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붙은 전세거래량…홍남기 부총리도 '세입자 경쟁' 처지
"기존⋅신규 임대매물 단기간에 안 나와…전세난 지속될 것" "토요일 15시까지 늦지 않게 와주세요. 집 본다는 사람이 많아서요."
강서구 염창동에 사는 A(33) 씨는 요즘 전셋집을 보러 다니고 있다. 지난 주말 둘러본 매물은 지은 지 20년가량 된 아파트였고, 전셋값은 4억 원대였다. 같은 집을 둘러본 사람은 총 5명. A 씨를 포함한 3팀이 이른바 '선발대'로 집을 보고 난 뒤, 나머지 2팀도 20~30분 간격으로 도착했다. A 씨는 "가격 대비 괜찮은 매물이긴 했지만, 새삼 전셋집이 귀해졌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1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에서 '전세 매물 품귀현상'이 지속되자 세입자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급기야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에 9개 팀이 줄을 서서 전세물건을 봤다는 경험담이 올라왔다.
작성자 B 씨는 "9팀이 줄 서서 들어갔다. 주차장 들어가는데 사람들이 줄지어 이동하더라"며 "집 앞에서 순서대로 들어갔다 나왔다"고 말했다. 이들 가운데 5명이 계약을 원해 경쟁률이 5대 1이었고, 결국 공인중개사가 가위바위보와 제비뽑기를 통해 계약자를 뽑은 것으로 전해졌다.
B 씨는 "심지어 조건은 현재 세입자 이사 시기가 정해지지 않아서 무조건 다 맞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요즘 전세 씨가 말랐다 해도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는데, 지금 이사 준비하시는 분들 힘들겠다. 정말 어마무시하다"라고 설명했다.
"매물은 없는데 수요 넘쳐…바로 가계약금 걸기도"
강서구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 매물이 많지 않은 상황인데, 이사철이 겹치며 수요가 늘어나다 보니 순서를 정하게 되는 경우가 꽤 있다"며 "특히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집을 구경하는 시간을 정해 놓는 세입자가 많아서, 인기 있는 매물의 경우 여러 팀이 몰린다"고 말했다.
아파트 전세난 여파는 빌라로 옮겨붙을 조짐이다. 양천구 목동에 혼자 사는 C 씨는 "작은 평형의 아파트를 알아보다가 가격이 너무 뛴 탓에 신축 빌라를 계약했다"며 "빌라도 2년 전보다 가격이 수천만 원 올랐다"고 말했다.
C 씨의 경우에도, 여러 세입자들과 함께 빌라 매물을 둘러봤다. 그는 "한 팀이 먼저 집에 들어가 둘러보고 나오면, 다른 팀은 현관문 밖에서 기다렸다가 교대로 들어오는 형식"이라며 "그 자리에서 바로 가계약금을 넣고 매물을 묶어두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세입자가 갑자기 계약갱신청구권을 내세우면서 다투는 경우도 있다. 집주인인 D 씨는 "세입자에게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 만료 시 나가달라고 했다"며 "세입자도 구두로 동의했는데, 세입자가 돌연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한다"고 호소했다. D 씨는 "이사비와 중개수수료를 주겠다고 했지만, 지원금을 어느 정도 달라는 눈치라 고민"이라고 말했다.
전셋값 상승세 여전…거래량은 감소세 '확연'
서울 전셋값 상승세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의 전세 가격은 67주, 수도권은 61주 연속 올랐다. 더구나 지난 8월 초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개정 임대차법이 시행되면서, 시장에 형성되는 호가도 덩달아 뛴 상황이다.
다만 전세 거래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를 보면, 14일 기준 이달 서울 전세거래 건수는 1265건으로 지난 7월 1만2092건에 비해 89.5%(1만827건) 감소했다. KB국민은행 부동산 조사에서도 서울 전세 수급지수는 지난주 192.0을 기록해 2013년 9월 기록한 역대 최고치(196.9)에 근접하고 있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이를 초과할수록 '공급 부족' 비중이 높다는 의미다.
정부도 최근 전세난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을 인정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열린 '제8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신규로 전세를 구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전세가격 상승요인 등에 대해 관계부처 간 면밀히 점검·논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의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밝힘에 따라 새 전셋집을 구해야 할 처지다. 홍 부총리가 사는 마포자이3차 아파트(전용 84㎡)의 전셋값은 8억 원~9억 원이다. 1년 반 전 전세 보증금인 6억3000만 원보다 2억 원 넘게 뛰었다. 정작 홍 부총리도 임대차법 개정에 따른 '세입자 경쟁'의 당사자가 된 셈이다.
뾰족한 수 없어…"품귀현상 갈수록 심화"
하지만 당분간은 전세난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 나오는 매물이 단기간에 늘어날 가능성이 낮고, 정부가 강조한 '청약 물량' 대기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임대시장에서의 관건은 신규 매물의 증감인데, 현재로서는 기존 주택들의 임대매물이 늘어나지 않고, 신규 주택의 임대매물도 단기에 늘어나기 어렵다"며 "품귀현상과 가격 상승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재계약에 나서는 세입자가 늘면서, 전세 품귀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3기 신도시 등 청약을 기다리는 수요가 더해지면 전세난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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