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소장 미술작품 2만3000여 점 국립중앙박물관·미술관 등에 기증 12조 원대의 상속세 납부와 함께 기증이 결정된 '이건희 컬렉션'에는 국보급 문화재와 세계적인 미술품이 상당수 포함됐다. 미술계는 감정가만 2조~3조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가족들은 이 회장이 남긴 고미술품과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작가 근대미술 작품 등 총 1만1000여 건, 2만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한다고 28일 발표했다.
특히 국보와 보물을 포함해 총 2만1600여 점의 고미술품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간다. 이 회장은 선친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뒤를 이어 고미술품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수집 활동을 계속해 개인 자격으로 국보급 문화재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했다.
'인왕제색도' 등 국보 14건·고미술품 2만1600여점, 국립중앙박물관 기증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제1393호),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보물 46건)을 비롯해 국내에 유일한 문화재 또는 최고(最古) 유물과 고서, 고지도 등 개인 소장 고미술품 2만1600여 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인왕제색도는 겸재 정선이 비 온 뒤 인왕산에서 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으로, 산 아래에는 나무와 숲, 자욱한 안개를 표현하고 위쪽으로 바위를 가득 배치했다. 조선 영조 27년(1751)에 그려진 이 그림은 가로 138.2㎝, 세로 79.2㎝에 정선이 남긴 그림 400여 점 중 가장 큰 편에 속하고 그의 화법이 잘 나타난 조선 회화사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작품 가격은 300억~1000억 원으로 평가된다.
추성부도는 중국 송나라 문필가인 구양수(1007∼1072)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단원 김홍도(1745~1806?)가 그림으로 표현한 시의도(詩意圖)다. 가을밤에 책을 읽다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며 자연의 영속성과 인간 삶의 덧없음을 노래한 시로, 화면 왼쪽에 추성부 전문을 단아한 행서(行書)로 썼다. 끝에는 '을축년 동지후 삼일 단구가 그리다'(乙丑冬至後三日 丹邱寫)라고 써서 단원이 1805년 동지 사흘 후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천수관음보살도는 천개의 손과 손마다 눈이 달려 있는 보살의 모습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의 자비력을 상징화한 14세기 고려 불화다. 고려불화 중 현존 유일하게 알려진 천수관음보살도일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채색과 금니(金泥)의 조화, 격조 있고 세련된 표현 양식 등 종교성과 예술성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국내외 대표작가 근대작품 1600여 점,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한국 근대 미술 대표 작가들의 작품 및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작가들의 미술품과 드로잉 등 근대 미술품 1600여 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할 예정이다.
한국 근대 미술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들의 작품 중 일부는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 작가 연고지의 지방자치단체 미술관과 이중섭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 작가 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국민들이 국내에서도 서양 미술의 수작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및 샤갈, 피카소, 르누아르, 고갱, 피사로 등의 작품도 기증하기로 했다.
해외 유명 미술관과 비교해 소장품이 빈약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을 단숨에 세계적인 미술관급으로 격상시킬만한 작품들이다. 또 국내 작가들의 대표 작품이 빠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목록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게 됐다.
김환기(1913~1974)는 1971년 작 '우주'로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운 작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김환기 작품을 19점 소장하고 있지만, 작가의 예술적 기량이 절정에 달한 1970년대 전면점화는 한 점도 없다. 이중섭을 대표하는 '황소'도 소장하지 못했다.
서양 근대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는 피카소와 모네 그림이 단 한 점도 없다.
삼성 관계자는 "지정문화재 등이 이번과 같이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되는 것은 전례가 없어 국내 문화자산 보존은 물론 국민의 문화 향유권 제고 및 미술사 연구 등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마크 로스코, 알베르토 자코메티, 프랜시스 베이컨 등 기증 목록에서 제외된 주요 서양 현대미술 작품들은 삼성가와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관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KPI뉴스 / 박일경 기자 ek.par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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