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의 추상세계 '우연 그리고 필연'

장한별 기자 / 2020-05-12 17:07:28
작품마다 독립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추상언어

신항섭 미술평론가

예술작품은 그 무엇이든지 오로지 하나, 즉 독립적인 개체성을 추구한다. 그러기에 창작을 전제로 하는 예술의 특성상 동어반복은 허용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창작의 정신은 자기복제조차 금기시하는데 있다. 하지만 실제의 창작공간에서는 이를 피해 작업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개별적인 형식을 목표로 하는 경우 무의식중에라도 자기복제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개별적인 조형세계의 완성을 의미하는 독자적인 형식은 패턴화된 조형언어를 통해 성립되는 까닭이다. 그렇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작이란 작품 하나하나에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독립적인 가치를 부여하는데 있음은 분명하다.

김종수의 추상작품과 마주하면서 창작의 윤리성에 투철한 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개별적인 형식에 초연한 입장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작품들은 어느 하나 서로 닮은 데가 없을 만큼 제각각 달랐다. 수십 점의 작품이 서로 달라 정말 한 작가의 작품인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한 결과는 조형적인 패턴을 의식하지 않는 채 작업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바꾸어 말해 유사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기만의 형식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을 뜻한다.

▲ 김종수 우연 그리고 필연 116.8x72.7cm Acrylic on canvas 2020-01


그가 순수추상의 세계로 들어서기 이전까지의 과정을 소급해보면, 초기에는 풍경과 정물을 중심으로 하는 사실주의 및 인상파적인 작업을 했다. 이후에는 말을 비롯한 동물을 소재로 하는 반추상 또는 비구상을 거쳐 마침내 순수추상에 이르렀다. 이러한 작업의 변화는 추상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형의 기술 및 감각을 익혔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추상에 이른 것도 따지고 보면 돌연하거나 우연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음을 직감케 한다. 사실적인 형태묘사로부터 조형감각을 익히기 시작하여, 모더니즘과 표현주의 등 구상적인 표현양식을 통해 형태를 해체하거나 재해석하는 등 조형의 묘미를 터득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우연 그리고 필연'이라는 명제가 함축하고 있는 자신만의 조형적인 세계관을 정립하게 되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상과의 만남은 어쩌면 우연인지 모른다. 많고 많은 물상 가운데 그 자신의 조형공간에 들어서는 소재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로부터 자신만의 미의식 및 미적 감각으로 형태를 재해석하여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환하는 작업과정은 의도적이고 지향적이므로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이치 또는 인간사는 모두 정해진 섭리에 따라 돌아가게 되어 있다. 한 여름에 돌연 우박이 내린다든지 겨울에 소나기가 내리는 등 기상이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계절의 순환은 변함없이 이어진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들의 일생에도 크고 작은 사건이 개입되기는 하지만, 넓게 보면 결국 생로병사의 한 과정일 따름이다. 어떤 일이든지 우연으로 시작되는 듯싶으나 결과를 보면 응당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필연성에 이끌리고 만다. 그가 작업에 표현하고자 하는 조형적인 사상 및 철학은 이에 대한 이해로부터 발단한다.

작업의 추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사실주의로부터 추상세계로 이르는 과정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사실적인 묘사력을 통해 화가로서의 기본적인 역량을 갖추고 나면 나만의 표현, 나만의 조형언어에 대한 욕구가 생기게 된다. 이러는 과정에서 형태에 대한 재해석 및 주관적인 해석 또는 해체를 통한 재구성 등 일련의 현대미학을 수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언가 비전을 추구하는 작가라면 새로운 조형세계에 대한 욕구는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김종수 우연 그리고 필연 162.2x130.3cm Acrylic on canvas 2020-05


그 역시 사실주의를 떠나 반추상 또는 비구상 세계로 들어서면서 형식미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따라서 형태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을 도모하는 경향의 작품에서는 시각적인 이미지로서의 유사성이 나타난다. 가령 나무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작업과 말을 소재로 하는 비구상 작업에서는 조형적인 패턴이 존재했었다. 이들 두 가지 형식의 작업에서는 기법적인 통일성 및 구성적인 패턴을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작품마다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유사성이 있었다. 실제로 이들 형식미를 추구하는 작업에서는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 다시 말해 개별적인 형식미로서 인정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돌연 순수추상의 세계로 들어선다. 개별적인 형식에 대한 도전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는지 모른다. 뜨거운 추상적인 표현의 세계로 들어선 이후의 작업을 보면 이전과 다른 점이 확연히 눈에 띈다. 그것은 작품 하나하나가 개성적이라는 점이다. 즉, 이미지의 유사성이나 동일한 조형언어 또는 조형적인 패턴을 찾아볼 수 없다. 작품마다 완전한 개체로서의 조형적인 독립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추상표현주의가 등장한 이래 수많은 작가들이 내면세계, 즉 의식 및 무의식 세계 그리고 감정세계를 표현해왔다. 그러기에 이 시점에서 이전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추상적인 표현을 찾아내기란 난망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는 기존의 작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이미지를 추구해왔는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 시선을 돌렸다. 그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자신의 의식세계, 또는 무의식 세계 그리고 잠재적인 감각을 일깨우는데 집중했다. 오늘 그 자신만의 미적 감각이 담긴 추상세계를 펼치게 된 데는 바로 이러한 성찰이 선행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데는 그에 합당한 추상적인 언어가 요구된다. 기하학적인 차가운 추상은 구조적으로 조형적인 패턴에 대한 관심을 배제할 수 없다. 반면에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뜨거운 추상은 어디에도 걸리지 않은 절대자유를 구가할 수 있다.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탐색된 추상세계임에도 새로운 언어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있다. 그의 추상작업은 이러한 관점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 김종수 우연 그리고 필연 162.2x130.3cm Acrylic on canvas 2020-05


추상작업 초기에는 의도적인 표현을 일부 허용했었다. 작업을 진행하다가 추상적인 이미지 속에서 무언가 특정의 형상과 유사한 이미지가 나타나면 그 특정의 이미지를 좀 더 드러내는 식으로 마무리했다. 구체적인 형태는 드러나지 않을지언정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물상의 형태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가 감지되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추상이면서도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때로는 무언가 형태를 읽어내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이다.

그의 작업은 한두 번으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수차례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는 과정에서 복합적인 이미지와 중층의 화면구조가 형성된다. 붓질을 하거나 뿌리거나 흘러내리는 등의 작업을 수차례 반복함으로써 다층구조의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물감끼리 만나고 겹치며 침투하는 물리적인 작용이 일어나면서 우연적인 이미지가 생긴다. 이러한 작업이 덧쌓이면서 다층구조의 공간이 생성하는 것이다. 중층 또는 다층구조의 화면은 의식의 침잠과 사유의 적층이기도 하다. 작업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흥취 및 의식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물감의 물리적인 작용에 의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이미지가 중층 또는 적층구조의 공간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사유의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느 특정의 색채만을 사용하지 않는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미적흥취에 이끌리는 까닭에 색채선택에서도 마냥 자유롭다. 하지만 순색 사용은 가능한 절제한다. 한마디로 발색을 억제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원색적인 색채가 지어내는 현란한 이미지는 감정의 비등을 유도하기 쉽다. 반면에 중간색을 선호하는 것은 감정표출보다는 의식세계를 드러내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시각적인 유혹에서 벗어나 내면으로 침잠을 유도하는 색채이미지가 다름 아닌 중간색이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간섭받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이야말로 그가 추구하는 추상작업의 근간이다. 작품마다 고유의 색채이미지 및 표현적인 이미지로 치장한다. 이는 작업하는 순간의 의식 및 감정의 흐름에 따른다는 얘기다. 추상적인 표현에서는 형상을 찾아보는 재미가 없기에 다채로운 색채의 조합은 시각적인 즐거움으로 작용한다. 어쩌면 그의 작업이 짐짓 다채롭게 보이는 것도 색채선택이나 이미지 표현방식 자체에 대한 자기만의 데이터조차 거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조합되는 색채의 아름다운 조화가 만들어내는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따라가는 것이다. 추상적인 표현은 형식을 좇지 않는다면 무궁무진한 세계이다. 그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는 절대자유를 구가하면서 추상세계를 소요한다.

그는 오로지 창작열에 흠뻑 빠져드는 것을 이상으로 여긴다. 거기에서 진정한 창작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진정한 정신적인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 바꾸어 말해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을 위한 작업에 솔직하고자 한다. 비록 추상적인 언어일지언정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다. 맺힌데 없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추상적인 언어와 풍요로운 색채이미지는 탐미적인 시각을 유혹한다.

전시 작가 : 김종수 개인전
전시 제목 : 우연 그리고 필연
전시 기간 : 2020.5.7 - 5.27 (일·월요일 휴관)
전시 장소 : 갤러리초이 (마포구 토정로 17-7)
연락 전화 : 02) 323-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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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별 /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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