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영아유기' 친모·동거남 살인죄 적용…왜?

주영민 / 2020-08-19 16:09:18
돌보지 않고 방치한 것에 비춰 사망 예측 가능 판단
인천 부평 7개월 아이 방치 사망도 살인죄 실형 판결
A 씨는 지난달 20일 오후 7시20분께 서울 관악구 자신의 빌라에서 무언가를 보고 까무러칠 뻔했다. 장롱 안 종이상자 속에서 영아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사를 가겠다던 세입자가 며칠째 연락이 닿지 않아 빌라를 찾은 터였다. 

생후 2개월로 추정된 영아를 방치하고 도망간 10대 엄마 정모 씨는 동거 남성 김모 씨와 함께 사건 발생 이틀 뒤인 지난달 22일 부산에서 체포됐다.

▲ 아동학대 이미지 [셔터스톡]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윤진용 부장검사)는 전날(18일) 정 씨와 김 씨를 살인 및 사체 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생후 2개월 된 영아를 돌보지 않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초 경찰은 이들에게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적용해 구속했으나, 조사 결과 영아 사망을 예측할 수 없었다고 보기 어려워 죄명을 살인으로 바꿨다.

수사당국은 정 씨 등의 행위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행법은 살인의 고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이 있지 않았더라도 본인의 행위가 타인의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나, 위험을 인지 또는 예상했다면 인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바로 '미필적 고의'다.

미필적 고의 가운데 '부작위에 의한 살인' 적용 여부가 관건이다.

부작위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즉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아 자녀가 숨졌다면 살인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지난해 6월 2일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 태어난 지 7개월 된 아기를 홀로 방치해 사망케 한 부모의 경우 경찰 수사단계에서는 아동유기방임 혐의가 적용됐지만,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죄명을 살인으로 변경해 구속 기소한 바 있다.

검찰이 이들 부부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추가 조사에서 부부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엄마 B(19) 씨가 딸을 혼자 방치하고 집에서 나간 뒤 3일쯤 지난 5월29일 '3일 지났으면 죽었겠네. 무서우니까 집에 가서 확인 좀 해줘'라고 남편 C(22) 씨에게 수차례 보낸 문자메시지가 살인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고 판단했다.

경찰 수사단계에서 적용하지 못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한다고 본 것이다.

법원도 이를 인정했다. 1심은 범행에는 살인의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남편 C 씨에게는 징역 20년을, 사건 당시 미성년인 아내 B 씨에게는 장기 15년~단기 징역 7년을 선고했다.

2심에선 검찰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바람에 남편 C 씨에게 징역 10년을, 아내 B 씨에게 징역 7년을 각각 선고했다. 다만, 형이 대폭 감형된 것에 대한 논란이 일자 해당 사건의 상고심 판단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넘겨졌다.

이에 생후 2개월 영아의 시신을 방치하고 도망간 정 씨와 김 씨 사건도 증거만 확보된다면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대가를 치를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형법에서는 '고의성'을 조금 넓게 해석하는 편이다. 보이는 의도가 없더라도, 행위자가 자기의 행위로 인해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한 상태라면 죄를 물을 수 있다.

즉, 생후 2개월 영아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사망을 이르게 했다는 것에 대한 인과관계를 명확히 제시할 수 있다면 살인죄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검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정황 증거 등을 찾아 입증할 수 있다면 정 씨 등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처벌받을 가능성도 크다"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될 텐데 이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모는 당연히 자식이 죽지 않도록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며 "특히 영아의 경우 부모의 보살핌이 더 필요한 게 사실이다. 영아가 사망하자 장롱에 유기하고 도망간 부분만 봐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영아가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주영민 기자 cy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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