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증대 반대하면서 원인을 저수가제 돌려
"영리기관 아닌 병원의 공급자 마인드는 문제" 서울 피안성에 살고 싶다(?) 무슨 말일까. 우리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의사가 되면 다들 서울로 몰려들고, 돈 되고 편한 피부과·안과·성형외과만 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지방에는 치료의사가 부족해 병원은 물론 환자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생명과 직결되는 외·내과, 산부인과,소아과 등 소위 '바이탈과'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은 점점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지방에 공공의대를 설립하려던 것이 정부 방침이었지만 의사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닥쳐 일단 잠정 중단된 상황이다.
공공의대 설립법안을 낸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지역에 의사가 적어서 서울 대형병원으로 가고, 지역의사, 동네의사를 불신하여 서울 대형병원으로 가는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다. 의료의 서울 쏠림현상, 의료취약지 확대, 지역의료양극화 심화 문제가 바로 그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의사들의 지방기피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사들의 서울집중화는 2005년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시행되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성적 좋은 학생들의 의대 입학이 유행하면서 서울, 지방 가릴 것 없이 의대는 '성적 우수자'의 차지가 됐다.
당연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성적 우수 학생들의 지방의대 진학 러시가 이뤄졌다. 지방의대는 해당 지역 고교 졸업자를 30%(강원, 제주는 15%) 선발하도록 하는 권고사항이 있지만 대부분의 지방의대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 학생들로 채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지방의대에 서울 출신 학생들이 대거 입학하는 현 구조에서는 의대 졸업생의 서울 회귀를 막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 지방의대를 졸업한 예비의사들은 거의 대부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병원에서 인턴 자리를 구하기 때문에 지역 병원들은 인턴조차 구하기 힘든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 지방의대가 '의사 양성소'로 불리는 이유다.
2020년 인턴 모집 현황을 보면 예비의사들의 지방 기피가 얼마나 심각한지 바로 드러난다. 올해 1월 인턴 전기모집에서 수도권 대부분의 병원이 정원을 채웠지만 지방은 전남대병원, 경상대병원, 충북대병원 등 정원을 채우지 못한 곳이 많았다. 2월에 진행된 후기모집에서는 더 심각해 포항성모, 부산김원묵기념봉생, 울산동강 병원 등엔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으며 대부분의 지방 병원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 기피가 의사들의 수입 때문일까. 최근 자료에 따르면 종합병원 전문의의 연봉을 비교할 때 지방은 1억5000~2억7000만원 수준인데 반해 서울은 1억3000만원 선이다. 서울행이 '돈' 때문은 아니라는 얘기다. 서울 출신들이 지방의대를 졸업했다고 연고나 애정이 없는 지역에 머물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인구 10만명 당 의사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물론 서울(300.8명)이다. 인천(165.6명), 전남(163.9명), 경남(159.8명), 경기(155.7명), 충북(154.6명), 울산(149.4명), 충남(146.5명), 경북(135.2명), 세종(86.0명)과 비교하면 서울과의 현저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이처럼 의사들이 서울, 수도권으로 몰리다보니 '피안성'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 '지금 의사 숫자가 적은 게 아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의사 숫자를 늘리고 공공의대를 신설해 지역 및 전공 편중 현상을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대해 의사협회는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들이 말하는 본질은 현재의 건강보험 수가체제다. 저부담-저수가-저급여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현행 수가제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의료시스템의 개선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의료 수가를 높이지 않고서는 병원들은 중증·응급 환자를 받을수록 손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가 중증외상센터의 수지 문제로 병원 측과 마찰을 빚었던 것도 이런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중증외상환자들을 치료할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이니 재정이 열악한 지방병원의 경우 필요 인력을 줄이고 해당 과목도 폐지하는 곳이 늘어나고 환자들은 더욱 대도시 대형병원으로 쏠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건강보험의 '3저' 구조 때문에 의사들이 보험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종목 즉 '피안성'으로 몰리고, 대형병원들은 수지를 맞추기 위해 박리다매식으로 환자를 유치하고 '3분진료', 과잉진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의료계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료와 수가를 인상하고 급여항목도 늘리는 것이 왜곡된 의료시장을 바로잡는 길이지 단지 의사를 늘리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의료계의 입장에 대해 참여연대 윤홍식 사회복지위원장(인하대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윤 위원장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의료비 증가율을 매우 높다. 유럽 등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포괄수과제가 아닌 행위별수가제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괄수과제는 반대하면서 수가를 높이자는 것은 순전히 병원 공급자의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시각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병원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다. 수가를 올리면 국민 부담이 늘어난다. 의료보험은 국민이 내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 건강의 측면에서 포괄수가제 도입 등을 논의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KPI뉴스 / 이원영 기자 lw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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