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동가 무위당 장일순 다룬 첫 소설
"모든 생명체를 두루 참되게 사랑하는 법"
소년시절 꿈인 화가를 겸업, 전시회도 열어
추석을 하루 앞둔 날 김정옥이 원주역에서 딸 혼수 비용으로 마련한 돈뭉치를 소매치기 당했다. 경찰을 찾아갔지만 맥 빠지는 답변만 듣고 나온 여인은 '봉산동 장 선생'을 떠올리며 그 댁으로 향한다. 아무 권력도 없고 그저 사람 좋은 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인데도 그이를 찾아간 건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를 따르며 그만큼 광폭의 인간관계를 지닌 그이였기에,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장 선생은 그날 이후 매일 원주역에 나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여인이 돈을 잃어버린 사연을 곁들이면서 자질구레한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이만큼 이야기를 쉽고 재미나게 풀어내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숨어서 지켜보던 소매치기마저 감탄했다. 그렇다고 순순히 훔친 목돈을 내놓자니 모처럼 식솔들을 호강시킬 기회를 놓치기가 아쉬웠다. 돈을 토해내는 대신 그를 해치기로 소매치기 이동철은 결심한다. 사회운동을 하는 장 선생을 '빨갱이'로 규정하며 노리던 '안기부' 요원도 그를 따라다니며 도끼로 아킬레스건을 잘라버릴 계획을 세운다. 장 선생은 이 위기를 어찌 모면하고, 소매치기로부터 돈은 어떻게 회수했을까.
강원도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소설가 원재길(61)이 오래 품고 있던 소설을 상재했다. 생명운동을 이끌었던 무위당 장일순(1928~1994)의 '생각'을 풀어낸 장편 '장 선생, 1983년 9월 원주역'(단강)이 그것이다. 원주에 사는 여인 하나가 추석 전날 딸 혼수자금으로 마련한 돈을 소매치기 당했는데, 장 선생이 나서서 찾아주었다는 일화 하나를 붙들고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냈다. 이 소설은 거창하게 폼을 잡지 않는다. 시골 사람들 눈높이에서, 지극히 평범한 어휘와 위트를 동원해 우화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무거울 법한 이야기도 술술 읽히는데 그만큼 작가가 인물을 공들여 취재하고 내면화해서 서술하기 때문일 터이다.
'저기 저 하늘을 올려다봅시다. 햇빛이 없으면 아무도 살 수 없지요? 한울님은 날마다 이 땅에 햇빛을 내려 주세요. 그래서 풀도 볕을 쬐고, 사람도 쬐게 해주세요. 한울님이라는 말이 어려우면 해님이라고 해도 돼요. 해님은 풀한테는 햇빛을 덜 주시고, 사람한테는 더 주시고, 그러시나요?'
장 선생은 만물이 평등하다는 이야기를 햇빛을 소재로 쉽게 풀어낸다. 해가 사람이라고 더 많이 비춰주고 미물이라고 빛을 덜 보내주는 게 아니듯, 세상 모든 생명들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설파한다. '장 선생은 때로는 진지하게, 또 때로는 신바람을 내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손을 들어 물결치듯이 흔들 때는 덩실덩실 춤을 추는 듯했다. 중요한 대목을 말할 때는 오른손 검지로 허공을 쿡 찔렀다. 모든 몸짓이 이야기의 흐름과 박자가 아주 잘 맞았다. 넘실대고 출렁이다가 구비를 도는 강물처럼 이야기는 끝없이 흘러갔다.'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대통령이건 장관이건 국회의원이건, 회사 사장이건 직원이건 일당을 받고 일하는 심부름꾼이건, 농부건 구두닦이건 소매치기건 똑같아요. 햇빛과 바람과 공기를 고루 쐬고 맞고 마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서로 똑같다 이거예요. 누가 더 낫고 누가 뒤떨어지고, 그런 게 없단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한 켠에서 듣고 있던, 악랄한 고문을 일삼던 '안기부' 요원 강진만은 체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린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인간과 벌레와 개가 똑같이 귀하다고? 모두가 자유롭게 경쟁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다니! 게을러터지고 지지리 못난 이 사회의 기생충 같은 자들을 감싸다니! 북한 괴뢰들이 주장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잖아! 세상에 빨갱이도 저런 빨갱이는 처음 보았네!'
장일순은 '중립평화통일안'을 외치다가 5.16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3년 가까운 옥살이를 했다. 이후 그는 1970년대 가톨릭 원주 교구 지학순 주교와 함께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와 반민주를 비판하는 사회운동에도 참여했다. 이후 농민운동을 하다가 도시와 농촌 직거래와 자연요법 농사를 짓는 한살림운동을 시작했다. 장자와 같은 무위자연의 삶을 추구했고, 김지하 시인의 스승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장일순의 범상치 않은 족적과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동화나 평전 같은 저작물이 전무한 것도 특이하다. 이번에 원재길이 펴낸 이 소설이 장르를 막론하고 장일순을 소재로 한 첫 작품이다.
"선생을 소설로 쓰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 선생은 상식 수준의 이야기를 하신 것이거든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상식에 준해서 살다 간 이 분이 특별하게 보이는 시대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선생의 말은 단순하고 쉬운 것 같은데도 놀라운 이야기들이었어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는 비범한 사람은 한 명도 없고 모두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평범한 직장인 같은 안기부 요원도 있고, 온갖 테러와 고문을 일삼는 잔인무도한 사람도 있지만 장일순 선생이라면 이렇게 바라보았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모두 따뜻하게 그린 셈입니다. "
1986년 시 동인지 '세상읽기'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와 기형도 이상운 등과 절친하게 교유했던 원재길은 시와 소설을 쓰면서 서울에서 살다가 2001년 강원도 원주로 이주했다. 인터넷시대로 접어들어 시골에 살아도 글을 쓰고 출판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뿐 아니라, 서울살이를 계속하다가는 친구들과 술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가 정착한 곳은 우연히 길 가던 중학생 두 명을 태워다 준 산골 마을,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단강리였다. 이후 아내 이상희 시인과 디자인 작가로 성장한 딸 원새록과 더불어 이곳 마을 이름을 딴 가족출판사 '단강'을 설립하고, 벌써 여러권 책을 냈다.
원재길은 성실한 농부 작가이기도 하다. 전작 '궁예 이야기'를 쓸 때는 오전에는 밭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글을 쓰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갔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농사를 지으면 글을 쓰면서 쌓인 정신적 피로가 가시고, 오후에 글을 쓰면 오전에 불편했던 몸이 쉬게 된다"면서 "굉장히 조화로운 생활이었다"고 술회했다. 본디 2011년 장일순 선생 소설을 구상하고 쓰기 시작했으나 중도에 방향을 잃어 중단하고 '궁예'를 먼저 쓴 뒤 이번 소설을 지난해 말 탈고했다. 소설을 끝낸 뒤 지난해 12월 1일부터 소년시절부터 미루어두었던 그림 작업을 시작했다. 일찍이 중학생 때까지 늘 화가가 장래 희망이었으나, 비싼 그림 도구 장만이 어려워 포기하고 글쓰기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그 시절 그는 어린 마음에도 나이 60이 되면 다시 그림을 그리겠노라고 다짐했고, 그 계획을 정확히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올 4월까지 불과 5개월 동안 유화 50여 점을 그렸고, 서울에 올라와 전시회(7월10~17일)까지 열었다.
"따뜻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따스한 그림을 그리면 그리는 나도 즐겁고 보는 사람도 즐거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걸어놓고 보니까, 노란색과 녹색조가 많이 보이더라구요. 산 속에 살다보니 물에 대한 갈망이 많아 바다 그림도 많아졌는데 앞으로는 판타지들이 늘어날 것 같아요. 매년 이맘때 쯤 전시를 할 계획입니다. 이제 다시 시골로 내려가면 8월부터는 새 장편소설 집필에 몰두할 생각이구요."
딸 새록 씨가 기획한 서울 필동 전시장에서 만난 원재길은 부지런한 농부정신이 몸에 배인 듯했다. 소설을 탈고하자마자 소년 시절 이래 미뤄온 그림을 폭발적으로 그려낸 뒤 4월부터는 밭에서 부지런히 고구마 농사를 지었으며 이제 다시 장편 집필에 돌입하고, 예년에도 그랬듯이 9월 중순부터 달포 동안은 홀로 고구마를 캐는 작업도 병행할 예정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일을 하다보면 농사 짓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면서 "호미를 들고 온종일 엎드려 바닥을 기는 것도 수행"이라고 했다. 원재길이 소설로 만난 장 선생은 이렇게 설파했다.
'땅을 살리고 땅을 즐겁게 해주는 길이 곧 땅을 사랑하는 길이라는 겁니다. 그 땅에서 나는 좋은 농작물을 먹게 하는 길이 곧 사람을 사랑하는 길이에요. 우리 모두 내 가족만 생각하고, 주판알 퉁기고 계산기 두드리며 셈하는 데만 마음을 두지 말고요, 땅에서 사는 모든 식물과 모든 인간, 모든 생명체를 두루 참되게 사랑하는 일에 힘쓰며 살아야겠습니다.'
원주 봉산동 장 선생이 원주역에 나가기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돈이 돌아왔다. 장 선생은 그날 저녁 소매치기를 따로 만나 고기와 술을 사주며 "영업을 방해하게 됐으니 정말 미안하다"면서 "부디 나를 용서하시고 집에 잘 돌아가시라"고 사과했다. 세상은 쉼 없이 뒤숭숭하다. 숨을 타고 난 세상 모든 것들은 모두 살자고 아등바등하는 법인데, 사람들 행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이즈음은 편까지 갈라 죽기살기로 싸운다. 생명을 보듬고 존중하며 평화를 누리는 세상은 어디에서 찾을까.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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