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효성, GS 현장조사…내년 규제대상 더욱 확대 한시적으로 운영돼 온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이 정규조직으로 승격하자, 기업들은 다음 제재 대상이 어디가 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현 정부 재벌개혁의 전초기지로서 '재계 저승사자'로 불려온 곳이다. 차기 대선까지 1년도 채 안 남은 까닭에 다음 타깃은 정권 말 군기 잡기의 마지막 제물이 될 수도 있다. 기업들이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는 이유다.
임기 말까지 재벌개혁 속도 내나
공정위는 지난 11일 행정안전부 승인으로 기업집단국이 정규조직화됐다고 밝혔다. 기업집단국은 2017년 9월 21일 임시조직으로 출범한 후 대기업 총수의 사익 편취 및 회사의 일감 몰아주기 등 지주회사 관련 규정 위반을 캐내는 역할에 주력해 왔다.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의 산물로서 현 정부의 '재벌개혁' 과제를 도맡았다는 분석이 크다.
실제로 기업집단국의 존재감은 상당했다. 기업들 사이에서 '첫 타깃 만은 피하자'는 분위기가 한창이던 2018년 효성그룹의 오너 일가 부당지원을 들어 조현준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것으로 닻을 올렸다. 이어 2019년 대림·태광, 지난해 미래에셋·금호아시아나·한화·SPC 등 여러 재벌의 불공정 행위를 적발해 관련자 검찰 고발 및 수억여 원 과징금 등을 처분했다.
현재 기업들 사이에서는 '임기 내 마지막 타깃은 피하자'는 기색이 역력하다. 통상 정권 말기에는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 등으로 재계에 대한 압박도 느슨해지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는 재벌개혁을 정체성으로 삼은 만큼, 이전과 다를 수 있다는 시각이 따른다. 임기 끝 무렵까지 재벌개혁 과업을 달성하고자 기업의 고삐를 더욱 죌 수 있다는 뜻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권 말에는 사정 기관에 대한 장악력도 낮아지고, 재계 및 기업들도 차츰 제 목소리를 내는 때이지만 이번엔 어쩐지 불안하다"며 "재벌개혁 구호를 외치고 탄생한 정부고, 현재 지지율도 저조한 탓에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라도 기업을 옥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지난번 보궐선거 때도 여당 후보들은 재벌개혁을 주장했다"고 부연했다.
삼성 겨눈 칼날…다음 차례는 '하림' 가능성
정규조직이 된 기업집단국은 벌써 칼을 뽑았다. 대상은 삼성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삼성이 급식회사 삼성웰스토리를 부당 지원한 정황을 최근 포착했다. 이에 정현호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장(사장)을 비롯해 삼성의 전·현직 임원 4명을 검찰 고발할 방침을 세웠다고 알려졌다. 정 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기업집단국은 지난 2018년부터 삼성의 웰스토리 부당지원 혐의를 조사해 왔다. 그 결과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삼성웰스토리를 부당지원했으며, 이는 정 사장을 포함한 4명이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를 꾸림으로써 이뤄졌다는 판단을 내렸다. 기업집단국은 삼성의 사업지원TF가 지난 2017년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뒤 신설된 조직으로 보고 있다.
남은 관심사는 해당 사안을 약 3년 간 조사해온 공정위가 실제 무관용 원칙을 내세울지다. 삼성은 지난 17일 공정위에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이는 공정위의 제재 없이 자진해서 문제를 시정하겠다는 의미다. 공정위가 이를 수용할지는 오는 26~27일 결정될 전망이다. 조성욱 공정위원장 등이 포함된 전원회의가 이날 열린다고 전해졌다.
다음 타깃은 하림그룹이 될 것이란 분석이 크다. 공정위와 하림은 약 3년째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기업집단국은 하림이 수년간 계열사를 통해 김홍국 회장의 장남이 이끄는 회사를 부당지원해왔다고 지난 2018년 판단했다. 당시 공정위는 전원회의를 열고 하림 제재를 시도했으나, 하림이 심사보고서 열람 등에 대한 행정소송에 나서면서 처분이 지연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지난 2012년부터 장남 준영 씨에게 동물용 약품 제조·판매사인 '올품' 지분 100%를 증여했다. 준영 씨가 납부한 증여세는 100억 원을 상회한다. 이중 상당액은 올품 주식 6만2500주를 유상 감자해 현금으로 마련했다. '본인 회사 주식을 팔아 증여세를 마련한 것으로, 사실상 회사가 대신 내준 셈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무엇보다 올품은 2012~2016년 매해 7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계열사 간 내부거래로 냈다. 이후 그룹의 지주사인 하림지주 지분 4.3%를 확보했다. 올품은 또 자회사인 한국인베스트먼트 지분을 100% 가졌고 이곳은 하림지주 지분을 20.25% 보유했다. 결과적으로 김준영→올품→한국인베스트먼트→하림지주의 지배구조가 완성돼 편법승계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공정위는 하림을 제재하지 못했다. 2018년 전원회의 때 김홍국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으나, 하림은 비공개된 심사보고서 열람 등을 요청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하림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공정위는 정보공개 대신 새 심사보고서를 만들어 하림에 전달했다. 하림은 다시 행정소송을 내 지난 1월 또 승소했다.
공정위 입장에서 하림에 대한 제재는 자존심을 건 싸움인 셈이다. 그런 만큼 어느 기업보다도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이다. 당초 공정위는 행정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올해 초 전원회의를 열고 하림에 대한 처분을 확정하려 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공정위 관계자는 "늦어도 올해 안에는 결론 낼 것"이라고 짧게 말했다.
지난해 과태료, 전년比 30배↑…지금도 현장조사로 '동분서주'
공정위의 레이더망에 걸린 기업들은 적지 않다. 공정위는 지난달에는 효성과 GS를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벌였다. 현재 효성에 대해서는 효성과 효성중공업이 계열사인 진흥기업을 부당지원했는지를 살피고 있다. GS와 관련해서는 그룹의 시스템통합(SI)업체인 'GS ITM'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업집단국은 지난해 1~11월 총 1407억14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전년도 2019년에는 45억3300만 원이었다. 비교 기간이 1개월 짧은데도 규모가 약 30배 높은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전체 금액도 커졌다. 전년 1507억8700만 원보다 1.35배 늘어난 3541억4500만 원이었다.
앞으로는 이 규모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내년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가 지분을 30% 이상 보유한 상장사·20% 이상 비상장사'였던 사익 편취 규제 대상을 '상장 여부 관계없이 20% 이상 계열사와 그 자회사'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기업집단국의 업무 범위가 더 넓어지는 것이다.
KPI뉴스 / 주현웅 기자 chesco12@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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