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체'와 '아다지오'…피아니스트가 본 한국과 독일

UPI뉴스 / 2020-06-02 11:54:10
피아니스트 손정범의 '코로나 단상' 나는 8년 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한 피아노과 선배들 중 다수가 독일행을 선택했었다. 그래서 나도 "여태 해오던 것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어떻게 보면 깊은 고민 없이 독일로 향했다.

독일로 도착한 그 주 주일에 무작정 독일교회를 찾아가 보았다. 순수한 신앙심이 교회로 이끌었다기보다는, 누군가 내 정착을 도와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교회를 찾아갔던 것 같다.

교회 사람들을 제대로 볼 겨를도 없이 제일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다름이 아닌 그들이 부르는 찬송가였다. 한국에서 매주 듣던 익숙한 찬송가였지만 같은 찬송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템포가 정말 느렸다. 그 다음 찬송가도 그 다다음 찬송가도 한국에서 부르던 것보다는 느렸다. 찬송가 별로 각각의 빠르기는 존재했지만, 한국보다 전반적으로 느린 찬송가는 더 느렸고, 빠른 찬송가는 덜 빨랐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일요일에, 나는 유학 생활의 복선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느렸다. 흔한 학생 통장 하나 만드는 것도 오래 걸렸다. 은행에 가서 은행원과 약속을 잡으면, 며칠 뒤 약속 시간에 다시 은행을 가서 담당은행원을 만나야 통장을 만들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고 2주를 기다리면 은행 카드가 우편으로 날아왔다. 그래도 그 카드를 사용하려면 아직이었다. 그 뒤 1주일 정도를 기다려 비밀번호가 적힌 우편을 받은 다음에야 카드를 쓸 수 있었다. 세어보니 카드를 만들겠다고 마음먹고 한 달 뒤에나 카드를 쓸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갖가지 일 처리들도 은행처럼 때로는 찬송가처럼 한참이 걸렸다. 독일 생활 8년에 접어든 지금, 무엇인가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 나가는 날에는 "오늘 내로 해결되진 않을 거야"라고 별 기대 없이 문을 나선다.

▲ 피아니스트 손정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코로나 팬데믹으로 당장의 독일 연주들이 취소되고, 비교적 안전하고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한국으로 들어왔다. 2주 자가격리 하는 동안 빨라진 한국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은 상대적으로 유럽에서 방역에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지만, 코로나19 검사를 문의하는 것부터 실제로 검사를 받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점이 나를 포함한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인천 공항에 들어와서부터 검사를 받고 약 하루의 시간이 지나면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자가 격리하는 동안에는 배달 앱으로 빠르고 쉽게 식사를 주문할 수 있었고, 또 필요한 물품을 주문하면 내가 잠든 새벽에 문 앞까지 배달해 주었다. 독일에 있으면 한국을, 한국에 있으면 독일을 생각한다. 어디에 머무르든지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고 비교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나라가 더 살기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한국과 비교해 독일은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느린 독일이지만 그만큼 나도 느긋하게 일해도 된다는 것과, 빠르고 편리한 한국이지만 나의 부모님이 그 만큼 치열하게 일해왔고 나와 내 친구들은 그보다 더 정신없이 부딪혀야 할 수 있다는 것을.

손정범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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