10월 21일이었던 심문 당일에 허가를 받았다. 첫 번째 성별정정 신청 당시 2019년 7월에 법원에 신청서를 접수한 후 약 1년 2개월이 걸려서 기각 결정을 받은 것과 비교해보면 기간 차가 크다. B는 판사 개인의 가치관, 역량, 사안을 다루는 자세 등에 따라 성별정정 기간과 결과가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B는 성별정정 기간 동안 취업 준비를 일체 하지 못했다. 하던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B는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면 트랜스젠더 등 소수자는 사람답게 살 권리를 영원히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라는 꿈을 포기한 그는 앞으로는 포기하는 삶보다 누리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성별정정을 마친 이들의 판결 결과는 신청 준비를 하는 트랜스젠더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미국 하버드대학 내 한 연구소에서 일하는 김은우(34) 씨는 성별정정 절차를 앞두고 있다.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생식능력 제거와 성기 형성 수술이다. 자신의 결정권을 최대한 지키는 선에서 준비를 하고 싶지만 기각 사례들을 접할 때면 매번 심란해진다고 말한다.
은우 씨는 지금부터 한국 법원에서 기각당했을 시의 플랜B를 생각하고 있다. 미국 영주권 취득 후 5년을 기다려 시민권까지 취득한 후에 미국 법원에서 성별정정을 신청하는 것이다. 현재 은우 씨가 거주하는 매사추세츠주 법원에서는 호르몬 치료 진단서 외에 자궁이나 고환을 적출하는 수술, 성기를 만드는 수술 등 어떠한 인위적 수술을 강요하지 않는다. 매사추세츠주 외에도 캘리포니아 등 많은 지역에서 신체를 훼손하는 수술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만 미국에서 절차를 밟으려면 시민권 취득까지 오랜 시간 맞지 않는 성 정체성으로 버텨야하는 문제가 있다. 그렇기에 그는 한국에서 성별정정 허가를 받는 것이 더 절실하다.
은우 씨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성별정정 절차를 앞두고 있다. 가족과의 다툼도 있었고 주위로부터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이제까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단 하루라도 남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성별정정'이란 "나 자신으로 살아도 국가에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있다는 보증"이라고 설명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박한희 변호사는 부모동의서 제출 요건이 2019년 말에 폐지됐고 2020년 예규 개정을 통해 여러 서류가 참고 서면으로 전환됐지만, 여전히 성별정정을 하려면 해당 서류들을 제출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로만 바뀐 것이지 실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을 바꾸는 성별정정을 신청하려면 대법원 예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 따라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주 요건에는 △19세 이상 △현재 혼인 여부 △미성년 자녀 유무 △성전환수술 여부 △생식능력 상실 여부 등이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정신과 전문 의사의 진단서 △성전환 시술 의사의 소견서 △생식능력 상실 진단서 △성장환경진술서와 인우보증서 등을 제출해야 했지만, 2020년 초 예규가 개정되면서 해당 서류들은 참고 서면으로 전환됐다. 필수 서류가 과하게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거세진 데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이다.
선진국의 성별정정 기준은 우리나라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8세 이상, 법정대리인의 동의서가 있는 미성년자, 성별 변경을 원한다는 진술과 변경하고자 하는 이름만 있으면 성별정정이 가능하다. EU 회원국 대부분도 성전환수술 없이 성별정정이 가능하다. 1972년에 성별정정을 최초로 허가한 스웨덴은 2018년, 이전에 신체 수술을 강요당한 이들에게 국가 차원에서 배상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박한희 변호사는 트랜스젠더들이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법 앞에 마땅한 '권리'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여전히 '이등 시민'인 트랜스젠더들이 더는 모욕을 받지 않도록 반인권적인 성별정정 요건이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KPI뉴스 / 장은현 인턴기자 e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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