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인가, 노예인가"…이주노동자들의 '슬픈 노동절'

장은현 / 2021-04-30 15:14:05
부당강요에도 작업장 변경 못하는 이주노동자의 '답답한 현실'

2018년 한국에 온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A 씨는 2019년 1월 말부터 경기도 안성 OO 산업 주식회사에 근무했다. A 씨는 면허 없이 지게차를 조종했다. 지게차를 몰려면 건설기계 조종사면허를 취득해야 하는데 회사는 면허 없는 A 씨에게 지게차 조종을 강요했다. 무면허 지게차 운전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또 A 씨는 일을 그만둔 직장 동료의 일을 넘겨받아 대신했다. 익숙하지 않아 일의 속도가 더뎠던 A 씨에게 사업주는 "일을 못 하면 근로 계약을 해지해 몽골로 귀국시키겠다"라고 협박했다.

 

회사의 강요와 협박에 A 씨는 직장 변경을 원했지만 불가능했다. '고용허가제' 대상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의 사업장 변경 가능 이유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 씨는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등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3월 외국인고용법 제 25조 '사업장 변경의 허용',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변경 사유' 제 4조 등에 대한 위헌성을 심판하기 위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주인권 단체들은 이 조항이 헌법 제10조 인권의 존엄과 가치와 행복추구권, 제12조 제1항 및 제32조의 근로권, 제15조 직업선택의 자유, 제11조 평등권 등을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헌법소원 준비 중에 A 씨는 공장장에게 폭행당했다. 밥을 먹고 있는 A 씨에게 공장장은 물리적 폭행을 가했다. 조사를 받은 공장장은 "내가 때렸다. 때릴 수도 있지"라고 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A가 식판을 엎었기 때문에 나도 당했다"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A 씨에게 '쌍방폭행'으로 넘겨질 수 있다고 말했고 강제로 추방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A 씨는 고소를 취하했다.

 

폭행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에 고용노동부 직권으로 A 씨는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지만, 폭행에 대한 보상이나 사과는 받지 못했다. 공장장은 무혐의 처리됐다.

 

A 씨만의 일이 아니다. '코리안드림'의 나라에서 직장 변경의 자유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이주노동자 A'들은 무수하다.
 

5월 1일은 '메이데이'라고 불리는 '근로자의 날'이다. 국내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절을 일주일 앞둔 지난 25일 '사업장 변경 제한 폐지' 등을 외치며 서울 곳곳을 행진했다.


근로기준법은 5월 1일을 법정 휴일로 정하고 있어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임금을 받으며 쉴 수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당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한다. 그래서 이들은 해마다 5월 1일 이전 주의 일요일에 모여서 노동절을 기념하고 있다.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우삼열 소장은 "이주 노동자들은 최대 9년 8개월 동안 사업장을 바꿀 수 없다"면서 "우리는 이주노동자가 '노동자'인지 '노예'인지 묻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민주노총, 이주노조, 이주노동자평등연대 회원들이 지난 25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2021 세계 노동절 이주노동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주노동자 권리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고용허가제는 심각한 인력 부족을 겪고 있는 제조업이나 3D(Dirty·Difficult·Dangerous) 업종 부문의 사업체들에 대해 해외의 노동력을 공급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이다. 2004년 8월부터 시행됐다. 이 제도를 통해 국내에서 근무하길 원하는 노동자는 한국 정부로부터 고용허가서와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발급받아야 한다.

 

문제는 비전문취업비자를 받은 이주노동자는 마음대로 근무지를 옮길 수 없다는 점이다. 사업주의 '허가'를 받아야만 근무지를 옮길 수 있고, 옮길 수 있는 횟수도 원칙적으로 3회를 초과할 수 없다. 성폭력, 상습적 폭언 등을 당했을 시에는 사업장을 옮길 수 있게 돼 있지만 노동자가 직접 그 상황을 인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반대로 사업주 측에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근무지 이동이 가능하다. 사용자가 근로계약 해지를 원할 경우, 휴·폐업의 경우에 가능하다는 뜻이다.

 

고용주가 근로조건을 위반할 경우, 내국인과 달리 이주노동자는 체불임금 액수와 기간이 어느 정도 초과해야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월급의 30% 이상의 금액을 2개월 받지 못했을 경우 혹은 월급의 10% 이상의 금액을 4개월 이상 받지 못했을 경우 등이 그 조건이다. 임금체불 문제는 E-9 노동자가 겪는 대표적인 문제다.

 

만일 사용자의 허가 없이 근무지에서 나가게 되면 바로 '미등록' 신분이 된다. 불편한 일을 겪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노동자들이 참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내국인 노동자 일자리 잠식 우려, 사업장 변경 완전 자유 어려워"

정부는 지난 3월 '외국인근로자 근로조건 보호 사각지대 해소방안'을 발표했다.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는 이유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불법 숙소를 제공한 경우 △농한기와 금어기에 사업주가 권고 퇴사 시킨 경우 △사용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사업장에 중대 재해가 발생하거나 노동자가 3개월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신체적·정신적 부상이 발생한 경우가 포함됐다.

 

이주노조 관련 단체에서는 이와 같은 조치는 땜질 처방에 불과하고 해당 기준에 들지 않는 노동자가 많다고 반박한다.

 

정부는 '사업장 변경의 허용' 조항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에 들어와 상대적으로 더 좋은 사업장으로 몰리게 되면 내국인 노동자의 일자리가 잠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취업 기피 업종과 영세업체의 인력 대란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 교수는 "현 제도로는 노동자가 근무지를 변경할 상당한 이유가 있어도 허가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조항을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작업장 변경 사유를 대폭 확대하고 횟수도 최소 6회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공장장의 폭행을 당한 후 근무지를 바꾼 A 씨는 현재 경기도 소재의 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부당한 요구나 대우 없이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A 씨 등의 법률 대리인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박영아 변호사는 "사용자의 부당한 요구와 행위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가장 소극적인 행위가 '사직'이지만 이마저도 이주 노동자에겐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2009년 진행된 헌법소원 재판에서는 합헌 판결이 났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사업장 변경을 전면 금지하는 게 아니라 일정한 범위에서 가능케 하고 있기에 청구인들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부터 사업장 변경 제도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외국인력 담당관실 오지영 사무관은 "이주단체 측에서는 이민국가의 관점에서 인권 문제 등을 중심으로 제도에 대해 지적하고 있지만, 고용노동부에서는 국내의 인력 수급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KPI뉴스 / 장은현 인턴기자 e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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