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대북 제재 국면에서 북한땅에 그리팅맨 설치는 가능한가

UPI뉴스 / 2019-11-21 17:35:05
MBC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 방송 이후 이야기


'헬로 그리팅맨' 방송 이후 많은 반향

지난 11월 11일 저녁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 방송 이후 많은 피드백이 있었다. "오프닝에서 괜히 울컥했다..", "프롤로그 화면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먹먹했다...."는 반응에서 시작해, "그리팅맨에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다. 연천에 가보고 싶다", "영상미가 탁월하다" 등등. 나아가 "독일통일과 우리의 남북분단을 비교하면서 남북화해와 협력을 그린 뜻깊은 제작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와 같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에 전폭적으로 공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유영호 작가의 안정감 있는 표정과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았다. 앞으로 묵직한 예술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활동해도 좋으실 듯..."와 같은 반응도 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들은 대부분 제작진과 작가의 지인이다. 유영호작가와 그리팅맨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 프로그램을 보았기 때문에 공감도와 몰입도가 높았을 것이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한편 어떤 이는 경기도 연천에 그리팅맨이 세워진 과정을 주목했다. 2014년 연천에서는 반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이를 저지하려는 북측의 총격, 이에 대한 남측의 대응 사격 등으로 남북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또 전단을 살포하려는 반북단체와 이를 막으려는 연천군 주민들간에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주민들로서는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일 것이다.

2015년에는 북한이 연천 지역에 있는 우리측 대북 확성기에 포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북의 목함지뢰 폭파로 우리측이 대북 방송을 재개하자 발발한 이른바 '서부전선 포격사건'이다. 남측도 즉각 대응사격을 했고, 연천군의 횡산리와 삼곶리 주민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시쳇말로 '후덜덜'이다. 그런 연천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고개숙여 인사하는 그리팅맨을 설치한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더욱이 작품이 세워진 시기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던 즈음이다. 2016년 1월 북한이 "첫 수소탄 실험 성공"이라고 주장한 4차 핵실험이 있었다. 2016년 3월에는 800km 노동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런데 이 무렵 연천은 민통선을 뒤로 물리고 연강나룻길을 조성했다. 임진강의 옛 이름을 딴 연강나룻길은 군남댐∼옥녀봉∼중면사무소로 이어지는 7.7㎞ 탐방로다. 그리고 옥녀봉에 그리팅맨을 세웠다. 보통은 6미터인데 연천의 그리팅맨은 높이 10미터에 무게 3톤의 대형 작품이었다.

▲ 유영호, <연천 옥녀봉-장풍 고잔상리 그리팅맨>, 8m x 3m x 0.8m, 폼보드, 알루미늄 주물, 철, 2019


연천 옥녀봉에서 북한까지는 불과 4km

그리팅맨이 세워진 연천 옥녀봉에서 북한과의 거리는 불과 4km다. 4월 23일 준공식에서 당시 김규선 연천 군수는 "옥녀봉에 먼저 그리팅맨을 세우고 장차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휴전선 건너편 북한땅에도 그리팅맨을 설치할 것임"을 공언했다. 뜻밖에(?) 그는 자유한국당(당시엔 새누리당) 소속 지자체 장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준공식을 한 그날도 북한은 SLBM을 쏘았다. 아마 민주당 당적의 군수였다면 종북 시비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연천 옥녀봉과 마주 보는 북녘땅은 황해북도 장풍군 마량산이다. 여기에 그리팅맨을 마주 세우겠다는 담대한 구상은 유영호 작가의 제안이었다. 마량산(317고지)은 6.25 당시 영연방 등 4개 사단이 중공군과 격전을 치룬 코만도 작전(Operation Commando)에서 호주군이 맡은 목표고지였다고 한다. 51년 10월 3일부터 8일까지 6일간 벌어진 이 전투에서 호주군은 중공군을 격퇴하고 '한국전쟁 중 호주군이 거둔 가장 위대한 공적'을 이룬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38선 일대에서 전선은 돈좌(頓挫)되었고 진지전의 양상을 보였다. 양측이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했으나 6.25가 끝난 후 마량산은 북측 지역이 되었다. 그리팅맨이 세워진 옥녀봉에서 멀리 마량산이 육안으로도 보인다. 필경 마량산에서도 옥녀봉이 보일 것이다. 유영호 작가는 반북단체의 전단 살포 때 남북의 총포 격전이 벌어졌던 연천 지역을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이런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이어질 때, 그는 "개인적으로도 이러다 전쟁이 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들었다"고 당시를 술회한다. 연천에 작품을 세우고 맞은 편 북한땅에도 그리팅맨을 세우자는 담대한 제안은 당시의 연천군수에게 받아들여졌다. 마침내 옥녀봉에 그리팅맨이 세워졌다.

"남북관계 어려울수록 평화공존 메시지 전해야"

연천군수가 지자체 장으로서 지역 발전을 위하여 하나의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는지 아니면 북측에 남측의 평화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뜻이었는지 그 깊은 뜻은 알 수 없다. 의도가 어디에 있었든 2016년 4월에 그리팅맨을 설치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최근 "남북관계가 어려울 때일수록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평화공존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이후 2018년에 지자체 선거가 실시됐다. 전국적으로 민주당 바람이 불었던 이 선거에서 뚜껑을 열고 보니 연천에서는 자유한국당 소속 후보가 당선되었다. 당내 경선을 통과한 다른 후보였다. 신임 김광철 군수 역시 연천-장풍 그리팅맨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아마도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도도한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2019년 신년사에서 '통일시대를 먼저 준비하는 연천'을 선언했다. 통일경제 특구유치, 남북접경 대규모 물류단지 조성 등으로 그동안 접경지역으로 인한 불이익을 연천의 자산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헬로 그리팅맨, DMZ의 꿈' 프로그램도 가능했다.

지난 11월 11일 프로그램이 방송된 이후 "그리팅맨을 연천에 세우고 또 북한 땅에도 세운다는데 그게 실현 가능한 일인가?"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2.28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관계는 진전이 없고, 남북관계에도 굴곡과 지체가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와 김정은이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든 것은 양자의 필요에 의한 깜짝쇼였던가? 이런 마당에 연천 옥녀봉과 장풍 마량산에 그리팅맨을 마주 세운다는 것이 가당한 일이냐는 질문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리팅맨 프로젝트는 이미 절반이 완성되어 있다. 이제 마량산에 그리팅맨을 설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북한 땅에도 그리팅맨을 세우겠다는 연천군의 제안은 2019년 연초에 공개적으로 발표된 바 있고, 상위 지자체나 유관 부서에도 전달이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북관계가 진전이 되고 북측이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연천-장풍 그리팅맨 프로젝트는 바야흐로 가시화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꿈*은 이루어진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인한 대북제재 국면이 살아있다는 것이 변수다. 북측의 수용 여부 이전에 문제의 관건은 대북제재다.

이와 관련해서는 개성공단 자문변호사로 있었던 법무법인 지평 김광길 변호사가 발표한 '대북제재 분석과 남북방송교류 방안'에 의거해 내용을 파악해 본다(2018.12.19. 방송협회 주최 세미나). 이에 따르면 이전에 수출입과 투자를 제한하던 대북제재는 2016년을 기점으로 이후 모든 물자·용역·기술의 수출금지, 모든 물자·용역·기술의 수입금지, 미국으로부터 또는 모든 신규 대북투자 금지로 강화되었다고 한다.

북측의 그리팅맨 수용 여부의 관건은 대북제재

전술(前述)했다시피 2016년은 1월과 9월에 북한이 4, 5차 핵실험을 했던 해다. 2016년 이전은 주로 무기·핵미사일부품·사치품과 관련자에 대한 제재에 초점이 있었다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인 결의 제2270호(2016.3) 이후로는 핵미사일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더라도 북한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 예상되는 분야로까지 제재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UN 안보리 결의에 따른 대북제재 내용에는 무기 및 관련 물질 대북 수출입금지를 필두로 선박검색, 자산동결, 안보리 결의 회피목적의 대량현금(bulk cash) 제한, 북한과의 합작 금지 등이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특히 철강은 물론 북한 석탄 및 광물(금, 티타늄, 희토류, 구리. 니켈, 아연, 은, 철, 납, 마그네사이트 등) 수출금지, 북한 농수산물 수출금지, 동상(銅像) 북한으로부터 구입금지, 해외 북한노동자 고용금지(2019년 말까지 모두 송환) 등 매우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 북한의 돈줄을 구석구석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북 제재 조항과 관련하여 그리팅맨의 재질이 알루미늄인 것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무기 및 관련물질 대북 수출입금지' 조항의 해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원소기호 13 알루미늄'은 가늘게 뽑을 수 있는 연성이 크고 전기 전도성도 좋아서 고전압용 전선을 만드는데 이용된다(이하 위키피디아, 나무위키 등 참고). 특히 다른 금속과 합금을 만드는데 많이 쓰이는데, 강도를 강화시킨 두랄루민 합금은 항공기 기체의 재료로 쓰인다. 게다가 가벼운 금속이라 같은 중량으로 두꺼운 장갑을 만들 수 있어 중량 대비 포탄에 대한 방어력은 더 높다고 한다. 그래서 장갑차나 고속정의 상부 구조물 등에 자주 쓰인다. 요컨대 물질로서의 알루미늄은 군사적으로 활용도가 뛰어나다는 얘기다.

그리팅맨은 재질은 알루미늄일지 모르나 어디까지나 예술작품이며 기증에 의한 설치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기 '대북 수출입금지' 품목에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대량현금(bulk cash)이 오갈 일은 없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의 국내법 중에 '대북제재강화법 제9228조 예외와 면제, 지정의 제거' 조항이 있다. 여기서 인도주의 지원에 필요하거나, '북한 인권 보호와 증진 (...) 북한으로부터 또는 북한으로의 정보 유통 증진, 민주주의적 한반도 평화적 통일 기여 증진'에 필요할 경우, 소정의 절차를 밟아서 제재를 면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국제경제비상수권법 IEEPA에 의해 부여된 대통령 권한은 아래 사항을 직간접적으로 금지하거나 규율하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고, 여기에 '인쇄물, 필름, 포스터, 사진기록, 마이크로필름, 테이프, CD, 예술품, 뉴스 등의 정보의 수출입'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예술품은 대북 금지 품목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가안보조치, 첩보 및 검열 등과 관련한 일부 단서 조항이 있기는 하나, 연천-장풍 그리팅맨 프로젝트는 '남북한의 공존과 소통'이라는 컨셉이 확실한 예술품이라는 점에서 제재 면제의 여지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칼과 창 녹여 쟁기 만드는 날 반드시 올 것"

만약 앞으로 남북이 의기투합하여 그리팅맨을 북한땅 황해북도 장풍군 마량산에 세우려는데 국제사회가 혹은 미국이 이를 대북제재에 적용한다면 이는 어떤 의미가 될까. 북측이 어느 날 돌연 그리팅맨을 녹여서 그 알루미늄으로 전투기, 장갑차, 고속정...을 만들 것으로 의심한다는 말인가. 이는 그리팅맨을 예술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대북제재의 교조성과 협량함을 노정할 뿐이다. 이는 국제사회에 대북제재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하나의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그리팅맨을 남과 북에 세우는 것은 좋은데 그걸 양측이 하나씩 만들어야지, 남측이 둘 다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유영호 작가는 "장차 북녘땅에도 그리팅맨을 세워서 서로 마주보는 프로젝트가 완성됐을 때 남북관계는 훨씬 더 좋아진 관계, 더 가까워진 관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연천 장풍 프로젝트는 남북이 서로 소통하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다. 또 북한이 장풍에는 자신들의 작품으로 세우겠다고 한다면 이는 작가로서 더욱 환영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평화가 오면 칼과 창을 녹여 쟁기와 보습을 만든다는 얘기가 있다. 아름다운 메타포다. 언젠가 한반도에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반대로 전쟁이 일어나면 농기구를 무기로 바꿀 수도 있겠다. 그런 불신은 '그리팅맨을 녹여 전투기를 만든다'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불신과 의심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일 뿐이다. 의심이 생기면 귀신이 생긴다는 말이다. 여기서 깨어나는 방법은 선제적인 담대함이다. 이는 2016년 4월 연천에서, 2018년 2월 평창에서 목도한 바다. 금강산 관광도, 개성 공단도 지금 대담하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11월 20일 자정이 넘어 앙코르 방송된 '헬로 그리팅맨...'을 보면서 그리팅맨의 꿈이 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을 꿈꾼다.

정길화 (MBC 통일방송추진단 책임프로듀서,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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