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중국 대륙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철도 배경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 온 노동운동과 굴곡진 현대사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황석영표 매직리얼리즘
일찍이 이십대 청년 시절 한국 현대 노동소설의 효시라 할 만한 '객지'를 쏘아올렸던 소설가 황석영(77). 그가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러 팔순을 앞둔 노년에 이르러 그동안 공언해왔던 만년 역작에 마침표를 찍었다. 베를린 뉴욕 평양을 주유하며 거칠 것 없는 리얼리스트의 삶을 살아온 그가 야심차게 준비해온 '철도원 3대 이야기'가 그것이다.
일제강점기 이래 3대에 걸친 철도원과 노동자의 삶을 형상화한 '마터2-10'은 지난해 4월부터 '채널예스'에 연재를 시작해 1년 남짓 달려온 장정 끝에 최근 마지막 종착역에 도착했다. 200자원고지 2400장 넘는 분량에 영등포와 인천을 무대로 철도노동자와 공장노동자의 삶을 핍진하게 담아내면서,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노동운동의 전개와 근현대사의 흐름을 녹여낸다.
'마터 2-10' 은 산악형 기관차의 제작 번호를 제목으로 삼은 장편 소설로, 황석영이 1989년 방북 당시 평양백화점 부지배인으로 근무하던 어느 노인이 3대에 걸쳐 철도원으로 근무했다는 말에서 영감을 얻어 구상을 시작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세계의 근대는 철도 개척의 역사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세계화의 시대에 나는 아직도 분단된 한반도에서 대륙을 확인하고 싶었다"며 "인간의 인생살이를 꿈처럼 그려볼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포부는 이제 막 연재를 마친 이 작품에 어느 정도 투영됐을까.
이백만은 철도 공작창에서 일했지만, 그의 아들 이일철은 일제강점기 철도 기관수로 부산에서 만주 신경까지 가는 직통 급행열차 히카리 호까지 몰았다. 그는 한반도는 물론 중국 대륙으로까지 기관차를 몰면서 서슬 퍼런 일경의 눈을 속여 가며 아우의 노동운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대를 이어 기관수로 살던 아들 이지산은 6.25전쟁 때 징발되어 북쪽 군수 물자를 운송하다 폭격을 맞아 다리 한쪽을 잃는다. 이지산의 아들 이종오는 현재 시점에서 해고노동자 신분으로 굴뚝에 올라 1년 넘게 고독한 고공농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종오가 굴뚝 위에서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아버지에 이르는 철도원 3대와 노동자 이야기를 현실 경계를 넘어서서 몽환적으로 이어가는 형식이다.
무엇보다도 이 소설에서 우선 눈에 띄는 점은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만주까지 이어지는 철도의 생동감이다. 조선과 대륙을 침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제가 조선의 노동력과 땅을 착취해 건설한 피땀의 결실이지만, 분단 이후 좁은 남쪽에만 갇혀 살아온 지금 독자들에게는 통일 이후 대륙까지 이어질 광대한 상상력을 미리 체험하게 만든다는 차원에서 가슴이 뛰는 배경이다. 이일철이 화물차를 몰던 무렵에 부산 신경 사이에 직통 급행열차 히카리 호가 등장했고, 부산 봉천 사이에는 노조미 호가 등장해 일본 동경 신경 사이의 소요시간을 12시간이나 단축했다. 부산 북경 사이를 28시간 45분에 주파하는 직통 급행열차도 운행됐다.
이진오의 증조할아버지 이백만이 철도 공작창에서 일을 했고 그의 아들인 이일철은 일제가 운영하는 기관수 양성학교에 들어가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화물차부터 시작해 만주행 특급 열차를 모는 기관수로 성장했다. 이일철의 아우 이철은 '주의자'가 되어 영등포와 인천 등지에서 노동운동가로 살아가는데, 밀정 최달영에게 잡혀 끝내 해방을 맞기 전 옥사하고 만다. 이철은 북에서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조직의 윗선을 데려오기 위해 형이 운전하는 부산발 만주 신경 행 특급열차 히카리 호를 이용한다. 기관차 운전석에 제복을 입고 형과 동승한 이철은 신의주에서 내려 요인을 모셔와 우편배달칸에 숨어들어, 경성 인근에 접어들 무렵 열차 속도가 느려질 때 철로 밖으로 몸을 던져 유유히 잠행에 성공하는 일화는 남북의 경계를 무람없이 넘나들던 시절의 철도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일철의 아들 지산도 어린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기관차를 자주 접하면서 아버지처럼 철도 기관수의 길을 걷는다. 지산은 평양에서 원산 가는 화물차의 조수로 시작해 기관수가 되는데,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북측의 군수물자를 낙동강 전선에 운반하는 역할로 징병된다. 폭격을 피해 짧은 구간을 조심조심 운행하던 기관차는 끝내 폭격을 맞고, 지산은 다리 한쪽을 잘라내는 부상을 입은 뒤 포로가 됐다가 어머니가 있는 남쪽에 남을 것을 청해 반공포로로 풀려난다. 지산이 낳은 아들이 현재 시점에서 1년 넘게 굴뚝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해고노동자 이진오다.
이 소설이 형식적으로 눈에 띄는 점은 황석영이 이전 작품에서도 선보였던 것처럼 죽은자와 산자 사이를 연결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한국적 매직리얼리즘이다. 고공의 굴뚝 위에서 이진오는 죽은자와 산자의 이름을 새겨 넣은 소변 페트병을 줄지어 세워놓고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굴뚝 밖 구름 속으로 걸어 들어가 과거를 넘나들며 죽은자들 옆에서 생생하게 그들의 말을 듣고 이야기를 펼쳐낸다.
단지 죽은자와 대화를 나누는 차원을 넘어서서 흥미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진오의 증조할머니, 이백만의 아내 주안댁은 많은 전설을 남겼다. 영등포에 큰 홍수가 졌을 때 식솔들을 이끌고 뗏목을 만들어 피난 가서 많은 이들을 구했던 일화는 물론, 집안에 큰 일이 생길 때마다 며느리 신금이 눈앞에 나타나 도움을 주기도 한다. 아들이 며느리 될 사람을 데리고 올 때도 나타나고, 결혼식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아들 곁에 선다. 둘째아들 이철이 감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준 이도 주안댁이다. 이 집안의 식솔이 될 사람들은 그 증표로 모두 주안댁을 본다. 기관수가 된 아들에게 나타나 화물차에서 투탄(投炭) 작업도 거든다. 신화적인 여성으로 묘사되는 주안댁을 비롯해, 사랑을 받지 못한 비련의 지적인 여성 캐릭터 한여옥과 활동가를 비롯한 여성들이 이 소설의 한 축을 지탱하는 인물들이다.
"영등포는 거리와 사람과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이 꿈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비누방울 속 같은 반투명의 흐릿한 세상을 만들어냈다. 무슨 엷은 막 같고 안개 같은 거대한 덮개가 허공에서부터 영등포 전체를 감쌌다. 서로 피 터지게 싸우다 맞아 죽고 비명에 간 사람들도 장례를 치르고 나면 매장되어 모습이 사라지거나 하지 않고 회색의 헛것이 되어 이 엷은 막 안에서 너울너울 흘러 다녔다. 집집마다 주안댁처럼 모습도 보이고 말도 통하는 유령들이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니 영등포는 오랜 잠 속에 빠져 있었거나 아니면 불면증에 걸려 있었을 것이다. 늘 자면서 몽유를 했든가 아니면 깨어있는 채로 의식이 흐리멍텅한 채로 나날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해방 공간 영등포를 묘사하는 한 대목이다. 쌀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는 며느리 신금이를 대신해 주안댁이 나타나 도움을 준다. 이 공간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망자들과 산자들이 한데 뒤엉켜 혼란스럽고 비극적인 시간과 공간을 지나와야 했던 과정이 레퀴엠처럼 흐른다.
일제강점기 공산주의 운동은 독립운동과 노동운동사에 숙명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들 운동 세력의 세밀한 활동 내역을 영등포와 인천 지역을 무대로 밀도 높게 전개해 일제 시기부터 이어진 노동자의 위상과 항쟁을 현재 시점까지 이어내는 점이야말로 이 소설의 큰 동력이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쟁의는 무조건 빨갱이 짓이라고 몰아붙이며 잔혹한 고문을 일삼던 일제 경찰의 행태는 해방공간을 거쳐 분단 이후에도 변함없이 들이대는 잣대로 굳어져 왔다.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나마 이런 이분법은 힘을 잃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작가는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진오는 국민학교 시절에 할머니 신금이에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그랬다 치고, 왜 우리 식구들은 힘센 쪽에 붙지 못하고 맨날 지는 쪽에만 편들었어요?" "왜 약한 쪽 편드는 게 싫으냐?" "물론이지요. 너무 손해잖아요?" 그러면 할머니는 감실감실 주름살 잡힌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말하던 것이었다.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 좀 느려서 답답하긴 하지만." 그리고 신금이는 덧붙였다. "오래 살다 보면 알 수 있단다. 서로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이지 속으론 다들 알구 있거든."(88화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
진오와 할머니의 저 대화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는 황석영의 낙관적 태도를 보여준다. 고난과 환멸의 현대사를 관통해 오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 신념이야말로 미약하지만 오체투지의 정신으로 역사를 조금이나마 진보하게 만드는 중요한 동력일 터이다. 오랫동안 시달린 결핵으로 지하활동 중에 숨진 한 활동가의 말이 핵심을 웅변한다.
"그런데 가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진 않고 늘 미흡하거나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시간이 무척 오래 지나서야 그러더군요. 우리는 먼지 같은 흔적에 지나지 않아요."
황석영의 전반기 문학은 19살에 등단해 '객지' '삼포 가는 길' '한씨연대기' '장길산' 등으로 이어지는 행로였다. 후반기는 방북 이후 석방된 1998년부터 '오래된 정원' '손님' '심청' 등으로 이어졌다. 2015년 일산 자택 인근에서 황석영을 만났을 때, 그는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의 '만년의 양식'을 빌려 자신의 만년문학을 말했다.
"늙으면 형식이나 내용에서 평화스럽고 안정된 작품을 쓰리라 생각하지만 살펴봤더니 반대더라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글에 충분히 공감한다. 베토벤은 교향곡을 작곡하다 만년에는 실험적인 현악 4중주를 집중적으로 작곡했고, 괴테는 생애 가장 실험적인 '파우스트'를 마지막으로 집필했다. 서사가 폭발하던 시절로 돌아가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을 쓰고 싶은 것인데, 나의 만년문학은 이미 시작됐다."
이제 벼르던 만년문학의 윤곽이 드러난 시점에 황석영의 소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연재 최종회를 올리고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한 채 남긴 댓글 형식 소감문에서 "나이가 드니까 기억력도 떨어져서 그런지 등장인물의 이름이 가끔씩 틀리기도 했다"면서 "이런 본격적인 장편소설을 다시 쓸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썼고 어쨌든 무사히 마치게 되어 기쁘다"면서 "글 쓰다가 책상머리에서 마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으니 다시 힘을 내야겠다"고 밝혔다.
황석영은 "이제 개작과 교정의 지옥이 다시 기다리고 있지만 정성들여 고쳐서 신록이 시작될 즈음 책으로 묶여 나오게 되길 기대한다"면서 "끝내 놓고 허전했는지 밤을 새우고도 잠이 오질 않아서 책상머리에 여태까지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역병 소식으로 흉흉한 시절이지만 그것 또한 다 지나갈 것"이라고 코로나 시절 독자들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했다. 작가의 최종 손길이 닿은 단행본은 5월 중·하순경 출판사 창비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