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보금자리 애틀랜타 클락스턴에서 교육∙평화운동
연방상원 결선투표(1. 5)로 초미의 관심…"정치는 무서워"
미국 같은 다인종 이민사회를 설명하는 데 흔히 멜팅 팟(Melting Pot, 인종의 용광로)이란 용어를 썼다. 요즘은 여러 문화를 하나로 용해(멜팅)하지 않고 문화 다양성을 존중해 각각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성이 강해 '샐러드 볼(Salad Bowl, 다문화주의)'로 바꿔 부른다.
미국 동남부 조지아주의 주도인 애틀랜타 근교의 클락스턴(Clarkston)은 미국의 대표적인 '샐러드 볼 타운'이다. 지난 40년 동안 세계의 전쟁과 박해로부터 미국으로 피신한 재정착 난민 중 6만 명 이상이 애틀랜타 시내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인 이 작은 도시를 '첫 번째 아메리칸 홈'으로 거쳐갔다.
'재정착'은 임시로 유엔 관할 난민캠프에 머물다가 난민 인정을 받고 인도적 차원에서 이민 기회를 제공하는 나라에 정착하는 것을 말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난민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이 제3국에 재정착해 다시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지는 확률은 21 대 1(2017년 기준)이다.
클락스턴은 인구 1만 명 안팎의 작은 마을이지만 인구의 절반 이상은 2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온 재정착 난민이다. 그래서 여의도 1/3 크기의 작은 마을이지만 매일 60여 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는 '글로벌 타운'이다. 언론에서 클락스턴을 '미국에서 가장 다채로운 한구석'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클락스턴이 '난민의 도시'라는 것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난민들을 위한 정착 프로그램이 그만큼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Re'Generation Movement·이하 리젠)'라는 난민 청소년 교육 비영리단체(NPO)도 난민 정착을 지원하는 다양한 민간조직 중의 하나이다.
리젠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인데, 첫째는 '교육을 통한 청년의 자율권 부여(empowering youth through education)'이다. 갓 미국에 재정착한 난민 가정은 교육에 대한 열정은 있어도 미국의 시스템을 잘 모를 뿐더러 사교육은 더 부담하기 어렵다. 이에 리젠은 '출발선이 다른' 난민과 이민자 출신 고교생의 '미국 살이'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미국 대학 진학시험(ACT/SAT) 과외와 대학입시 멘토링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입시교육만 하는 게 아니고 리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 교육인 '글로컬 리더십 아카데미'를 병행한다. 세계시민성, 인권, 평화, 다양성 등 보편적 가치들에 대해 토론하며, 디아스포라 청소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세계 시민적인 관점에서 크게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이는 리젠의 두 번째 활동인 '대화의 공간 마련(creating space for conversation)'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이 활동을 통해 리젠의 가치와 관련된 여러 의견들이 공유되고 나눠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리젠은 이 활동 아래 여러 강연, 세미나, 스터디그룹, 미술전시회 등을 개최해왔다.
세 번째는 '평화 활동(advocacy for peace)'이다. 리젠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에 리젠은 조지아주 차원에서 난민∙이민자 보호 법안들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난민지원단체연합(Coalition for Refugee Service Agency, CRSA)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또한 이민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유권자운동과 'Georgia Korea Peace Campaign(GAKPC)'을 조직하고 상원∙하원 의원 사무실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에 관한 결의안과 법안들이 통과될 수 있도록 설득하는 한반도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누구나 '리젠이 미국의 한인 사회나 한국계 미국인과 관련이 있는 기관'임을 눈치챌 것이다. 그렇다. 리젠의 공동 설립자이자 공동대표는 한국계 미국인 김종대∙최자현 부부다.
김 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장남이기도 하다.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이 딸만 셋이어서 사실상 장손인 김 씨는 할아버지(김대중)와 할머니(이희호)가 돌아가셨을 때 영정사진을 품에 안은 손주로 각인돼 있다.
김 씨는 80년 전두환 신군부가 기획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사형수였던 할아버지가 미국으로 망명할 때 함께 온 아버지가 미국에 체류할 때인 1986년에 태어났다. 8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은 앞서 귀국했지만 김홍업은 인권연구소를 맡아 체류할 때다.
김 씨는 88년에 부모와 함께 귀국해 초등학교를 마치고 이모가 사는 캐나다로 보내졌다. 한창 민감한 중1 때 대통령을 할아버지로 둔 덕분에 과도한 관심과 역차별을 받는 등 학교 생활환경이 안좋아졌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이후 미국 코네티컷과 뉴저지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애틀랜타의 명문 에모리대(Emory University) 사회학과에 진학해 졸업후 같은 대학의 교직원으로 근무하며 MBA를 마쳤다.
김홍업 이사장에 따르면, 미국 태생으로 아들처럼 디아스포라의 동질감을 가진 며느리는 서울대와 뉴욕대(NYU)를 졸업한 재원이다. 아들이 에모리대 교직원일 때 뉴욕에서 만나 결혼했고 결혼후 둘 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클락스턴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2017년에 리젠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다문화∙평화 운동가로서 NPO 활동을 시작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국제적 정치 지도자였던 김대중의 손자가 미국의 대표적 '난민 도시'에서 다문화∙평화 활동을 한다는 소식은 애틀랜타 현지 한인신문과 국내 기독교 매체 등을 통해 알려져 이제 이 부부의 활동상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관심사가 되었다.
특히 '공화 50석 대 민주 48석'인 미국 연방상원은 공교롭게도 1월 5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연방상원 의원(2석) 결선투표 결과에 따라 조 바이든 대통령당선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형국이 되었다. 마이너리티인 애틀랜타 한인 사회가 양당의 전현직 상∙하원 의원들이 나서 지원 유세를 할 만큼 미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물게 초미의 관심사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김종대 대표를 인터뷰해 그가 미국에서 다문화 활동에 뛰어든 배경과 할아버지(김대중)에 대한 생각, 연방상원 결선투표를 앞둔 한인 사회 동향 등을 알아보았다.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메신저와 카카오톡으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아 재구성했다.
—애틀랜타에 정착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
"조지아에 처음 온 것은 2005년 에모리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학교 다니고 졸업해 취직을 하며 자연스레 애틀랜타에 살게 되었고, 결혼 후 살던 곳에 계속 살면서 클락스턴을 오가고 있다. 서울로 따지면 은평구에 살며 중구를 오가는 정도다."
—클락스턴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클락스턴의 존재와 특색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에모리 대학의 한인기독학생회 활동을 하면서였다. 단체 간사로 봉사활동을 클락스턴으로 자주 가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그냥 난민 출신 이민자가 많이 거주하는 곳에 봉사를 오가는 정도의 의미였다. 그러다가 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미국 상황, 한반도에 대한 고민 등이 맞물리며 클락스턴의 의미가 크게 다가왔고,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원봉사자로 커뮤니티와 연을 맺게 되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그가 리젠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복합적'이다. 우선, 그가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정체성과 소명에 대해 고민하는 가운데 차별과 혐오가 한국과 미국이 함께 안고 있는 문제이자 전 세계가 이주의 세계화와 다원화를 겪으며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주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현재의 시대 정신이 있다면 저는 그것을 세계시민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리젠은 세계시민성을 난민과 이민자 출신 학생들, 또 나아가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인 미국 태생 학생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그는 남다른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 20대부터 탈북민에 대한 관심을 가졌는데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 정착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차별받지 않기 위해 북한식 억양을 없애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통일'은 70년 세월 동안 달라진 상대와 물리∙화학적 결합을 하는 것인데 먼저 온 3만여명의 탈북민조차 끌어안지 못하고서 어떻게 통일이 가능하랴 싶었다.
"통일이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을 때, 이미 환대의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는 클락스턴에 어쩌면 그 해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장 아내와 함께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가 결정적으로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Re'Generation Movement)'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한 아프리카 난민 가정과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내전을 피해 인근 차드공화국의 난민 캠프에서 약 7년간 살다가 미국에 재정착 기회가 주어져 미국 온지 3년쯤 된 가정이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7명의 자녀들이 있어 집을 찾아가면 늘 시끌벅적했다. 그는 자연스레 교육과 대학입시 쪽으로 상담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난민 학생들은 더 공부하고 대학에 가고 싶은 열정과 의지가 넘쳤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클락스턴 커뮤니티를 알아가며 열악한 공립학교 환경 속에서 비슷한 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클락스턴은 이러한 가능성으로 넘쳐나는 곳이지만, 그에 맞는 리소스(resource; 자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또한 클락스턴에 많은 비영리단체와 선교단체들이 있지만 고교생의 대학 진학을 위한 리소스를 제공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을 모아 저부터 다시 SAT를 공부하며 가르친 것이 시작이었다."
—Re'generation movement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regeneration'은 '회복'이라는 뜻도 있는데, 중간에 세대를 뜻하는 'generation'도 들어가 있어서,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갖고 사는 청소년과 청년세대를 통해 회복되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Re'Generation Movement는 '평화를 만들어가는 글로벌 디아스포라 양성(empowering peacemaking global diaspora)'이란 미션을 가지고 활동하며,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청소년의 가능성에 투자하는 단체다. 특히 미국의 난민∙이민자라는 정체성을 품고 살아가는 청소년∙청년들에게 '다원화'라는 요소가 분열이 아닌 평화의 씨앗, 차별이 아닌 통합의 씨앗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리더십과 가능성에 투자하는 단체이다."
—부인과 공동대표이던데 어떤 점에서 의기투합했는지?
"아내와 클락스턴에서 함께 봉사를 하며, 함께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학생들을 보며, 결국 같은 필요를 함께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부담감과 소명의식도 함께 오게 되었고. 그래서 함께 뜻을 모으게 되었다."
—리젠의 운영은 어떻게 하는가?
"비영리단체로 등록해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반적인 운영은 저와 아내가 관리를 하면서, 작년부터 직원들을 고용하게 되었다. 에모리 대학과 파트너십을 맺어 자원봉사자들 대부분은 학부 학생들인데, 헌신적으로 학생들의 멘토와 과외선생이 돼 주고 있다. 몇몇 단체에서 조금씩 지원을 받지만 거의 대부분 후원으로 운영하고 직원 월급을 주고 있다. 인터넷에 공개하는 연간 보고서(http://bit.ly/regen-ar2020)를 참조하면 자세한 운영 내역을 볼 수 있다."
—김대표의 직업을 '난민 활동가'라고 부르면 되나?
"'직업'보다는 '활동'이 현재 저한테는 더 맞는 것 같다. 전에는 저를 '에모리 대학 교직원'으로 소개했는데, 본격적으로 클락스턴과 연을 맺고 현재의 일을 하면서는 '직업'적으로는 정말 많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운영하는 '단체장'이면서, 난민사태를 잘 소개한 미국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번역가'이자, 대학입시시험을 가르치는 '과외교사'와 세계시민교육을 하는 '강사'이자, 학생들 입시 상담하는 컨설턴트이자, 한반도 평화 캠페인을 벌인 '풀뿌리 로비스트'가 되었다가, 생활을 위해 '프리랜서 통역가'도 하면서 짬짬이 우버(Uber) 운전도 하고 '택시기사'와 '배달부'도 하고 있고…
그래서 '직업'보다 '활동'이라는 표현이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난민 활동가'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부분적인 활동 영역이다. 난민 지원활동을 통해 결국 지향하는 것은 '평화'인 만큼, '평화 활동가' 또는 '화합 활동가'가 좀 더 저희 활동을 포괄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미국에서 난민을 지원하는 평화 활동가가 된 데는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야당 지도자일 때는 권력의 감시 때문에, 대통령일 때는 야당과 언론의 과도한 관심 때문에 가족들의 희생이 너무 컸다. 그가 갑자기 '조기 유학'을 가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원래 어릴 때부터 매주 일요일은 온 가족이 할아버지 댁에 모여 점심을 함께 했다. 가족과 떨어져 캐나다∙미국 생활 초기에는 향수병, 언어, 문화, 인종차별, 텃세 등으로 힘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인터넷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욕, 가족들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 등을 늘 접하며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아직도 정치인 가족들이 타깃이 되는 모습을 보면 개인적으로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는 에모리대 재학 중에 한국에 들어와 경기도 화성의 51사단에서 군 복무를 했다. 유학 가서는 2년이라는 시간을 국내에서 있어본 적이 없는데, 군복무 하며 국내 체류기간이 길어져 부모님은 물론 할아버지도 휴가 나올 때마다 뵐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그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항상 손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 분이었다. 그래서 휴가 나와 할아버지를 찾는 날이면 아예 메모지를 준비해서 갔다. 그런데 그가 전역하기 몇 달 전부터 급격히 건강이 안좋아져 그가 전역하고 1주일만에 돌아가셨다.
"(2009년) 8월에 돌아가시기 전에 5월 말쯤에 뵙고 그날 나눈 마지막 대화가 할아버지의 유언이 되었다. 마침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다음날이었는데, 할아버지의 살아온 이야기를 쭉 들려주셨다. 왜 할아버지가 정치 입문 결정을 하게 됐는지부터 시작해 어떤 마음으로 독재에 맞섰는지, 대통령으로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
그 무엇보다도 '우리 안의 악보다 선이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안의 선이 이기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신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다. 본인은 지금껏 원칙에 충실한 삶을 위해 노력해왔고 그러기에 숱한 고난을 겪기도 했지만, 만약 타협을 했다면 순탄했을지언정 양심에 어긋나는 삶이 되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진정 기쁜 삶이라고 말씀해주셨다."
—평화∙화합∙통일 활동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할아버지가 평생 과업으로 활동해온 분야여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물론이다. 지금 하는 일 또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발자취를 미약하게나마 따라가보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저희 활동의 미션이 '평화를 만들어가는 글로벌 디아스포라 양성'인만큼, 미국에서 한인 디아스포라로서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고 관련 법안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저희가 하는 풀뿌리 운동의 일부인데, 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미국에서 망명 중에 이미 하셨던 일이었다는 것을 활동하며 깨달았다.
할아버지는 해외 여러 나라에 '인권운동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한국 상황을 알려 해외로부터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고 동참하도록 해외 인사들과 교포사회의 참여를 이끌기도 하셨는데, 아버지도 미국 망명시절 인권문제연구소를 설립해 미국 사회에 한국의 인권 상황을 알리는 활동을 하셨다. 당시 김근태 고문사건을 〈뉴욕타임스〉에 제보해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되는 데 핵심역할을 하시기도 했다.
어찌 보면 지금 제 나이가 아버지가 미국에서 '난민'으로 계시며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실 때의 나이와 비슷해졌는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아버지가 묵묵히 가셨던 길을 비슷한 나이에 따라가게 된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아버지의 활동은 막후에서 하나도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러한 활동이 모여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처럼, 저도 여기에서의 미약한 몸부림이 아주 작게나마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대북전단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해 정보 유입을 통해 북한 인권 압박∙개선을 꾀하는 미국 의회 및 북한인권법과 갈등을 빚을 여지가 있어 보인다. 평화활동가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그동안 북한 인권(개선)에 실질적 도움은 하나도 안되면서 북한 정권만 자극하고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인근지역 주민들을 위협하는 대북전단 살포는 매우 잘못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법으로 제정해 금지하는 것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대북전단 살포는 이미 사회적 공감과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인데 법으로 금지해 괜히 긁어 부스럼이 되는 것 같다.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원칙 중 하나는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하며, 꼭 국가가 우선순위를 두고 지켜야 하는 국민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전제가 서로 다른 의견들을 존중하여 공존하며 대화와 타협을 가능케 하는 소중한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법적인 강제에 의해 표현과 선택을 억제하는 것은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대북관계에서도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는 악수(惡手)인 것 같다."
—지난해 미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거셌다. 리젠 인스타그램을 보니 김 대표도 한국에 왔을 때 서울에서 인종차별 항의 피켓팅을 했더라. 한국에 오면 연대하는 그룹이 있나?
"한국에 나올 때마다 공익법사무소 어필, 공감, 피난처, 난센 등 난민 활동가들과 귀한 인연을 갖게 된다. 그때도 마침 한국에서도 'Black Lives Matter(BLM)'에 동참해 행진한다고 해 제게는 너무 큰 감격이었다. 리젠이 하는 일이 미국 안의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일이다. 제 고향 한국에서 제2의 고향인 미국의 불의에 맞서는 행진을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한 말 중에 제가 자주 인용하고 붙드는 말이 '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어디서 발생하든 불의는 세상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이다. 이것이 현재 다원화와 이주의 시대를 사는 인류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세계 시민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할아버지가 사형 집행을 면할 수 있었던 것도 세계 시민들이 연대해 한국 군사정권에 김대중을 죽이지 말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요즘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보더라도 경기 시작 전 무릎 꿇고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의식을 한다. 이렇듯 BLM은 미국의 컨텍스트를 초월해 전세계의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는 것은 세계시민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조 바이든 당선인은 상원의원 시절부터 김대중과 교유했고, 자신의 자서전에서 "김대중은 친구가 아니라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썼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느낌은 남다를 것 같다.
"세계의 많은 리더들이 존경하는 할아버지를 두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오히려 한국에 할아버지의 면모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지, 미국에 살면서 할아버지가 세계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을 더 느끼게 된다. 특히 중국인들을 만날 때 제가 김대중의 손자라는 것을 알게 되면 너무 반가워하고 아무것도 아닌 데도 사진까지 찍자고 할 때 더 그렇게 느낀다."
—지난 11.3 대선에서는 누구를 지지했나?
"개인적인 질문이라 답변은 못 드려도 충분히 유추가 되지 않을까요(웃음). 참고로 저희 단체는 '501c3' 비영리기관으로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이나 선거운동은 금지되어 있다."
—공화∙민주 양당이 상원 장악을 위해 조지아주 결선투표(1. 5)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지의 선거 분위기나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조지아 주를 주목하니 주민으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코로나 상황임에도 열기는 정말 뜨겁다. 특히 매일 몇 통씩 걸려오는 투표 독려 전화와 문자, 우편물들이 어마어마해 공해로 느껴질 정도이다. 또 자원봉사자들은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장비를 장착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투표를 독려하고 있다."
—11.3 연방상원 선거에서 조지아주는 공화-민주 후보가 과반을 넘지 않는 가운데 1석씩 리드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방상원 결선투표 결과는 어떻게 전망하나?
"조지아 주가 워낙 공화당 주이지만, 개인적으로 재작년 주지사 선거 결과에 좀 많이 놀랐다. 주지사 선거의 총책임자 본인이 후보로 참여해 선거 공정성 논란도 있었고, 제도적으로 흑인 유권자들의 선거를 방해했다는 투표자 억압(voter suppression) 논란도 있었다.
민주당 후보는 매우 진보적인 흑인 여성 스테이시 에이브램스였다. 비록 공화당 후보가 당선은 되었지만 선거 방해 및 공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조지아에서 두 후보 간의 격차가 몇 만 표밖에 안되었다는 것이 2020년 대선에서 '혹시'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결국 조지아 유권자들은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를 선택했다. 개인적으로 정말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결선투표는 공화당 또한 사활을 걸고 있어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지만, 민주당 후보가 조지아 주 연방상원에 당선되는 시나리오 자체가 이전에는 희박한 가능성이었기에 이런 상황 자체가 민주당에는 고무적인 것 같다. 또 이번 대선에서 조지아에서의 민주당 승리에 아시아계 유권자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만큼, 이민자와 유색인종의 영향력 또한 선거를 통해 많이 신장되는 것 같아 긍정적이다."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 포스트〉는 결선투표를 앞두고 조지아 주에서 기록적인 투표율로 조 바이든에게 승리를 안겨준 아시안 유권자들이 연방상원 결선투표에서도 이변을 일으킬 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조지아의 아시안∙태평양계 인구는 23만8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4%에 불과하지만 접전 양상일 때는 결정적 승리 요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민주당계 비영리단체인 타켓스마트 조사에 따르면 11.3대선 투표에 참여한 아태계 유권자는 2016년에 비해 무려 91%나 급증했다. 또 출구조사에 따르면 아시안 유권자는 2 대 1로 트럼프보다는 바이든 후보를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지아주는 앞선 3번의 대선에선 공화당을 지지했지만, 이번에는 바이든이 신승했다. 애틀랜타 메가시티에 한인들이 근 10만명이나 산다는데 '스윙 스테이트'로서 조지아 애틀랜타의 한인 파워가 세질 것이라고 보는가?
"그렇다.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다. 미국에 살며 늘 한인 유권자의 정치 참여나 기여도에 아쉬웠는데, 갈수록 점점 늘어나는 것을 느낀다. 최근 공화당과 민주당이 한인 유권자들을 상대로 유세를 했는데, 공화당은 데이비드 퍼듀 상원의원과 11.3 선거에서 당선된 영 김과 미셸 박 스틸 당선자 등이 캘리포니아에서 지원차 날아와 한인회관에서 유세 행사를 가졌다. 민주당의 두 후보 또한 다른 주의 하원의원들과 함께 줌(Zoom, 화상회의 어플)으로 한인 대상 유세 행사를 가졌다. 저는 둘 다 참석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한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상원 선거유세는 조지아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앞서 2년 전 조지아에서 데이비드 김 후보가 민주당 연방하원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비록 최종적으로 민주당 후보가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한인 유권자들의 중요성에 대해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두 당이 한인 유권자들에게도 호소하고 신경을 쓴다는 사실, 이번에 한국계 하원의원이 4명이나 당선되었다는 사실 등이 매우 고무적이다."
—지난 11.3 선거에서 한국계 연방의원 4명이 당선되었다. 할아버지에 이어 부친도 정치를 하셨는데 혹시 3세로서 미국이나 한국에서 정치나 선출직에 나설 의향은 없는가?
"정치인의 가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중의 생각과는 달리 대부분 고통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대중 앞에 서는 직업이라고 해도, 사랑하는 아빠엄마가 언론과 댓글창에 입에 담지 못할 표현들로 오르내리는 것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다. 더구나 저는 아버지가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는 것을 봐야 했다.
또한 단지 정치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본인이 공격의 타깃이 될 수도 있다. 아버지는 김대중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지명수배가 되고 80일 동안 잔인하게 고문을 받았다. 심지어 밤마다 링겔 맞고 치료받으며 다음날 고문당하고 그랬다. 물론 충분히 검증된 자질을 갖추고 있고, 주어진 영향력을 소명의식을 갖고 봉사하고 섬기는 데 사용하겠다면 3세라는 사실이 굳이 걸림돌이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는 그럴 의향이 없다. 정치는 무서운 것 같다(웃음)."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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