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났네" vs "잘났네"…국민 불신 자초하는 '조롱정치'

허범구 기자 / 2021-04-21 15:27:49
김상희, 野 비꼰 발언으로 국회 멈추자 이틀만에 사과
주호영도 질세라 맞불…여야 지도부가 희화화 경쟁
정청래·조수진, 차기 법사위원장 놓고 조롱 배틀
진중권 "넋 놓으라" 빈정, 황교안 "그렇게 못해"

'비웃거나 깔보면서 놀림'.

조롱(嘲弄)의 사전적 의미다. 정치인은 메시지로 먹고 산다. 말이 곧 정치다.

조롱이 섞이면 정치는 희화화한다. 국민 불신을 자초한다. 부작용은 심각하다. 여야 대립과 충돌도 뒤따른다. '조롱정치' 당사자도, 상대방도 피해자다.

국회 멈춘 한마디 김상희 "신났네"…주호영 "잘났네"로 맞조롱

21일 오후 국회 대정부질문.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상희 국회부의장이 의장석에 올랐다. 김 부의장은 "의원님들께 유감스럽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밝혔다.

▲김상희 국회 부의장이 21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교육·사회·문화) 주재에 앞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사과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지난 19일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이 발언후 퇴장하며 당 소속 의원들에게 격려를 받자 "아주 신났네, 신났어"라고 한데 대한 사과였다.

이 한마디 탓에 전날 오후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이 파행했다. 국민의힘은 "중립적이어야 할 국회부의장이 조롱성 발언을 했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김 부의장은 사과를 거부한 채 전날 의장석에 올랐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거세게 항의하며 사과를 거듭 촉구했다. 그러나 김 부의장은 "하하, 참네"라는 탄성을 내뱄는 반응만 보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부의장 자격이 없다"며 집단퇴장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신났네, 신났어'가 아니라 '잘났네, 잘났습니다'"라고 꼬집었다. 제1야당 대표가 조롱으로 맞대응하면서 '도긴개긴'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여야 지도부가 '코미디 정치'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김 부의장 때문에 졸지에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소환되기도 했다. 

추 전 장관이 지난해 7월 국회 법사위에서 "소설 쓰시네"라고 말했다가 애를 먹은게 연상돼서다. 그는 두 달 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아들에 대한 상당히 불편한 질문을 하길래 '이건 좀 심하다는' 모욕감을 대변했던 독백이었다"며 고개를 숙인 바 있다.

법사위원장 후보 정청래 "하늘 무너지냐" vs 조수진 "국민의힘에 힘 될 것" 

국회 차기 법사위원장에 거론되는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친문(親文) 강경파'로 평가된다. 또 '거친 입'을 앞세운 대표적인 대야 공격수로 꼽힌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21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뉴시스]


정 의원은 지난 19일 자신의 SNS에 "내가 법사위원장이 되면 하늘이 무너지냐"며 요청이 오면 수락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그러자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은 "정 의원이 된다면 국민의힘에 힘이 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조 의원은 그러면서 정 의원의 '막말 전력'을 나열했다. "현직 대통령을 향해 빨리 죽으라는 뜻의 '명박박명(薄命)', 현직 대통령은 물러나라는 뜻의 '바뀐 애(박근혜)는 방 빼'라는 글을 썼다"는 것 등이다.

정 의원은 앞서 지난 18일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를 '형'으로 부르며 쓴소리를 한 국민의힘 소속 원희룡 제주지사를 향해 "형이라 부를 거면 축하나 덕담을 할 것이지 고작 한다는 말이 조롱에 가까운 비아냥"이라고 쏘아붙였다.

앞서 원 지사는 "형에 대한 우정을 담아 요청하려 한다. (김) 후보자가 한나라당 박차고 떠날 때의 그 기준이면, 지금은 '대깨문' 행태를 비판하고 민주당 박차고 떠날 때"라고 했다.

정 의원 관련 '사나운 이미지'는 자업자득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법사위원장 후보군에서 멀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온다.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일부 초선 의원들이 부정적 의견을 전달받고 정 의원을 법사위원장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중권 "넋 놓고 있는 게 애국"…황교안 "그럴 자신이 없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전날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전 대표의 정계 복귀를 겨냥해 "대한민국에서 그저 넋 놓고 있는 것만으로도 애국할 수 있는 사람이 그 말고 또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왜 그 특권을 굳이 마다하려고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통령권한 대행까지 지낸 원로 정치인에게 던진 말치곤 '빈정'의 수준이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고언 잘 봤다"면서도 "말씀 주신 대로 넋 놓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받아쳤다. "우리 도처에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이라도 드렸으면 하는 게 제 소망"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코로나19에 대한 대정부 질문을 앞두고 책임 있는 답변을 해야 할 총리가 "도주"했다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석 달 전 국회에 와서 정세균 총리는 '우리는 가장 빨리 코로나를 극복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된다'라며 백신 수급을 염려하는 의원을 호통쳤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대선을 준비한다며 후임자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라졌다"며 "그간 백신을 걱정하는 상대를 정쟁으로 밀어붙이던 총리는 도주시켰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말은 당신의 노예지만 입밖에 나오면 주인이 된다". 동서고금을 통해 말을 경계하는 주문은 많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문구를 남겼다. '말이 곧 그 사람'이라는 언표다.

"말이 부서진 곳에서는 어떤 사물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하이데거가 '언어로의 도상에서'라는 글에서 인용한 슈테판 게오르게의 시 '말'의 마지막 구절이다.

KPI뉴스 / 허범구 기자 hbk1004@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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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범구 /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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