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큰 제품 우선 조치"…미국 상황 자세히 안 보고 무작정 따라해 액상형 전자담배가 명확한 근거 없이 일부 제품 판매만 중단되며 소비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 GS25,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미니스톱 등 편의점과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 롯데면세점 등 면세점은 연이어 액상형 전자담배 일부 제품 판매 혹은 신규 공급을 중단했다.
편의점과 면세점은 전자담배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액상형 전자담배가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됐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전면 퇴출'은 사실이 아니다. 판매 혹은 신규 공급 중단 대상은 액상형 전자담배 중에서도 쥴랩스코리아와 KT&G 일부 제품이다. 쥴랩스코리아의 '쥴'은 5가지 맛 중 3가지, KT&G의 '릴 베이퍼'는 3가지 맛 중 1가지만 해당된다. 모두 과일향 제품이다.
과일향 제품에 한정된 조치는 소비자들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정부가 건강 문제를 이유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을 강력 권고한 직후인 탓이다. 과일향이 들어가면 건강에 더 유해하다는 오해가 생겼다.
조치의 근거도 빈약하다. 가장 먼저 조치를 취한 편의점 GS25는 과일향 제품들의 판매 중단을 밝히면서 '가향(향이 가미된)' 액상형 전자담배를 대상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GS25 관계자는 "이번 가향 액상 전자 담배의 판매 중단 조치는 보건 선진국인 미국이 현재 실행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수준"이라며 "앞으로도 GS25는 국민 건강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눈높이를 엄격하게 적용해 선도적 기업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GS25가 판매를 중단하지 않은 쥴랩스코리아와 KT&G의 액상형 전자담배 역시 '가향' 제품이기는 마찬가지다. 담배향 혹은 박하향이 가미됐다.
GS25의 조치는 업계에서 표준이 됐다. 다른 편의점과 면세점들이 GS25와 마찬가지로 과일향 제품에 대해서만 조치를 취했다.
쥴랩스코리아는 더욱 억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GS25가 언급한 '보건 선진국 미국의 수준'이라는 과일향 제품 규제는 건강 문제가 아닌 청소년 흡연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다. 또한, 과일향 제품 판매 중단은 뉴욕주와 미시간주 등에서만 이뤄졌다. 미국 전역에서 판매를 중단한 것은 규제기관이 아닌 쥴랩스 측의 선제적 조치였다.
과일향 액상형 전자담배가 전면 퇴출된 것도 아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액상형 전자담배 버블몬과 버블스틱을 여전히 정상 판매하고 있다. 미니스톱 역시 액상형 전자담배 몬스터 베이퍼를 판매하고 있다. 이들 제품 가운데는 망고향, 청포도향 등 과일향 제품도 포함돼 있다. 이번 퇴출에는 그 어떤 일관성도 없는 셈이다.
과일향 전자담배가 청소년 흡연의 주범인지도 논란거리다. 미국 연방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미국 고등학생의 3분의 2는 과일향이 아닌 담배향 혹은 박하향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별한 기준을 가지고 액상형 전자담배 일부 제품만 판매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며 "논란이 큰 제품을 일단 조치한 것이고, 향후 정부의 발표에 따라 조치는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이른 시일 내에 유해성 연구 결과 등을 통해 확실한 기준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유해성에 대한 정확한 근거 없이 미국을 따라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을 권고한 것도 비판받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으로 발생한 폐 질환 환자 대부분은 대마초 성분 THC 함유 제품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일부 주에서 대마초가 합법화된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대마초 관련 성분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미국의 액상형 전자담배 퇴출 정책은 정치적 논리와도 강하게 결부돼 있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는 담배향, 박하향을 포함해 모든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를 금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트럼프 선거캠프는 유권자 이탈을 이유로 과일향만 금지하는 것으로 정책 수위 완화를 권고했다. 이후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영국 담배·알코올 연구센터(UKCTAS) 존 브리튼 교수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폐 질환 유발에 대해 "미국에서 발생하는 일은 다른 국가에서는 벌어지지 않는다"며 "미국 특유의 현상"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현저히 유해성이 낮다며 흡연자들에게 전자담배로 전환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영국 공중보건국은 금연 포스터를 통해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 물질은 일반 담배보다 95% 적다"며 "전자담배로 전환하면 건강해진다"고 밝혔다.
이병준 한국전자담배산업협회 부회장은 지난 10월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반 전자담배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오픈형 액상 전자담배의 경우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화학물질 검사와 기체 테스트까지 거친 제품들"이라며 국내 제품들이 THC 성분과 무관함을 강조했다.
또한 "매년 6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연초 담배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이, 국민건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액상형 전자담배만을 규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통 관계자들 또한 정부의 눈치를 보기 바쁘다"며 "문제가 있다면 가향 뿐만 아니라 모든 제품이 폐지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으로 폐 질환 발생이 의심된 환자는 1명이다. 이 환자는 폐렴이 의심되는 증상으로 입원했으나, 호전돼 일주일 후 퇴원했다. 현재까지 특별한 후유증은 발생하지 않았다.
KPI뉴스 / 남경식 기자 ngs@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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