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꽃과 별과 통정하는 지리산 시인의 소망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2021-01-29 10:30:12
지리산 입산 23년 정리한 이원규 산문집 '나는 지리산에 산다'
탁발순례 거쳐 야생화 사진 몰두하다 '별나무'를 찾아다닌 사연
비 내리는 산중, 어두운 능선에서 밤새 찾으려는 궁극의 실체는
"밤마다 아프게 콕콕 찌르는 신이 시요, 시가 가시였다! "

학이 노닌다는 섬진강 '소학정'에 올 첫 매화가 피었다고 지리산 시인 이원규가 페이스북 담벼락에 소식을 올렸다. 아직 한겨울인데 벌써 꽃망울을 내밀다니, 알고 보니 그 매화는 동지 무렵부터 피어나는, 일찍 피는 매화로 '지리산 선수'들에게는 소문난 나무였다. 이원규가 마침 지리산 입산 생활 23년을 정리하는 산문집 '나는 지리산에 산다'(휴먼앤북스)를 낸 터여서, 주말에 훌쩍 섬진강가로 내려갔다. 과연 소학정에 매화는 피었으되, 겨우 인사만 하는 형국이어서 큰 감흥은 얻지 못했는데 정작 사람 꽃이 우중충한 한겨울 함박웃음을 짓게 했다.

▲섬진강 매화마을 첫 홍매화 아래 선 '지리산 시인' 이원규. 그가 23년 전 지리산으로 떠나 시와 꽃과 별과 사람을 붙들고 살아온 세월을 산문집으로 펴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시인이 산문집에도 언급한 '할매화'가 그 꽃인데, 섬진강에서는 소학정과 그 아래 할매 집을 포함한 세 곳이 유독 일찍 매화를 피운다고 했다. 툭 트여 양명한 지형인데다, 지하에 따스한 수맥이라도 흐르는 것 같다고 시인은 추측했다. 소학정에서 시인의 집으로 가다가 불쑥 들른 집에 마침 할매는 계셨다. 할매와 함께 마당가 홍매화 아래서 사진을 찍으면서 물었다. 이 집 매화는 왜 유독 일찍 피느냐고. 할매,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내가 이쁘니께!"라고 답하시었다. 잠시 할매 머리 위에 얼굴을 내민 홍매화가 들썩거렸다. 홍매화가 웃은 건지, 카메라가 흔들린 건지는 모르되 그날 그 집 마당에 핀 또 하나의 홍매화는 분명 그 분이었다.

 

시인은 산문집에서 이 분을 '할매화'라고 명명했다. 유난히 일찍 피는 홍매화를 찍으러 들렀을 때 할머니는 "꽃만 찍지 말고 향기까지 찍어봐!"라고 할(喝), 죽비를 내리쳤다고 했다. 이원규가 도시살이를 하루아침에 접고 서울역에서 노숙하다 구례행 열차를 타고 내려와 지리산 사람이 된 지도 23년째다. 시를 쓰면서 사진을 찍어온 그는 '지리산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정도씩 살아보는 동안 나의 스승은 언제나 뒷집 할머니였다'고 산문집에 적었다.


"한글을 알거나 모르거나 아무 상관없이 툭툭 던지는 말씀들이 경전보다 더 소중했다. 오히려 어설픈 지식은 장애였고, 한글을 잘 모르는 삶의 지혜가 더 명징해 눈물겨웠다. …지구라는 인류의 마지막 어머니다운 생존자들이 아니신가. 이 우렁각시들의 말씀이 모두 시의 주름 선명한 얼굴이었으니, 창작은 고사하고 이 할머니들을 표절하는 일도 참으로 벅찬 날들이었다."


이번 산문집은 이원규 시인의 지리산 '입산' 생활 23년을 사진과 함께 종합 정리하는 성격을 지닌다. 야생화 사진에 5년 넘게 몰두하다가 이후 '별나무' 사진에 공력을 쏟아온 그의 사진 작품과 배경을 알차게 들여다볼 수 있다. 이원규는 야생화 사진에 몰입하기 전 10여 년 동안 생명평화탁발순례를 하며 한반도 남쪽 3만 리를 걸었다. 걷다가 쓰러졌다. 처음에는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무너졌는데, 결핵성 늑막염으로 판정돼 등에 구멍을 뚫고 흉수를 뽑아내는 고통 끝에 살아났다.

그는 야생화가 자신을 살렸다고 생각한다. 바이크를 끌고 지리산 곳곳은 물론 전국 지방도와 국도를 다 돌았지만, 발바닥을 땅에 대고 수만 리를 걸었지만, 정작 그 땅의 꽃 이름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시작한 야생화 사진에 몰입하면서 자연스레 병도 나았다. 그는 여느 야생화 사진들과는 차별되는 '몽유운무화(夢遊雲霧花)'를 지향했다. 물안개 속에 피어나는 꽃들을 찍기 위해 습한 곳에서 온몸이 젖은 채 살다시피 했다. 그는 '우비를 입고 카메라를 품고 있다가 지독한 산안개가 밀려오면 그 속에서 얼굴을 슬쩍슬쩍 내미는 야생화들을 마구 찍었'는데, 그것은 '숨막히는 통정, 오래 꿈꾸던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고 쓴다. 이후 이 조건과는 상반되는, 맑은 날이어야만 제대로 보이는 별 사진에 새롭게 꽂혔다.

▲물안개와 어우러진 '몽유운무화' 산구절초(위)와 앵초. [이원규 제공] 


"숲속에 홀로 누운 밤이면/ 나의 온몸은 나침반/ 그대 향해 파르르 떠는 바늘// 밤에 외눈의 그대 깜빡일 때마다/ 나의 몸은 팽그르르 돌아/ 정신이 없다// 극과 극의 사랑이여/ 단 하룻밤만이라도/ 두꺼비집을 내리고 싶다"('북극성')

 

별을 찍되 나무를 프레임 안에 넣는 별나무 사진을 지향했다. 낮에는 나무를 찾아다니고 밤에는 그곳에 가서 별을 기다렸다. 많은 곳들이 빛 공해로 인해 별을 볼 수 없는 환경인지라 제대로 별과 나무와 꽃을 담아내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별들은 어두워져야만 비로소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별들도 어둠에게 예의를 갖춘다고 생각한다. "촐싹대지 않고 자기만의 빛으로, 함부로 다른 빛을 밀어내지 않으며 너무 눈부시지도 않게 화답을 한다. 우리 모두 어두워질수록 더 환해지는 등대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밤마다 별빛 샤워를 하며 기가 막힌 정수리부터 발바닥 용천혈까지 별침을 맞았'으며 다시 '발로 쓰는 족필(足筆)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낮에는 별과 어울릴 나무를 찾아다니고 밤에는 별을 기다린다. '별 수양버들'(위)과 '별 감나무'. [이원규 제공]


"육칠 년 동안 안개와 구름 속의 야생화를 찾아다니다 삼년 넘게 별 사냥을 다니는 일이 내 생의 크나큰 사치이자 행복이 되었다. 안개와 구름 속에서 이끼가 자라도록 흠뻑 젖은 내 몸과 마음을 양명한 별빛에 말리고 있는 셈이다. 사냥은 사냥이되 일방적인 총질을 하지 않는 일이니 사냥이라 쓰고 사랑으로 읽어도 무방하리라."

 

시베리아 탐방 기행단을 이끌고 바이칼 알혼섬에 가서 그곳 밤하늘의 은하수도 담아냈다. 그는 "내 생애 받을 복을 미리 다 받는 느낌이었다"고 감격하며 "이제 우리나라 오지마을의 별빛을 찾아 헤매는 일만 남았다"고 쓴다.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밤에도 곳곳이 휘황한 "별이 잘 안 보이는 나라, 아예 별을 잊고 사는 나라, 보여도 잘 안 보는 나라에서 '여기 있소'하며 별을 찍어 보여주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한다. '온몸이 캄캄하게' 산속에서 별을 기다리다보면, 책상머리에서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을 아득한 옛 기억들이 별처럼 솟아났다. 청년 시절 탄광 후산부로 살았던 그 기억도 별을 기다리는 어둠 속에서 채굴했다. 

▲지상에서 춤추는 별 반딧불이(위)와 은하수 아래 부부소나무. [이원규 제공]


"저 멀리 빛난다고 다 별빛은 아니었네/ 점촌역전 골목의 지하 다방/ 그녀의 청보라 스웨터에 별들이 반짝거렸지/ 한번 불붙으면 펄펄 뛰는 팔각 성냥갑/ 달달하게 녹기 전에는 날 세운 각설탕// 오빠야, 내도 차 한 잔 마실게/ 옆자리 앉자마자 허벅지 쓰다듬으며/ 근데 얼굴이 캄캄한 오빠는 뭐 하는 사람?/ 나야 뭐, 지하 막장에서 벼, 별을 캐지/ 아, 죽어야만 2천만 원짜리 그 막장 꺼먹돼지!/ 그래 그래 별마담, 커피 두 잔 부탁해// 철없는 시인이 되었다가 폐광하고/ 경제학 원론을 불태우던 그 시절/ 지하 1층 별다방에서 별똥별을 보았지/ 밤마다 9톤의 별들에게 다이너마이트 터뜨리며/ 지하 700미터 막장에서 운석을 캐냈지/ 오후 네 시에 팔팔 항목으로 들어가/ 자정 무렵 시커먼 포대자루로 기어 나오면/ 코피처럼 폐석처럼 쏟아지던 별빛들// 세상도 나도 너무 밝아져 다 식어버렸네/ 지천명 넘어서야 밤의 지리산 형제봉/ 해발 1100미터 산마루에 홀로 누워/ 아득하고 아련한 별빛들을 소환하네/ 아주 가까이 빛나던 것들은 모두 별빛이었지"('별다방')

 

빨치산 패잔병으로 숨어 살던 아버지도 탄광 생활을 하다 숨지기 전 몰래 도둑처럼 집에 와서 어린 그에게 고무로 만든 말을 선물했다고 했다. 장난감에만 정신이 팔려 있던 아이는 그를 링컨을 닮은 수염 많은 아저씨로 기억했고, 아비 없는 자식을 키운다는 소리를 듣던 어머니가 후일 그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그의 아들이 다시 청년시절 탄광을 떠돌았다. 지하 깊은 막장에서 운석 같은 별들을 캐내던 그가 밤의 지리산 형제봉 산마루에 홀로 누워 아득하고 아련한 그 시절의 별빛들을 소환한다. 별빛에 깊이 중독되었다가 반딧불에 홀리기도 했다. 그는 '사람도 짐승도 지상의 별이겠지만 그래도 초여름과 늦여름의 가장 아름다운 살아 춤추는 지상의 별은 반딧불이'라고 쓴다.

▲지리산에 내려와 빈 집들을 전전하다 소장수가 살던 집을 구해 외양간은 사랑방으로 고쳤고, 창고는  '예술곳간 몽유'라는 갤러리로 꾸몄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이원규의 지리산살이는 그동안 사진집과 시집으로 알려지고 페이스북으로도 중계돼 왔지만, 이번 산문집은 지리산 '등산'이 아닌 '입산' 23년을 정서한 완성본이라 할 만하다. 이제 다시 어떤 여정을 걸어갈까. 그는 "일어나 걷는 자는 동사하지 않는다"는 말을 품고 산다고 했다. 탄광과 도시를 떠돌다 훌쩍 지리산으로 내려와 산짐승처럼 시와 꽃과 별을 붙들고 살아온 시인. 비 내리는 산중 야생화 곁이나, 어두운 능선에 올라 밤을 새우며 그가 '통정'하려는 궁극의 실체는 무엇일까.

 

 "내 생애 유일한 신(神)은 시(詩)였고, 시는 곧 가시 같은 것이었다. 밤마다 아프게 콕콕 찌르는 신이 시요, 시가 가시였다! 짐짓 모른 체 돌아누워도 옆구리를 콕콕 찌르고, 벌떡 일어나 풍찬노숙의 먼 길을 걸어도 티눈처럼 돋아나 발가락을 콕콕 찌른다. 바깥에서 나를 찌르는 이물질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 내 몸 속에서 아직 살이 되지 못한 뼛조각 같은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닌, 그러나 나는 아직 이 가시의 맨 얼굴을 본 적이 없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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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 문화부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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