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퍼콜린스에서 출간한 첫 시집, 뉴욕타임스 등 호평
일본 성노예 피해자 중심으로 다양한 차별과 폭력 고발
"성노예 폭력 같은 야만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계 여성 시인 에밀리 정민 윤(29)이 일본군 성노예를 고발하면서 여전히 여성들에게 이어지고 있는 인간이라는 종족의 폭력에 대해 말하는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한유주 옮김, 열림원)을 펴냈다. 이 시집('A Cruelty Special to Our Species')은 2018년 미국 명문 출판사 하퍼콜린스에서 출간된 이래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등을 통해 전 세계 여성의 아픔을 헤아린 깊이 있는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에밀리는 한국어 번역판 출간을 계기로 국내에 들어와 자가격리 중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났다.
'내 불운이란 터질 듯 들어찬 전차. 너무 약한 칵테일. 바에서 한 미국 남성이 하는 말: 미국이 없었다면 한국에서의 네 삶이 완전히 달라졌겠지. 의미: 고마워해라. 캐나다 여자 친구가 던지는 질문: 너희가 그냥 잘 지내면 안 돼? 너희: 일본과 한국. 의미: 넘어가라.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넘어가라, 넘어가라, 넘어가라, 기차에 탄 소녀들. 목적지: 위안소. 한 군인이 할 수 있는 일들: 다른 군인이 끝내기 전에 당신을 올라타기.'
이번 시집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일상의 불운'이라는 작품의 일부다. 에밀리는 일본군 성노예에 관한 책을 보다가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 여성들에게 성 착취는 너무 빈번해서 일상의 불운이었다"는, 끔찍한 상황에 대한 담담한 어투가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10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뉴욕 대학교에서 문예 창작 석사 학위를 받은 에밀리는 "석사 과정 동안 다른 여성 시인, 유색인종 시인들과 함께 훼손되고 잊혀진 이야기를 어떻게 공유하고 연대의식을 향상할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면서 "이 과정을 보내고 보니 어느새 시들이 이만큼 쌓였다"고 말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에 대한 시들이 주축을 이루게 된 것은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완곡한 표현인 '위안부'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미국에 많이 없다는 것을 알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쓰기 시작한 뒤, 멈출 수 없게 된 거죠. 이 시집을 본 미국인들이 역사를 알게 해주어 고맙다고 했고,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공통된 경험을 써줘서 고맙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이 시집은 4개의 장으로 나누어 35편을 수록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에서 시작해 여전히 현대 여성에게 지속되는 폭력에 대한 '고발'에 이어, '증언'에서는 7명의 성노예 피해자들(황금주 진경행 강덕경 김상희 김윤심 박경순 김순덕)의 이야기를 콜라주 기법으로 중계한다. '고백'에서는 이민자, 동양인, 여성으로서 에밀리 자신이 직접 겪은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사후'에서는 위로와 사랑에 대한 말하고자 한다.
'빼앗긴 나라에서 몸이란 무엇일까. 혹은 누구의 것일까. 전쟁 중에는 무엇이 옳을까. 전쟁 중에는 무엇이 떠날까. 전쟁은 한국을 떠나지 않았어. 나는 떠났지. 나는 웅크려. 나를 포기해, 나를 너희에게. 너희 중 누군가 내게 말했지, 한국식으로 더럽게 섹스해볼까. 너희 중 누구는 그리 말하지 않았지. 너희는 내게 미국을 대표하는가. 그 군인들은 그녀에게 미국을 대표했나. 전쟁이 두려웠겠나. 동맹군이 무서웠지. 그녀가 말했다.'(⌈일상의 불운⌋)
에밀리는 또다른 '일상의 불운' 연작에서는 마산에 사는 외할머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소재로 6·25전쟁을 호출한다. '미군들에 맞서지만, 그들은 돌담들을 뛰어넘는다. 내 할머니가 아닌 소녀를 향해. 그 소녀는 잡힌 자갈이다. 그녀의 언어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게 자갈이다. 소녀 한 줌. 땅이 자갈투성이다. 한국은 자갈이고 무덤이다.'
에밀리는 사회자(허희·문학평론가)가 간담회장에서 시집에서 한 편을 골라 낭송해줄 것을 요청하자 "외할머니 목소리를 한국어로 전달하고 싶었다"면서 특별히 이 시편을 화상 너머로 들려주었다. '일상의 불운'에는 한국인도 예외가 아니다.
'필리핀에서 지역 주민들보다 한국인들이 더 많이 살해되고 있다는 뉴스 보도가 나온다. (…) 한국인들은 선도적이다: 죄책감 없이 섹스하고 떠날 상대를 찾아다닌 관광객들, 기업인들, 학생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필리핀 여자들과 이 아이들은 나를 못 찾을 거야. 그들의 입 속에는 저열함뿐. 빈 책상 하나뿐. 다른 뉴스, 두 소년이 한국인 친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들이 말한다. 유전자 검사를 해보지 않을래요? 우리 모두와 함께 분노하고 '위안부' 여성에 관해 읽던 남자들과 같은 남자들인가? 책상에 성경을 올려두고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고 설교하던 남자들과 같은 남자들인가? 망할 필리핀 놈들이 한국인 목숨을 앗아간다. 크게 욕하던 남자들과 같은 남자들인가'
"이 책의 심장부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지만, '나'의 지리적, 문화적, 개인적, 그리고 언어적으로 특수한 맥락과 현대적 경험에 대한 시들을 포함하며, 넓게는 유해한 남성성, 군국주의, 제국주의, 전쟁, 인종차별, 언어에 의한 고통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 읽으면서 일본군 위안부뿐만 아니라 전쟁 폭력,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다 이어져 있다는 걸 상기하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폭력들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이어져 나타나고 항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미국 거주 한국계, 더 넓게는 동아시아계 이민자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차별과 '유해한 남성성'의 폭력에 대해서도 에밀리는 비켜가지 않는다. 아시아 여자를 존재만으로 이미 해충으로 여겨지는 '무당벌레'라 부르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이기적 행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무당벌레를 아시아 숙녀 딱정벌레라고도 한다는 거 아니; 우리처럼 이주한 거니; 무당벌레는 제 존재만으로 해충이라고 여겨지지;/ 나도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네 물건들은 물론이고; 네 옆에서/ 내 조그만 마음이 사십여 폭 날개처럼 떤다.'(⌈외국인⌋)'그는 식었다. 그녀가 벌려줬어야 했는데. 왜냐하면 네가 무슨 일을 벌려놨는지 봐, 하고 그가 말했으니까. 네가 뭘 했는지 보라고. 내 사정 몰라서 그래? 그는 우울했다. 그녀는 마음이 상했다. 그녀는 빨았지만 소용없었다.' (⌈일상의 불운⌋)
번역을 맡은 소설가 한유주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제니 홀저 전에서 에밀리와 인연을 맺었다. 참상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이들의 기억과 기록을 추적하며 치유를 도모하는 미국 개념미술가의 이 전시에는 한강, 김혜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호진아지즈가 함께 참여해 유린당한 여성들의 인권을 보여주었다. 에밀리는 이날 "이 시집은 분노와 슬픔을 질료로 삼아 키워나간 책인데 이후엔 결국 자신을 돌봐야 한다"면서 "나를 사랑하는 건 어떤 모양일까 탐색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아기 때 입양된 미국 남자와 결혼한 에밀리가 이번 시집에 수록한 '고래 시간'은 언어와 문화의 경계인을 바라보는 따스한 사랑의 시선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당신의 위탁 어머니가 당신을 쫓아 달려갔지만, 이미 당신은 아버지 품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녀가 당신의 이름을 흐느끼는wail 동안, 다음 날 당신은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을 것이고/ 세월이 흘러가겠지. 하지만 당신 열 살이 되면, 당신은 그 이야기를 쓸 거야/ 그리고 흐느끼다wail를 먼 거리의 김을 내뿜으며 숨을 쉬는 고래whale로 쓰겠지.'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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